글: [객원논설 위원 박금희]
‘홍엽오기다완紅葉吳器茶碗’에서 읽는 검이불루의 미학
교토의 겨울은 습기를 머금은 채 뼛속까지 시리게 파고든다. 그 시린 공기를 뚫고 찾은 쇼코쿠지(相國寺) 경내에는 마침 매화가 막 봉오리를 터뜨리며 이른 봄의 기별을 전하고 있었다. 찰나의 순간 코끝을 스치는 미야기현의 ‘조선 매향’의 고결한 향기는, 차가운 정적을 깨우는 생명의 소리처럼 들렸다. 하지만 정작 조오텐카쿠미술관(承天閣美術館)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계절은 다시 짙은 만추의 한복판으로 회귀했다.
그곳에는 조선의 이름 없는 도공이 빚어냈으나, 지금은 타국의 ‘홍엽오기다완(紅葉吳器茶碗)’이 고고하게 전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진 촬영이 엄격히 금지된 삼엄한 감시 속에서 차마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 감시자의 눈초리가 셔터 소리를 경계하는 날 선 시선들이 등 뒤에 머물렀지만, 셔터를 누를 수 없는 손가락의 갈증은 역설적으로 내 모든 감각을 각성시켰다. 렌즈라는 기계적 매개체 없이 오롯이 나의 망막과 가슴에 그 형태와 빛깔을 새겨 넣어야 했던 그 시간은, 눈물겹도록 아프고도 숭고한 대면이었다. 그것은 ‘기자에몬 이도다완(喜左御門井戶茶碗)’의 기개보다 깊게 사무치는 ‘옅은 갈색’의 비애였다. 흔히 일본 다도의 정점이라 하면 국보 ‘기자에몬 이도다완’을 떠올린다. 거칠고 당당한 기개, 보는 이를 압도하는 웅건한 맛은 분명 대단한 것이다. 하지만 그날 쇼코쿠지에서 마주한 홍엽오기다완은 그저 이름 높은 명물로서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물의 형태적 완결성보다도, 소박한 태토 위로 피어난 단풍 빛 요변의 숭고함이 나의 관습적인 심미안을 전복시켰다.
이도다완의 웅장함보다 내면을 더 깊고 사무치게 파고든 기물은 홍엽오기다완이었다. 이 다완의 ‘희미하고 옅은 갈색’은 당당함을 넘어선 애잔함과 강렬한 슬픔의 미를 보여주었다. ‘홍엽(紅葉)’이라는 이름은 일본 다인들이 붙인 탐미적인 수식어일 테다. 그러나 내 눈에 비친 그것은 화려한 단풍의 절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차라리 계절의 막바지에 모든 색이 휘발되고 남은 소멸의 빛깔이었다. 인위적인 안료로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세월과 그리움이 빚어낸 그 빛깔 앞에서 우리 조선 도공들의 굽이진 삶을 보았다. 특히 다완의 안쪽을 들여다보았을 때, 나는 이름 없는 조선 도공이 써 내려간 한편의 서사를 읽었다. 그리고 전시장의 정적 속에서, 그 다완이 품은 수백 년의 서사를 대면했다. 다완(茶碗)의 기벽을 따라 흐르던 시선이 멈춘 곳에는, 마치 온 산을 뒹굴던 만산홍엽(滿山紅葉)들이 바람에 밀려와 어느 외진 구석에 마지막으로 몸을 눕힌 듯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 구석진 곳에서 퇴색되어 가는 빛깔은 차라리 비명에 가까운 고독이었다. 낯선 타국 가마터에서 고향의 산천을 그리워하며 흙을 만졌을 이름 없는 도공의 시린 손마디가 그 옅은 갈색 속에 고스란히 눈물처럼 고여 있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조선의 소박한 사발이 어떻게 일본 다도의 완성이 되었는지를 깊이 성찰해 보아야 한다. 일본 다도를 정립하고 완성한 센노 리큐(1552-1591)는 당대 최고의 보물로 숭상받던 건요(建窯)의 요변천목다완(曜變 天目茶盌)에 투영된 대륙적인 권위를 내려놓았다. 대신 그는 조선사발의 거친 질감과 자연스러운 비정형에서 비범한 안목으로 궁극의 미를 발견했다. 그것은 잘 보이려 애쓰지 않는 '무심(無心)'의 미학이자, 인위적인 장식을 걷어낸 자리에 남은 본질적인 생명력이었다.
그것은 비움으로써 채우고, 덜어냄으로써 완성하는 ‘와비차(侘び茶)’의 세계였다.
리큐가 조선 사발을 통해 구현하고자 했던 다실의 미학은 사실 우리 민족의 심미안적 뿌리인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와 맞닿아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백제 본기>에 기술된 이 원칙, 즉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는 절제의 철학은 조선 사발 안에 오롯이 녹아 있는 핵심 가치다.
오기다완의 옅은 갈색은 검소하지만 결코 비루하지 않았으며, 그 구석진 곳에 맺힌 홍엽의 자취는 은은한 화려함을 머금었으되 사치에 빠지지 않는다. 리큐가 탐했던 미학의 실체는 결국 우리 조상들이 수천 년간 지켜온 ‘중용과 절제의 미’를 일본의 좁은 다실 공간 속에 투영한 것에 다름이 없었다. 조선의 도공은 무심하게 빚었으나, 그 안에는 백제로부터 이어져 온 찬란한 미학적 DNA가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전시장을 나오니 다시 매향 속에 남은 조선의 소리가 코끝을 스쳤다. 생명의 시작을 알리는 매화의 향기가 깊은 기억으로 남을수록, 전시장 안에서 보았던 홍엽의 쓸쓸함은 더욱 선명한 대비를 이루며 아픔으로 각인되었다.
밖은 매향이 깨우는 봄의 소리로 가득한데, 다완 안쪽은 여전히 쓸쓸한 가을의 막바지에 머물러 있었다. 이 마당에서 가람의 고요한 질서는 흩어진 시간의 조각들을 하나로 묵어내고 있었다. 봄의 향기와 가을의 고독이 한 울타리 안에서 공존하는 기묘한 평화였다. 셔터를 누르지 못한 아쉬움에 도록을 펼쳐 들고 그 여백에 꾹꾹 눌러 쓴 메모들은 이제 나만의 소중한 ‘기록화’가 되었다. ‘가을의 막바지’, ‘퇴색되어 가는 빛깔’, ‘도공의 쓸쓸함’. 이 투박한 글자들은 사진이 담아내지 못한 그날의 진실을 증언한다. 렌즈를 통하지 않았기에 나는 그 옅은 갈색의 진심을 온전히 가슴으로 인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 했다.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그 말의 무게를 홍엽오기다완 앞에서 다시금 되새긴다. 조선 도공이 남긴 그 옅은 갈색의 슬픔은 단순히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 차 문화가 지향해야 할 ‘검이불루’의 정신이며, 우리가 되찾아야 할 숭고한 시선이다.
매화 향기 속에서 만났던 그 희미한 갈색의 그림자는 지금도 내 마음의 다실에서 은은한 향기를 피워 올리고 있다. 그날 쇼코쿠지에서 내가 본 것은 한 점의 그릇이 아니라, 수백 년을 건너온 도공의 절규였고, 동시에 우리가 잊고 살았던 한국 미학의 정수였다. 그 쓸쓸함이 주는 아픔이 깊을수록, 우리 차 문화의 뿌리는 더욱 단단해질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글: [객원논설 위원 박금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