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동의 거친 바람이 휘몰아치는 자그로스산맥의 품 안에는, 세상의 어떤 지도에서도 정식 명칭을 찾을 수 없는 거대한 망령이 떠돌고 있다. 바로 '쿠르드'라는 이름이다. 4,500만 명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국가 없는 민족. 그들은 천년 넘게 산맥의 그림자 아래에서 자신들의 언어로 시를 읊고 춤을 추었으나, 인간이 그은 국경선은 언제나 그들의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산 외에는 친구가 없다"라는 그들의 서글픈 격언은 오랫동안 중동의 가장 아픈 비명이 되어왔다. 하지만 오늘날, 이 비극적인 땅의 서사 위로 전혀 다른 결의 빛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차가운 국제 정치의 체스판에서 소모되던 그들의 삶이, 인류 구원 역사의 거대한 퍼즐을 완성하는 결정적인 조각으로 부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사야의 환상: 앗수르의 대로가 열리다
기독교 복음주의의 시각으로 중동의 지도를 다시 펼쳐보면, 고대 예언자 이사야가 보았던 기묘한 환상이 오늘날 쿠르드 땅 위에서 겹쳐 보인다. 이사야 19장 23절에서 25절은 마지막 때에 일어날 영적 대변혁을 노래한다. 바로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의 회복이다. 성경은 애굽과 앗수르, 그리고 이스라엘이 함께 하나님을 경배하며 세계 중에 복이 될 것이라 선포한다. 여기서 우리는 '앗수르'라는 지명에 주목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고대 앗수르 제국의 심장부는 오늘날의 이라크 북부와 메소포타미아 일대, 즉 쿠르드 민족이 대대로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터전과 정확히 일치한다. 적지 않은 선교학자가 성경 속 앗수르를 오늘날의 쿠르드 거주 지역을 포함하는 영적 경계로 해석한다.
과거 피비린내 나는 전쟁과 증오만이 가득했던 이 죽음의 길 위로, 이제는 복음의 발걸음이 이어지는 '거룩한 대로'가 수축되고 있다. 이집트의 영적 부흥과 시리아, 이라크 쿠르드인들의 회복이 영적으로 연결되는 이 장면은, 하나님께서 중동의 깨어진 지체들을 치유하여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시겠다는 약속의 가시적 성취라고 볼 수밖에 없다.
고립된 산맥에서 피어난 겸손의 영성
왜 하나님은 하필 '국가 없는 민족' 쿠르드를 선택하셨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들이 겪어온 절망의 깊이에서 찾을 수 있다. 세상의 국경선에서 거절당하고, 강대국들의 약속이 매번 배신으로 끝나는 현장에서 쿠르드인들은 인간의 정치가 줄 수 없는 영원한 평안에 목말라 했다. 지상의 집을 갖지 못한 서러움은 역설적으로 '하나님 나라'라는 영원한 본향을 향한 강력한 영적 갈망으로 치환되었다.
그들은 산맥의 고독 속에서 자신들의 연약함을 처절하게 깨달았다. 인간의 힘으로 나라를 세우려 했던 모든 시도가 수포로 돌아간 지점에서, 그들은 비로소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의 통치에 마음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번영과 성공을 노래하는 천박한 신앙이 아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자들이 오직 창조주 한 분만을 붙잡는, 가장 순수하고 겸손한 '빈 들의 영성'이다.
이슬람권 복음화의 전략적 관문, 쿠르드
쿠르드 민족의 복음화는 단순히 한 민족의 회심을 넘어 중동 전체를 향한 전략적 '관문(Gateway)'의 의미를 지닌다. 쿠르드인들은 이슬람권 내에서도 문화적으로 유연하며 독특한 정체성을 유지해 왔다. 특히 시리아와 이라크 내전 이후 ISIS(이슬람국가)가 저지른 참혹한 만행을 목격하며, 수많은 쿠르드인이 이슬람이라는 종교적 굴레에 회의를 느끼고 그리스도께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이들은 언어적으로도 준비된 사명자들이다. 아랍어, 페르시아어, 터키어에 능통한 이들의 언어적 자산은 장차 주변 무슬림 국가들을 향한 강력한 '토착 선교사'로서의 잠재력을 의미한다. 박해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그들의 강인한 기질은 중동의 완고한 종교적 벽을 허무는 날카로운 복음의 검이 될 것이다. 지리적으로도 터키와 이란, 이라크와 시리아를 잇는 중심점에 있는 이들은, 흩어진 디아스포라 공동체를 통해 복음을 확산시키는 거대한 영적 네트워크의 핵심 고리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고난의 풀무질이 빚어낸 영적 권위
쿠르드 기독교인들은 존재 자체가 하나의 강력한 메시지다. 그들은 화학무기 학살의 현장을 지나왔고, 차가운 난민촌의 흙먼지를 마시며 신앙을 지켜냈다. 그들의 신앙은 안락한 의자에 앉아 듣는 교리가 아니라, 생존의 벼랑 끝에서 체험한 생명의 실체다. 그렇기에 그들의 고백에는 꾸며진 수사가 없다.
고난받는 민족이 전하는 복음은 같은 아픔을 겪는 중동의 다른 민족들에게 무엇보다 강력한 호소력을 갖는다. '번영'이 아닌 '십자가'를 말하는 그들의 신앙은, 박해와 멸시 속에 살아가는 중동의 소수자들에게 진정한 위로와 권위로 다가간다. 고난의 풀무질 속에서 정련된 그들의 영성은 오늘날 세속화된 서구 기독교와 한국 교회에 오히려 "진정한 제자의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무거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산맥보다 견고한 하나님의 신실하심
30년 넘게 이슬람의 거친 땅을 밟으며 내가 목격한 것은, 지도는 그들을 지웠으나 하나님은 단 한 번도 그들을 잊지 않으셨다는 경이로운 사실이다. 국경선 밖으로 밀려난 이들이 난민촌의 텐트 안에서 히브리서의 약속을 암송하며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볼 때, 나는 이사야가 보았던 그 '대로'가 바로 이곳에 놓여 있음을 확신한다.
우리는 그들을 '비운의 민족'이라 부르며 동정의 시선을 보내지만, 하늘의 눈에는 그들이야말로 '나의 백성 앗수르'라 칭함을 받는 영광의 주인공들이다. 세상이 그들을 이용하고 버릴 때, 그리스도는 그들의 상처 난 발을 씻기며 산맥보다 견고한 평안을 약속하셨다. 지금 쿠르드 땅에서 일어나는 복음의 불길은 인간의 선교 전략이 만들어낸 성과가 아니다. 그것은 흩어진 자들을 기어이 찾아내어 자신의 품에 안으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집념이 거둔 위대한 승리다.
우리 역시 인생이라는 거친 산맥을 넘으며 길을 잃을 때가 있다. 그러나 쿠르드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그들을 예언의 주인공으로 세우셨듯, 고난 중에 있는 우리 또한 하나님의 '대로' 위에 서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흩어진 파편들이 모여 하나님의 장엄한 풍경을 완성해 가듯, 쿠르드인들의 영적 귀환은 오늘 우리에게 진정한 본향이 어디인지를 묻고 있다. 산맥은 말이 없으나, 그 위를 걷는 이들의 찬양은 이제 온 중동을 향해 울려 퍼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