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그친 뒤 하늘에 걸린 무지개를 바라보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렇게 말한다.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색깔.” 어린 시절부터 익숙하게 외워온 이 문장은 마치 진리처럼 느껴진다. 그렇다면 정말 무지개는 정확히 일곱 가지 색으로만 이루어져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무지개는 ‘딱 일곱 색’이 아니다. 우리가 일곱 가지로 구분해 부를 뿐, 실제로는 수많은 색이 연속적으로 이어진 ‘스펙트럼’이다.
무지개는 햇빛이 공기 중의 물방울을 통과하면서 굴절되고, 반사되고, 다시 굴절되는 과정을 거치며 만들어진다. 이때 빛은 파장에 따라 서로 다른 각도로 분리된다. 이를 과학에서는 ‘분산’이라고 부른다. 긴 파장의 빨간색은 바깥쪽에, 짧은 파장의 보라색은 안쪽에 나타난다. 그러나 그 사이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중간 색들이 존재한다. 우리가 눈으로 인식하는 색은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왜 굳이 일곱 가지일까? 17세기 과학자 아이작 뉴턴은 프리즘 실험을 통해 빛이 여러 색으로 분리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는 처음에는 다섯 가지로 구분했지만, 이후 ‘일곱’이라는 숫자를 선호해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 보라의 일곱 색으로 정리했다. 당시 서양 문화권에서는 7이라는 숫자가 음악의 7음계, 고대 천문학의 7행성 등과 연결된 상징적 숫자였기 때문이다.
즉, ‘일곱 색 무지개’는 과학적 절대 기준이라기보다 문화적 선택의 결과에 가깝다. 또 다른 흥미로운 사실은, 문화권에 따라 무지개 색의 개수가 다르다는 점이다. 일부 국가에서는 다섯 색으로, 또 다른 지역에서는 여섯 색으로 표현한다. 일본에서는 한때 네 가지 색으로 분류하기도 했다. 색의 구분은 인간의 언어와 인식 체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심지어 무지개는 한 개만 있는 것도 아니다. 조건이 맞으면 ‘이중 무지개’가 나타나는데, 이때 바깥쪽 무지개는 색의 순서가 반대로 뒤집힌다. 물방울 내부에서 빛이 두 번 반사되기 때문이다. 더 희귀하게는 세 겹, 네 겹의 무지개도 관측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할까? 정답은 간단하다. 무지개는 일곱 가지로 나뉘어 ‘보인다’기보다, 우리가 일곱 가지로 ‘이름 붙여 왔다’는 사실을 이해하면 된다.
자연은 경계를 만들지 않는다. 경계는 인간이 이해하기 위해 그어 놓은 선일 뿐이다. 무지개를 다시 바라보면, 빨강과 주황 사이에도, 파랑과 보라 사이에도 수많은 색의 숨결이 이어져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결국 무지개는 일곱 가지가 아니라, 무한한 색의 흐름이다.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 역시 그러하다. 흑백으로 나누기 쉬운 세상이지만, 실제 삶은 무지개처럼 연속된 스펙트럼 위에 놓여 있다.
비가 그친 하늘을 올려다볼 때, 이제는 단순히 “일곱 색”을 외우기보다 그 사이의 수많은 색을 상상해보자. 그 순간, 세상은 조금 더 넓어질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