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한 무의 공간에 채워진 존재의 찬란함 -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으로 읽는 현대 사회(9)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시작된 위대한 비즈니스

말씀이라는 설계도가 빚어낸 질서와 아름다움

여섯 날의 리듬이 가르쳐준 성취와 안식의 지혜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9문

 

Q. 9. What is the work of creation? A. The work of creation is, God’s making all things of nothing, by the word of his power, in the space of six days, and all very good.
문 9. 창조하신 일이 무엇인가? 답. 창조하신 일은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에 아무것도 없는 중에서 그 권능의 말씀으로써 만물을 지으신 일인데, 다 매우 좋았더라.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 11:3)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창 1:31)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을 그의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시 33:6)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1-3) 

 

AI 이미지 (제공: 미디어 울림)


무(無)에서 유(有)를 이끌어내는 근원적 혁신

 

현대 비즈니스 세계에서 가장 추앙받는 가치 중 하나는 '창조적 혁신'이다. 페이팔의 창업자 피터 틸(Peter Thiel)은 그의 저서 『제로 투 원(Zero to One)』에서 세상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진보라고 역설했다. 기존의 것을 복제하는 '1에서 n'의 수평적 진보가 아니라, 전례 없는 가치를 창출하는 '0에서 1'의 수직적 진보를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인문학적 관점에서 엄밀히 따져보면, 인간의 창조는 늘 기존에 존재하는 자원과 아이디어를 재조합하는 '편집'의 영역에 머문다. 인간은 결코 진정한 의미의 '제로(Zero)'에서 시작할 수 없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9문은 우리를 인류가 경험할 수 없는 가장 경이로운 '0에서 1'의 현장으로 초대한다. 바로 하나님의 창조 사역으로 '아무것도 없는 중에서(Out of nothing)'의 창조다. 이는 우주가 어떤 기존의 물질이나 신의 유출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의지와 권능에 의해 존재하게 되었음을 선언한다. 이 신학적 명제는 우리에게 깊은 실존적 안도감을 준다. 우리가 우연의 산물이거나 물질의 부속물이 아니라, 절대자의 구체적인 기획과 결단에 의해 이 땅에 나타난 '목적 있는 존재'임을 확증하기 때문이다.

 

 

말씀이라는 소프트웨어와 물리적 세계의 탄생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신 도구는 물리적인 망치나 정이 아니라 '권능의 말씀'이었다. 히브리어로 말씀은 '다바르(דָּבָר, dabar)'라고 한다. 흥미롭게도 이 단어는 '말(Word)'인 동시에 '사건(Event)' 혹은 '물질(Thing)'이라는 의미를 중의적으로 내포한다. 즉, 하나님의 말씀은 선포되는 순간 곧 현실이 되는 창조적 에너지를 가진다. 헬라어로는 이를 '로고스(λόγος, logos)'라 부르며, 우주의 근본 질서와 이성을 뜻하기도 한다.

 

비즈니스와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이는 '언어의 권위'와 '보이지 않는 가치'의 중요성을 시사한다. 리더의 명확한 비전과 메시지가 조직의 문화를 만들고 구체적인 성과로 이어지듯, 하나님의 말씀은 혼돈 상태였던 우주에 '코스모스(κόσμος)', 즉 질서를 부여하는 궁극적인 소프트웨어였다.

 

우리가 일터에서 정직한 언어를 사용하고 진리를 말할 때,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의 '다바르'를 닮은 작은 창조의 사역에 동참하는 셈이다. 세상은 물질로 가득 차 보이지만, 그 기저에는 하나님의 권능 어린 말씀이라는 논리적 체계가 흐르고 있다. 이 질서를 발견하고 따르는 것이 바로 지혜의 시작이다.

