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박동명] R&D 지원의 문턱을 낮추고, 심사·집행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불법 브로커의 ‘그림자 시장’, 중소기업 R&D 정책의 신뢰를 되찾아야

▲박동명/한국정책연구원 원장 ⓒ한국공공정책신문

 [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편집자주) 박동명 교수는 ()한국정책연구원에서 활동하고, 한국공공정책평가원장으로서 중앙·지방의 각종 정책사업 평가와 예산 집행의 적정성·성과관리 이슈를 지속적으로 다루어 왔습니다. 특히 중소기업 R&D 예산 편성·집행·성과 환류와 직결되는 제도 설계 및 현장 자문 경험을 바탕으로, 최근 불법 브로커(3자 부당개입) 확산이 정책 신뢰를 훼손하는 문제를 짚고 개선 방향을 제시합니다.


정부가 중소기업 R&D를 대폭 확대한다. 2026년도 통합 시행계획에서 중기부는 지역생태계·팁스·기술사업화 등 중소기업 지원에 역대 최대규모의 2.2조 원 지원을 예고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공고보다 먼저 브로커가 온다는 말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제도의 문턱이 높고 정보가 부족할수록, 그 틈새를 파고드는 그림자 시장은 커진다.


문제는 단속의 강도를 높이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불법 브로커의 확산은 단순한 일탈이 아니라, 행정 부담과 정보 비대칭이 만들어낸 구조적 부산물이기 때문이다. 공공정책이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은 예산 확대그 자체가 아니라, 예산이 현장으로 도달하는 과정에서 공정·투명·접근성이 유지되는가 하는 신뢰의 설계이다.


 ‘3자 부당개입이 제도 밖 시장으로 번진다


최근 정책금융·지원사업을 둘러싼 부당개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관계부처·기관이 함께하는 TF를 본격 가동했다. 금융위·경찰청·금감원 등도 참여해 정책금융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법 보험영업, 서류 조작, 부당 수수료 등 제3자 부당개입 실태를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취지이다.


특히 20261월에는 부당개입 방지 3종 세트’(실태조사·자진신고자 면책·신고포상제) 도입 및 법제화 추진이 공개적으로 제시됐다. 이것은 중요한 전환 신호이다. 이제 정부가 현장에 실제로 존재하는 문제를 공식 의제로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다만 제도가 현장에서 체감되는 성과로 이어지려면, 실행의 디테일을 더 촘촘히 설계해야 한다.


복잡한 절차가 행정 부담을 만들고, 그 부담이 브로커를 키운다


기업이 정부 지원제도를 이용할 때 겪는 비용은 단지 돈이 아니다.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배우는 비용, 실수하면 탈락한다는 심리적 부담, 서류·증빙·전산입력 등 준수 비용이 누적된다. 행정학 연구에서는 이를 행정 부담(administrative burden)으로 설명해 왔다.


이 부담이 커질수록 기업은 기술개발보다 신청서 작성에 시간을 빼앗기고, 결국 외부 대행에 의존하게 된다. 여기까지는 합법적 컨설팅의 영역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다. 행정 부담과 정보 비대칭이 겹치면, “통과 보장”, “내부 정보”, “특별 루트같은 말이 시장가치를 갖기 시작한다. 그 순간부터 공공정책은 혁신 지원이 아니라 정보 거래의 장으로 왜곡된다.


제도의 허점: 처벌보다 더 무서운 것은 신고 기피이다


불법 알선, 허위 서류, 강요성 계약, 수수료 갈취는 엄연히 제재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피해 기업이 신고를 꺼리는 이유는 단순하다. “신고하면 앞으로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라는 두려움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 심리적 장벽이 유지되는 한, 브로커는 늘 관행이라는 가면을 쓸 수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자진신고자 면책과 신고포상제(최대 200만 원)는 이 구조를 흔들 수 있는 장치이다. 다만 제도는 선언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신고 정보가 평가·심사 라인과 단절되는 방화벽, 피해 기업이 재도전할 수 있는 회복 프로그램, 조사 결과의 투명한 공표가 함께 가야 한다.


단속을 넘어 설계로 가야 한다


필자는 다음 네 가지를 핵심 개혁축으로 제안한다.

