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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역사] 126. “궁중의 시가 어떻게 민중의 노래가 됐나… 류카의 놀라운 탄생”

류카(琉歌)의 탄생: 오모로를 넘어 류큐(琉球)의 새 서정을 열다

주술의 노래 ‘오모로’는 왜 쇠퇴하고 류카(琉歌)가 떠올랐나

와카(和歌)와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가 류큐 문학에 남긴 흔적

고대 류큐(琉球)의 문학은 오랫동안 주술성과 제의성을 띤 가요인 ‘오모로’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사회 구조가 재편되면서, 오모로가 지녔던 오래된 기능은 점차 약화되었다. 

 

그 빈자리를 메운 것이 바로 단시형(短詩型) 서정 가요 ‘류카(琉歌)’였다. 류카의 성립은 단순한 형식 변화가 아니었다. 그것은 류큐 왕국이 외래 문화를 흡수하면서도 자기 언어와 감정, 음악적 리듬을 결합해 전혀 다른 문학 세계를 창조해낸 사건이었다.

 

류카의 구조적 포지셔닝 [이미지=AI 생성]

 

류카의 탄생 배경에는 일본 본토의 와카(和歌) 문화 유입이 자리하고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1585년 류큐 사절 아다니야 소슌(安谷屋親雲上宗春)이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알현하러 갔을 때 가회에 참석한 사실이 확인된다. 이는 16세기 후반 이미 류큐 지식인들이 와카 문화를 향유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후 17세기 초 사쓰마(薩摩) 번의 침공을 계기로 일본 본토와의 문화적 접촉이 잦아지면서, 와카는 사족(士族) 계층의 핵심 교양으로 정착해 갔다. 슈리(首里)의 유력 가문에서는 정기적으로 가회가 열렸고, 때로는 국왕까지 참석하여 시를 즐겼다고 한다. 

 

곧 와카는 류큐 지식인 사회에서 정치적 품격과 문화적 세련됨을 상징하는 문학 장르가 되었다. 이 흐름을 상징하는 인물이 시키나 세이메이(識名盛命)이다. 

 

그는 1711년 류큐 최초의 고어 사전인 『혼효험집(混効験集)』 편찬을 기획했고, 이 사전에는 『겐지모노가타리』, 『이세모노가타리』, 『츠레즈레구사』 등 일본 고전 문학의 표현과 내용이 풍부하게 인용되었다. 이는 당시 류큐 문인들이 단순히 일본 시형을 흉내 낸 것이 아니라, 와카를 제대로 짓기 위해 일본 고전문학 전체를 깊이 학습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 같은 문학적 축적은 19세기 기완 쵸호(宜湾朝保)의 『오키나와집(沖縄集)』 편찬과 ‘오키나와 36가선(三十六歌仙)’의 추앙으로 이어지며 하나의 전통으로 완성되었다.

 

그러나 류큐 문학의 진정한 위대함은 모방에서 멈추지 않았다는 데 있다. 일본 와카의 5·7·5·7·7 형식이 류큐에 수용되는 과정에서, 류큐인들은 자기 언어의 호흡과 정서에 더 잘 맞는 독자적 형식을 만들어냈다. 그것이 8·8·8·6의 30음으로 이루어진 류카였다. 

 

류카는 평이한 문자 운용과 규칙적 리듬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와카와는 전혀 다른 생명력을 지녔다. 특히 이 형식은 류큐어의 고유한 음률과 잘 결합해, 남국 특유의 정감과 서정을 자연스럽게 담아낼 수 있었다.

 

무엇보다 류카를 류카답게 만든 결정적 요소는 음악성이었다. 와카가 기본적으로 눈으로 읽고 조용히 읊는 문학이었다면, 류카는 삼선(三線)의 반주에 맞추어 불리는 노래였다. 

 

14세기 말 중국에서 전래된 삼선은 류큐에서 독특한 감수성을 얻었고, 8·8·8·6조의 운율과 만나면서 문학을 활자에서 음성으로, 기록에서 감흥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 때문에 류카는 궁중의 연회장뿐 아니라 민간의 삶 속에서도 널리 울려 퍼질 수 있었다. 말하자면 류카는 읽는 시가 아니라 함께 부르고 나누는 시였다.

 

이 장르의 성장 과정에서 수많은 명인들이 등장했다. 사족 계층에서는 야라 센에키(屋良宣易), 소케이 츄기(惣慶忠義), 요나바루 료쿠(与那原親方良矩), 모토부 쵸큐(本部按司朝救), 고치에이 쵸에이(東風平親方朝衛), 타마구스쿠 쵸쿤(玉城朝薫), 헤시키야 쵸빈(平敷屋朝敏) 등이 이름을 떨쳤다. 이들은 한시, 와카, 화문(和文)에 두루 정통한 지식인으로서 류카의 품격을 높였다. 그러나 류카를 진정한 민중 문학으로 완성시킨 존재는 오히려 사회의 중심이 아닌 주변에 있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요시야 치루(吉屋チルー)와 온나 나베(恩納ナベ)이다. 요시야 치루는 어린 나이에 유곽으로 팔려가 비극적 삶을 살다 짧은 생을 마감했지만, 자신의 운명과 사랑의 비애를 노래로 남겼다. 그 작품은 섬세한 은유와 높은 문학성으로 지금까지도 천재적 경지로 평가된다. 반면 온나 나베는 농촌의 생활감과 거친 자연, 남녀 간의 정을 꾸밈없는 언어로 풀어내며 깊은 향토적 울림을 남겼다. 한 사람은 유곽의 비극을, 다른 한 사람은 농촌의 숨결을 담았지만, 두 여성 모두 류카가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결국 류카는 왕부의 궁중 문학이면서 동시에 민중의 문학이었다. 국왕이 즐기던 연회장에서도, 농민이 일하던 들판에서도, 유녀가 눈물 흘리던 골목에서도 같은 형식의 노래가 불렸다. 이 점에서 류카는 류큐 사회 전체를 관통한 보기 드문 공통 문화였다. 오모로가 제의와 주술의 언어였다면, 류카는 인간의 감정과 일상의 체험을 직접 노래하는 새로운 서정의 언어였다.


 

류카(琉歌)는 일본 본토의 와카(和歌)를 단순히 받아들인 결과물이 아니었다. 류큐인들은 와카와 일본 고전문학의 깊이를 학습하면서도, 그것을 자기 언어의 리듬과 삼선(三線)의 음악성, 그리고 삶의 현장과 결합해 완전히 새로운 문학 장르로 다시 빚어냈다. 오모로의 시대가 저물고 류카의 시대가 열린 것은 단순한 문학 교체가 아니라, 류큐가 외래 요소를 주체적으로 용해해 자기만의 서정을 완성한 역사적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국왕과 사족만이 아니라, 농촌 여성과 유곽의 비극적 여성 가인까지 포함한 폭넓은 인간 군상이 있었다.

작성 2026.04.18 09:11 수정 2026.04.18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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