 

 

존재의 가치를 증명하는 심히 좋았더라의 인장

 

현대 심리학과 상담 현장에서 가장 빈번하게 다루어지는 주제는 '자존감의 결여'와 '자기 혐오'다. 경쟁 사회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너는 충분하지 않다"고 속삭이며 우리를 상품 가치로 평가한다. 성과를 내지 못하면 존재 가치가 없다는 압박은 영혼을 병들게 한다. 하지만 소요리문답 제9문의 마지막 구절은 모든 피조물을 향한 하나님의 최종 평가를 명시한다. "다 매우 좋았더라."

 

"매우 좋았더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토브 메오드(טוֹב מְאֹד)'이다. 이는 단순히 시각적으로 아름답다는 뜻을 넘어, 창조주의 의도에 완벽하게 부합하며 기능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훌륭하다는 전인격적 감탄사다. 하나님은 인간을 포함한 만물을 지으신 후,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 '매우 좋다'는 인장을 찍으셨다.

 

상담심리적 관점에서 보면, 이 선언은 최고의 치유제라 할 수 있다. 나의 가치는 내가 생산해내는 결과물에 있지 않고, 나를 지으신 창조주의 긍정 속에 있기 때문이다. '심히 좋았더라'는 선언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타인의 시선과 성과의 감옥에서 벗어나 존재 자체의 찬란함을 회복하게 된다.

 

 

리듬과 과정이 있는 창조, 서두르지 않는 경영

 

소요리문답은 창조가 '엿새 동안'에 이루어졌음을 명시한다.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면 찰나의 순간에 모든 것을 끝내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간이라는 틀 안에서 단계별로 만물을 빚으셨다. 이는 우리에게 과정(Process)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신성한 교육이 아닐까. 1일차부터 6일차까지 이어지는 창조의 순서는 하등한 것에서 고등한 것으로, 배경에서 주인공으로 나아가는 일종의 정교한 리듬을 보여준다.

 

이 '여섯 날의 리듬'은 생산성과 효율에 매몰된 현대 경영인들에게 중요한 통찰을 준다. 모든 위대한 일에는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며, 각 단계가 완료된 후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멈추어 서서 성찰하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또한 6일간의 창조 뒤에 따라오는 안식은, 성취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 성취를 하나님과 함께 즐거워하는 것이 최종 목적임을 암시한다.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는 활동 역시 이 창조의 리듬을 닮아야 한다. 무분별한 착취가 아닌 생태계와 조화를 이루는 창조, 과정의 정직함이 담긴 생산이 바로 소요리문답이 가르치는 성경적 비즈니스의 원형이다.

 

 

창조의 경이로움을 일상으로 끌어오기

 

창조는 수천 년 전 끝난 과거의 사건이 아니다. 하나님이 '아무것도 없는 중에서' 만물을 지으셨다는 고백은, 오늘날 우리 삶의 황폐한 광야와 공허한 마음속에서도 하나님이 새로운 일을 시작하실 수 있다는 소망의 근거가 된다. 비즈니스의 위기, 무너진 인간관계, 자아의 실종 앞에서도 창조주는 여전히 말씀으로 역사를 써 내려가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소창조주'로서 오늘 하루를 살아간다. 우리가 하는 예술, 우리가 내리는 비즈니스 결정, 우리가 가족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는 모두 무질서에서 질서를, 공허에서 충만을 이끌어내는 창조적 행위다.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시고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일상과 이웃을 향해 긍정의 시선을 던져야 한다. 하나님의 권능의 말씀을 신뢰하며, 창조의 리듬에 맞춰 성실히 일하고 깊이 안식할 때, 우리의 삶은 비로소 창조주가 의도하신 본연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허동보 목사(수현교회)
저서
ㆍ『왕초보 히브리어 펜습자』
ㆍ『왕초보 헬라어 펜습자』
ㆍ『왕초보 히브리어 성경읽기』
ㆍ『고난, 절망의 늪에서 피어난 꽃』
ㆍ『부와 기독교신앙』
ㆍ『그와 함께라면』
ㆍ『만남』외

 

 

 

작성 2026.02.05 11:04 수정 2026.02.05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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