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소요리문답 제8문
Q. 8. How doth God execute his decrees? A. God executeth his decrees in the works of creation and providence.
문 8. 하나님께서 그 작정을 어떻게 이루시는가? 답. 하나님께서 그 작정을 창조와 섭리의 일로 이루신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계 4:11)
땅의 모든 사람들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대에게든지 땅의 사람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은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고 할 자가 아무도 없도다(단 4:35)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의 왕권으로 만유를 다스리시도다(시 103:19)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3)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조성한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홀로 하늘을 폈으며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땅을 펼쳤고(사 44:24)

기획과 실행 사이의 거대한 간극을 메우는 법
우리는 수많은 계획을 세우며 살아간다. 새해의 다짐부터 기업의 중장기 전략 보고서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언제나 더 나은 미래를 설계(Design)하는 데 능숙하고 익숙하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가 않다. 경영학계의 격언 중 "전략은 10%이고 실행이 90%이다"라는 말이 있듯, 아무리 탁월한 기획이라도 실행(Execution)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것은 한낱 공상에 불과하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인간이 느끼는 상당한 스트레스는 '하고 싶은 일(기획)'과 '실제로 일어나는 일(현실)' 사이의 괴리에서 발생한다. 우리는 흔히 이 간극을 자신의 능력이나 운으로 채우려 애쓰지만, 그럴수록 한계에 부딪혀 좌절하기 일쑤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8문은 바로 이 '어떻게(How)'의 문제를 다룬다. 지난 7문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설계도인 '작정'을 다루었다면, 이제 그 설계도가 어떻게 우리 눈앞의 현실로 구현되는지를 설명한다. 하나님은 단순히 생각만 하시는 '관념적 존재'가 아니시다. 그분은 자신의 뜻을 가시적인 역사의 현장으로 끌어내시는 '능동적 실행자'이시다. 신학적으로 이를 하나님의 ‘외적 사역(Opera ad extra)’이라고 부른다. 하나님은 '창조'와 '섭리'라는 두 개의 커다란 손을 통해 자신의 계획을 완벽하게 집행해 나가신다.
창조, 무(無)에서 유(有)를 엑세스하는 혁신의 원형
하나님이 자신의 작정을 이루시는 첫 번째 방식은 '창조'다. 라틴어로는 '크레아티오 엑스 니힐로(Creatio ex nihilo)', 즉 '무로부터의 창조'다. 반면에 인간의 창조는 언제나 기존에 존재하는 재료를 재구성하는 '편집'이나 '조합'에 가깝다. 이에 대해 사회심리학자 김정운 박사는 '에디톨로지(Editology)'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창조는 존재하지 않던 것을 존재하게 하시는 절대적 주권의 행위다. 히브리어 '바라(בָּרָא, bara)'는 오직 하나님의 창조 행위에만 사용되는 동사로, 인간의 상상력을 초월하는 신적인 권능을 상징한다.
비즈니스 관점에서 창조는 '혁신(Innovation)'과 맞닿아 있다. 시장에 없던 가치를 제안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적 성품을 닮은 인간의 고귀한 활동이다. 그러나 성도의 창조적 활동은 자신의 이름을 높이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작정을 이 땅에 구현하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
또한, 상담심리학적 용어로 '창조성'은 자아실현의 핵심 동력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성취할 때 기쁨을 느끼는 이유는,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아 그분의 '이루시는 일'에 동참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창조를 통해 자신의 지혜와 영광을 가시화하셨으며, 우리 또한 일터와 가정에서 선한 가치를 창조함으로써 그분의 실행에 동참하게 된다.

섭리, 우연을 필연으로 엮어가는 세밀한 운영
창조가 '시작'이라면 섭리는 '지속'이다. 많은 현대인이 신을 '시계 제작자'처럼 여겨, 세상을 만들어만 놓고 태엽이 감긴 대로 돌아가게 방치했다고 생각하는 이신론(理神論, Deism)적 오류에 빠지곤 한다. 그러나 소요리문답은 하나님이 '섭리'를 통해 지금 이 순간에도 개입하고 계심을 분명히 한다. 헬라어 '프로노이아(πρόνοια)'는 '미리 본다'는 뜻과 함께 '돌본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하나님은 자신이 만드신 세계가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한순간도 시선을 떼지 않고 세밀하게 운영(Operation)하신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시장의 불확실성은 리스크(Risk)의 원천이지만, 섭리의 관점에서 불확실성은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이 일하시는 영역이다. 우리가 흔히 '운'이라 부르거나 '우연'이라 치부하는 사건들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정교한 조율이 숨어 있다.
고통받는 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위로는 '내 삶이 버려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돌보아지고 있다'는 감각이다. 섭리는 우리 삶의 파편들을 모아 하나의 아름다운 모자이크를 완성해가는 하나님의 집요한 사랑이다. 우리가 오늘 겪는 작은 만남, 사소한 실패, 예상치 못한 성공은 모두 하나님의 작정을 성취하기 위한 섭리의 리듬 속에 있다.
전능한 실행자를 신뢰하는 삶의 담대함
결국 "하나님이 어떻게 이루시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에게 '신뢰의 근거'를 제공한다. 우리는 계획만 거창하고 실행력은 없는 리더를 신뢰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 전의 약속을 창조와 섭리라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단 한 치의 오차 없이 완수해 오셨다. 그분은 우주를 경영하시는 '최고 경영자'이시자, 우리 영혼의 세밀한 부분까지 돌보시는 '상담가'이시다.
비즈니스 현장에서 성과에 대한 압박으로 밤잠을 설칠 때, 혹은 관계의 붕괴로 삶의 기반이 흔들릴 때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다. 내가 내 인생의 모든 것을 창조하고 섭리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자신의 작정을 이루어가고 계신다. 우리는 그분의 창조적 활동에 청지기로 참여하고, 그분의 섭리적 인도하심에 순종으로 반응하면 된다. 하나님의 완벽한 실행력을 믿을 때, 우리는 비로소 '내가 다 해야 한다'는 허상에서 벗어나 진정한 안식과 담대함을 얻을 수 있다. 오늘도 하나님은 당신의 삶이라는 캔버스 위에 창조와 섭리의 붓놀림으로 가장 위대한 걸작을 그려가고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