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안의 한가운데서 흙을 만지다
헤르만 헤세가 정원에서 건져 올린 삶의 속도
전염병의 확산, 지정학적 갈등, 흔들리는 경제 질서, 그리고 멈추지 않는 경쟁 구조.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일상은 불안이라는 단어로 요약된다. 기술은 삶을 빠르게 만들었지만, 속도는 오히려 인간의 균형 감각을 무너뜨렸다. 쉼은 사치가 되었고, 멈춤은 뒤처짐으로 인식되는 시대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흙’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정원을 가꾸고 식물을 키우며 땅을 만지는 행위는 단순한 여가 활동을 넘어 심리적 회복의 매개로 작동한다. 자연의 느린 순환은 과속된 일상에 브레이크를 걸고, 인간의 생체 리듬을 원래의 자리로 되돌린다.
이 흐름을 예견하듯, 20세기 초 이미 자연과 인간의 단절을 경고한 인물이 있다. 독일 출신 작가 ‘헤르만 헤세’다. 그는 문학적 명성과 별개로 평생 정원을 가꾸며 살았다. 헤세에게 흙은 취미의 대상이 아니라 사유의 출발점이었다.
헤세의 삶은 안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엄격한 신앙 교육, 청소년기의 탈선, 학교 퇴학, 극단적 선택의 시도, 전쟁과 망명까지 이어진 생의 궤적은 끊임없는 균열로 점철됐다. 그러나 스위스 남부 몬타뇰라에 정착한 이후, 그의 일상은 분명한 전환점을 맞는다.
그는 하루의 시작을 원고지가 아닌 정원에서 열었다. 아침이면 작업복을 입고 땅을 고르고, 풀을 뽑고, 씨앗을 심었다. 집필은 해가 기운 뒤에야 시작됐다. 인간 중심의 시간표 대신 자연의 리듬을 삶의 기준으로 삼은 선택이었다.
헤세의 정원은 인위적 질서와 거리가 멀었다. 식물은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자랐고, 잡초는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다. 그는 자연이 인간보다 훨씬 정교한 질서를 지니고 있다고 보았다. 통제하려는 욕망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자유가 시작된다는 믿음이었다.
이 정원은 그의 사유가 축적되는 공간이기도 했다. 흙을 고르는 반복적인 노동 속에서 그는 인간의 내면을 관찰했다. 꽃이 피고 지는 순환처럼 감정 또한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며, 억누른 불안은 잡초처럼 되레 번성한다는 통찰에 이르렀다. 문제를 제거하려 하기보다 공존의 방식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결론이었다.
이러한 인식은 그의 작품 세계 전반에 스며 있다. **데미안**과 **싯다르타**에서 드러나는 내면 성장의 서사는 정원에서의 체험과 맞닿아 있다. 더 나아가 그가 남긴 수많은 수채화 역시 언어 이전의 사유를 담은 기록이었다. 자연의 빛과 그림자를 포착한 그림들은 설명보다 솔직했고, 명상보다 직접적이었다.
디지털 기술과 인공지능이 일상을 지배하는 오늘날, 헤세의 정원 철학은 오히려 더 현실적인 대안으로 읽힌다. 모든 생명은 각자의 속도로 성장한다는 그의 인식은 효율과 성과를 강요하는 사회에 대한 조용한 반문이다. 완벽한 대칭이나 장식 대신 있는 그대로의 질서를 존중했던 그의 태도는 삶을 대하는 또 다른 기준을 제시한다.
불확실성이 일상이 된 시대, 회복의 해답은 멀리 있지 않다. 잠시 멈춰 흙을 밟고, 식물의 성장을 지켜보는 일상적 행위가 삶의 균형을 다시 세운다. 헤세가 보여준 정원의 태도는 도피가 아니라 성찰이었다. 삶은 길들여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호흡해야 할 공간이라는 메시지가 오늘에도 유효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