첫째, 신청 절차를 실질적으로 간소화해야 한다. 중복 서류, 반복 입력, 형식적 증빙 요구를 줄이고, 기업이 연구개발에 집중하도록 해야 한다. 행정 부담이 줄어들수록 브로커의 대행 수요는 자연히 감소한다.


둘째, 심사 정보의 투명 공개와 사례형 안내를 강화해야 한다. 평가 기준을 문장화하고, 자주 감점되는 요소와 보완 방식, 표준 샘플을 공식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정부가 표준 정보를 제공하면, 민간이 브로커에게 사는 정보의 가치는 떨어진다.


셋째, 합동조사·추적·제재의 원팀화가 필요하다. TF가 가동된 만큼, 단발성 회의가 아니라 상시 협업체계로 고도화해야 한다. 불법 수수료의 자금흐름(계좌·계약서·보험 끼워팔기)을 추적하고, 위반 유형별 제재를 표준화해야 한다.


넷째, 신고자 보호·면책·포상 3종 패키지의 실효성을 확보해야 한다. “익명 실태조사가 실제 데이터로 축적되고, “면책이 법적·절차적으로 명확하며, “포상이 증거 기반 신고를 활성화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정책대안: 신뢰기반 R&D 거버넌스를 위한 7가지 패키지


이제는 브로커를 잡는 정책브로커가 설 자리를 없애는 정책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

첫째, 등록 컨설팅 제도(등록제)와 금지행위의 명문화이다. 성과보수 남용, 통과 보장, 기관 사칭, 선입금 요구, 끼워팔기, 허위서류 유도는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위반 시 퇴출·공표 등 강한 제재를 붙여야 한다.


둘째, 원스톱 내비게이션(통합 포털) 고도화이다. 정부가 이미 통합 시행계획을 공고한 취지를 한 단계 더 확장해 사업 탐색적합성 진단서류 자동작성 보조제출까지 이어지는 사용자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셋째, AI 기반 부정징후 탐지이다. 동일 문장 패턴 반복 제출, 특정 대행업체의 과도한 개입, 비정상적 수수료 흐름 등 이상징후를 조기에 감지해 선제 대응하되, 설명가능성·이의제기 절차를 함께 둬야 한다.


넷째, 증빙의 사후 제출전환이다. 선정 전 단계에 과도한 증빙을 요구하지 말고, 핵심 요건은 간단히 확인한 뒤 선정 후 정밀 검증으로 전환해야 한다.


다섯째, 퇴직자 이해충돌 방지의 강화이다. 심사·관리 경험이 즉시 사익화되는 구조는 제도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취업 제한의 엄정 적용과 함께, 위반에 대한 실효적 제재가 필요하다.


여섯째, 공공정책 아카데미(무료·표준 교육)의 상시 운영이다. 민간 학원식 비공식 강의가 아니라 정부가 직접 사례형 교육을 제공해, 기업이 합법적으로 역량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일곱째, 성과지표의 재설계이다. 집행률 중심에서 벗어나, 행정 부담 감소(작성시간·반려율), 접근성 개선(영세·지방 기업 참여율), 청렴성 지표(부당개입 차단률·신고 처리 속도) 등을 성과로 관리해야 한다.


예산이 커질수록, 신뢰 장치도 함께 커져야 한다


중소기업 R&D는 국가 경쟁력을 만드는 정책 인프라이다. 그 인프라가 불법 브로커의 먹잇감이 되면, 정직한 기업이 손해를 보고, 혁신은 왜소해지며, 정책은 불신으로 끝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예산 확대에 대한 찬반이 아니라, 확대된 예산이 현장에 도달하는 경로를 공정하게 설계하는 일이다.


정부가 TF를 가동하고 3종 세트 도입과 법제화를 추진하는 것은 올바른 방향이다. 이제 남은 과제는 실행이다. 브로커가 시장을 만들기 전에, 정부가 신뢰의 시장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중소기업 R&D 정책이 다시 현장에서 존중받는 출발점이다.



박동명

▷법학박사,  한국정책연구원 원장

선진사회정책연구원 원장

▷(사)한국공공정책학회 부회장

▷(전)국민대학교 행정대학원 외래교수

▷(전)서울특별시의회 보건복지 전문위원



작성 2026.01.25 21:49 수정 2026.01.25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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