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אֹהֶל (오헬) - 장막, 천막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날이 뜨거울 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창 18:1)
아주 오래전에 오리역에서 노숙을 했던 적이 있다. 그때가 몇 년도인지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오리역이 막 생긴 즈음이었던 것 같다. 역 주변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었다. 그때 노숙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면, 난 서울역으로 가지 않았을까 싶다. 최소한 먹거리는 해결할 수 있었을테니 말이다.
이런게 인생의 역설이 아닐까 싶다. 본의 아니게 2011년부터 서울역에서 노숙인 사역을 한 적이 있다. 당시 난 노숙인 사역은 생각을 해 본 적도 없었다. 단지 어느 지인 목사님의 강권에 의해 서울역으로 불려 가서 그 분의 후임으로 사역을 시작했었다. 서울역 광장에서 예배를 드리는 교회였기에 함께 천막을 펴고, 함께 철수하는 작업과 더불어 찬양을 담당했다. 그야말로 천막의 시간들이었다.
난 공부를 아주 많이 늦게 시작한 케이스라 30대 후반이었던 당시에 전도사였다. 그리고 장발에 꽁지머리를 하고 다녔다. 물론 장발에 꽁지머리를 한 이유는 Rock Spirit이 충만하기도 했지만, 실상 그때는 머리를 깎을 경제적 여유가 없었다. 당시 매해 연말에 확인했던 내 통장 잔고는 1만원 미만이었다. 매월 월세와 각종 세금 때문에 기도를 하지 않을 수 없었던 나의 10여년이었다.
하필 노숙인 사역이라니! 월급도 없이 차비 정도만 받는 무급사역이었다. 무일푼에 차비마저 장애인 무임 승차권으로 전철을 타고 다니는 일개 전도사가 돈을 벌기는 커녕 무급으로 노숙인 사역을 했다는 것을 '믿음'으로 포장하고 싶지는 않다. 게다가 장애인이었고 학교를 다녀야 해서 일반적인 직업을 찾을 수는 없었다. 학교를 그만두면 모든 것이 해결되었겠지만, 주머니에 유서와 자퇴서를 매일 들고 다니면서도 자퇴를 하지 않았다.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모르겠지만, 실행에 옮기려 할 때마다 마치 뜨거운 날의 나무 그늘과 산들바람처럼 무언가가 나로 하여금 숨 쉴 틈을 만들어 주었다.
아는 사람들은 알다시피 서울역에 가면 그 입구에서부터 지린내가 진동을 한다. 그 냄새 속에서 노숙인들에게 소주병으로 머리를 맞아 봤고, 머리 끄댕이도 잡혀 봤다. 천막을 설치하다가 손을 다쳐 퉁퉁 부은 손으로 한동안 고생했던 기억도 있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지만, 그 시간들은 마치 보호받고 있는 시간들이었던 것 같다. 끝 없으리라 느껴지던 고뇌와 절망 속에서 움츠린 자세로 도약을 준비할 수 있었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가급적 이야기를 하고 싶진 않지만, 사실 그 때가 가끔 그리워진다. 가끔은 그 지독했던 지린내가 그리움의 향기가 되어 코 끝에 스치우기도 한다.
허동보 목사(Rev. Huh Dongbo) | 수현교회(Suhyun Church)
저서 | 『왕초보 히브리어 펜습자』, 『왕초보 헬라어 펜습자』, 『왕초보 히브리어 성경읽기』, 『고난, 절망의 늪에서 피어난 꽃』, 『부와 기독교신앙』, 『그와 함께라면』, 『만남』, 『AI시대, 히브리어로 답하다』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