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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칼럼] 제재의 붕괴: 미국·이스라엘의 전쟁이 스스로 파놓은 함정

달러 패권의 균열, 그리고 이란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금융 질서

호르무즈에서 비트코인으로 통행료를 받는 나라 - 이란이 설계하는 탈달러 신세계

제재의 역설: 이란을 고립시키려 했더니 오히려 이란이 세계화됐다

▲ AI 이미지, 중동디스커버리신문 제공

지도를 펼쳐놓고 호르무즈 해협을 찾아보라. 손가락 한 마디보다 좁은 그 수로를 통해 전 세계 원유와 LNG의 약 20퍼센트가 매일 흘러간다. 그 좁은 목을 이란이 틀어쥔 순간, 세계 에너지 시장은 숨을 멈췄다. 그러나 더 놀라운 일은 그 이후에 벌어졌다. 이란은 그 해협을 지나려는 선박들에 통행료를 요구하기 시작했고, 단, 달러는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비트코인, 아니면 위안화로만 받겠다고 했다. 세계의 석유 회사 중 일부는 실제로 그 조건을 받아들였다. 이는 단순한 해상 분쟁의 한 장면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수십 년간 미국이 구축해 온 제재 체제의 근간이 조용히, 그러나 돌이킬 수 없는 속도로 허물어지는 과정이다.

 

제재라는 무기, 그 오래된 환상

 

사회학자들과 국제정치학자들은 오래전부터 경고해왔다. 경제 제재는 표적 정권을 무너뜨리지 못한다. 오히려 그 나라의 평범한 시민들이 먼저 고통받는다. 그러나 미국은 그 경고를 무시하고 제재를 점점 더 광범위하게, 더 자주 사용해 왔다. 그 결과가 지금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너무 자주 쓰인 무기는 결국 무뎌진다.

 

미국의 제재가 효력을 가지는 근본 원리는 달러의 지배력에 있다. 전 세계 무역 결제의 압도적인 비중이 달러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달러 시스템에서 배제되는 순간 해당 국가는 국제 거래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미국은 그 달러 지배력을 지렛대로 삼아 적국을 옥죄어왔다. 문제는, 그 지렛대를 너무 남용하면 상대방들이 달러 없이도 살아가는 방법을 스스로 개발한다는 점이다.

 

암호화폐: 국경 없는 탈출구

 

이란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암호화폐를 금융 거래의 핵심 수단으로 활용해왔다. 블록체인 데이터 플랫폼 체이널리시스의 보고서에 따르면, 제재 대상 기관들로 유입된 암호화폐 규모는 2025년 한 해 동안 전년 대비 694퍼센트 증가하여 무려 1,540억 달러에 달하는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2025년 4분기, 이란 혁명수비대(IRGC)만으로도 수령액의 50퍼센트, 약 30억 달러를 흡수했다. 이란은 이렇게 확보한 암호화폐를 위안화로 전환하고, 그것을 다시 러시아산 물자 구매나 아시아 시장 교역에 투입한다. 제재망의 사각지대를 파고드는 정교한 우회로가 이미 작동 중인 것이다.

 

비트코인의 구조적 특성은 이 우회로를 더욱 견고하게 만든다. USDT 같은 스테이블코인과 달리 비트코인은 완전히 탈중앙화되어 있어 어떤 발행 기관도 이를 동결할 수 없다. 호르무즈 해협에 현재 약 1억 7,500만 배럴의 원유가 탱커에 실려 대기 중인 상황에서, 배럴당 1달러 수준의 통행료라도 일부 선박들이 지불한다면 이란에는 상당한 현금 흐름이 생긴다.

 

하왈라와 물물교환: 보이지 않는 혈맥

 

암호화폐와 위안화는 이 대안 금융 구조의 표면일 뿐이다. 그 아래에는 수백 년의 역사를 가진 또 다른 체계가 숨 쉬고 있다. 바로 하왈라(hawala)다. 하왈라는 실물 자금의 이동 없이 브로커 네트워크를 통해 결제를 가능케 하는 비공식 송금 시스템이다. 이란의 경우, 다양한 국가에 설립된 페이퍼 컴퍼니들이 중개자 역할을 하며 이란 기업들의 거래를 이란과 직접 연결되지 않는 방식으로 처리한다. 이 시스템이 정교한 이유는 단지 이란 혼자만 이득을 보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왈라가 자리 잡은 국가들은 상업적 이익, 수수료 수입, 고용 창출을 함께 누린다. 이 구조 속에서 주변국들은 제재 회피의 방관자가 아니라 자발적인 이해관계자로 편입된다.

 

물물교환의 확산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21년 이란과 스리랑카는 채무 상환을 차(茶) 수출로 대신하는 협정을 체결했다. 파키스탄과도 유사한 물물교환 협정이 존재한다. 인도는 현재 석유와 쌀을 교환하는 방식을 검토 중이며, 러시아와의 산업재 교환 확대도 거론된다. 이 모든 거래는 달러 결제와 국제 은행 시스템을 완전히 우회한다.

 

달러 패권의 균열, 그러나 아직 붕괴는 아니다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달러 패권이 하룻밤 사이에 무너지지는 않는다. 현재도 전 세계 원유 거래의 약 80퍼센트가 달러로 결제되고, 달러는 전 세계 외환보유고의 약 57퍼센트를 차지한다. 반면 위안화의 비중은 여전히 2퍼센트 수준에 불과하고, 엄격한 자본 통제는 위안화의 진정한 기축통화화를 가로막는 구조적 한계로 작용한다. 그러나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은 대체가 아니라 침식이다. 느리지만 멈추지 않는 지각 변동이다. 미국·이스라엘의 전쟁이 가속화시킨 것은 그 침식의 속도다. 달러 의존의 대가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게 된 나라들이 하나둘씩 대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전략의 역설: 이란을 고립시키려다 이란을 세계화시키다

 

이 전쟁의 설계자들은 이란의 저항 인프라를 해체하려 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다. 이란의 제재 회피 메커니즘은 이제 국제화되고 있다. 분석가들이 '회피의 축(axis of evasion)'이라 부르는 이 네트워크는 특정 지역을 넘어 아시아, 중동, 유럽의 일부 기업들까지 끌어들이는 구조로 확장되고 있다. 전쟁이 제재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제재의 근거 자체를 허물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이 분쟁이 내포한 가장 치명적인 역설이다.

 

글을 마치며, 한 사람의 고백으로

 

그동안 제재라는 이름 아래 수십 년간 이어진 고통이 있었다. 약국에서 약을 구하지 못하고, 아이들이 영양실조로 자라야 했던 이름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 사람들을 향한 무기가 결국 그 무기를 만든 자들에게 되돌아오는 것을 보면서, 나는 인간의 교만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역사는 늘 그렇게 증언해 왔다. 힘으로 만든 세계 질서는 힘으로 무너진다. 진정한 질서는 공의와 신뢰 위에 세워져야 한다. 나는 그것을 믿는다. 그리고 지금 이 시대가, 그 오래된 진리 앞에 다시 한번 무릎을 꿇고 있다고 느낀다.

작성 2026.05.03 02:27 수정 2026.05.03 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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