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먹지 않는 아이는 말하고 있었다
아이는 밥상 앞에 앉아 있었다. 국도, 반찬도 그대로였다. 어른들은 묻는다. 왜 안 먹느냐고, 배고프지 않느냐고, 건강이 걱정된다고. 그러나 아이는 대답하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대답할 수 없다.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섭식장애를 겪는 중학교 1학년 아이들에게 ‘먹지 않는다’는 행동은 선택이 아니라 신호에 가깝다. 그 신호는 언어보다 먼저 몸으로 나온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감정과 생각을 아직 문장으로 정리하지 못한다. 대신 행동으로, 거부로, 침묵으로 드러낸다. 밥을 거부하는 행위는 단순한 식사 문제로 보이지만, 그 안에는 불안, 통제 욕구, 관계의 균열, 자존감의 흔들림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어른의 언어는 이 복잡한 신호를 해석하기엔 너무 직선적이다. “먹어야 한다”는 말은 옳지만, 아이의 마음에는 닿지 않는다.
치료실에서 만난 아이는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거나 흔들 뿐이었다. 대신 인형을 집어 들었다. 인형은 밥상을 뒤엎고, 숨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그 장면에서 치료자는 깨닫는다. 이 아이는 이미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만 그 언어가 ‘놀이’라는 형식으로 나타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중1, 섭식장애가 시작되기 쉬운 이유
중학교 1학년은 신체와 심리가 동시에 급격히 변하는 시기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넘어가며 생활 환경이 바뀌고, 또래 관계는 한층 복잡해진다. 사춘기의 시작과 함께 몸에 대한 인식도 달라진다. 살이 찌는 것에 대한 불안, 비교, 평가에 대한 두려움이 생긴다. 이 모든 변화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시점이 바로 중1이다.
섭식장애는 이 시기에 조용히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처음에는 다이어트처럼 보이기도 하고, 입맛이 없다는 말로 가려지기도 한다. 그러나 점차 음식에 대한 강한 통제, 식사 회피, 죄책감, 불안이 반복되면서 문제는 깊어진다. 아이 스스로도 왜 먹기 힘든지 설명하지 못한다. 설명할 언어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섭식장애를 단순히 ‘음식 문제’로 접근하면 치료가 막힌다는 사실이다. 중1 아이에게 음식은 감정의 전쟁터다. 먹는 행위는 곧 통제, 안전, 인정과 연결된다. 말로 캐묻는 방식은 아이를 더 움츠러들게 만든다. 그래서 이 시기의 치료에는 언어 이전의 방식이 필요하다. 바로 놀이치료다.
왜 놀이치료인가
놀이치료는 아이의 자연스러운 표현 방식을 존중하는 치료다. 특히 중1처럼 말과 감정 사이의 간극이 큰 시기에는 놀이가 가장 정직한 언어가 된다. 아이는 놀이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안전하게 드러낸다. 직접 말하지 않아도 된다.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놀면 된다.
섭식장애를 겪는 아이들은 통제에 민감하다. 무엇을 먹을지, 얼마나 먹을지, 먹지 않을지를 스스로 결정하려 한다. 놀이치료는 이 통제 욕구를 억압하지 않는다. 오히려 놀이 안에서 아이가 주도권을 쥐도록 돕는다. 어떤 인형을 쓸지, 어떤 이야기를 만들지, 언제 멈출지를 아이가 정한다. 이 과정에서 아이는 안전감을 회복한다.
전문가들은 놀이치료가 섭식장애의 ‘원인’을 직접 제거하지는 않지만,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표현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든다고 말한다. 감정을 다룰 수 있게 되면 음식에 쏠렸던 긴장은 서서히 풀린다. 먹으라고 설득하지 않아도, 아이는 스스로 변할 준비를 한다.
부모 입장에서는 이 과정이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다. 당장 체중이 늘지 않고, 식사량이 크게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놀이치료의 변화는 숫자가 아니라 태도에서 시작된다. 치료실에서 웃음이 늘고, 불안이 줄고, 관계가 부드러워진다. 이 작은 변화들이 결국 식사 행동으로 이어진다.
놀이가 치료가 되는 순간
놀이치료의 핵심은 ‘안전한 관계’다. 섭식장애 중1 아이들은 평가받는 상황에 극도로 민감하다. 잘 먹었는지, 살이 빠졌는지, 정상인지 아닌지. 이런 평가 속에서 아이는 자기 몸을 적으로 인식한다. 놀이치료는 평가를 멈춘 공간을 만든다. 치료실에서는 잘하거나 못하는 기준이 없다. 인형이 밥을 던져도 괜찮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
이 무조건적 수용이 아이의 신경계를 안정시킨다. 안정은 곧 선택의 여지를 만든다. 강요가 사라진 자리에서 아이는 처음으로 자신의 상태를 바라본다. 실제 현장에서는 놀이치료를 통해 아이가 음식과 관련된 놀이를 자발적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인형에게 밥을 차려 주거나, 음식 이야기를 놀이 속에 끌어온다.
이는 매우 중요한 신호다. 아이의 마음이 더 이상 음식을 위협으로만 인식하지 않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놀이치료는 단독 치료로 끝나기보다, 의료적 관리와 부모 상담과 함께 갈 때 효과가 커진다. 그러나 중심에는 언제나 아이의 속도가 있다. 중1 섭식장애 치료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조급함이다. 놀이치료는 느리지만, 그 느림이 아이를 지켜 낸다.
우리는 아이의 말을 듣고 있는가
섭식장애를 겪는 중학교 1학년 아이는 고집이 센 아이가 아니다. 관심을 끌려는 아이도 아니다. 다만 아직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무언가를 몸으로 말하고 있을 뿐이다. 그 언어는 놀이 속에 숨어 있다. 우리는 아이에게 묻는다. 왜 안 먹느냐고. 그러나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아이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 언어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놀이치료는 아이에게 말을 가르치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아이의 말을 알아듣도록 돕는다.
치료실에서 벌어지는 변화는 조용하다. 그러나 그 조용함 속에서 아이는 다시 살아갈 힘을 준비한다. 먹는 문제는 그다음이다. 먼저 마음이 안전해져야 한다. 그 시작이 바로 놀이였다. 섭식장애를 겪는 청소년이 있다면, 먹는 문제만 보지 말고 아이의 표현 방식을 살펴보길 권한다.
가까운 아동·청소년 상담센터나 놀이치료 전문 기관을 통해 조기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아이의 언어는 이미 시작되었다. 우리가 들어야 할 차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