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탁 위에 놓인 한 권의 책자
얼마 전,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받아온 책자 하나가 식탁 위에 놓여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안내문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RDTA 기질검사 결과지’였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의 성향과 기질을 파악하기 위해 진행한 검사라고 했다. 아이는 별다른 의미 없이 결과지를 건네주었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 종이를 한참 바라보게 되었다.
부모라는 이름의 착각
부모라는 이름으로 아이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웃고 속상해하는지 잘 알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결과지를 읽어 내려갈수록 생각보다 낯선 문장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익숙했던 모습과 낯선 설명
낯을 가리는 모습,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성향은 평소에도 느끼고 있었던 부분이었다. 하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기질들도 함께 적혀 있었다. 평소에는 단순히 지나쳤던 행동들이 사실은 아이의 성향과 연결되어 있다는 설명을 읽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이를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내가 바라본 모습만 알고 있었던 건 아닐까.”
조용한 밤의 읽기
그날 밤, 아이가 잠든 뒤 다시 결과지를 꺼내 읽었다. 조용한 방 안에서 아이의 기질을 설명하는 문장들을 천천히 읽다 보니, 마치 아이의 마음속을 아주 조금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었다.
약점이라는 단어 앞에서
결과지에는 강점과 약점이 함께 적혀 있었다. 그런데 자연스럽게 시선은 약점이라는 표현에 더 오래 머물렀다. 부모라는 존재는 늘 아이가 부족한 부분부터 바라보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더 단단해졌으면 하는 마음, 덜 상처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고쳐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만 한참을 읽다 보니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아이의 기질은 고쳐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이해해야 하는 하나의 성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빠르게 적응하고 먼저 다가가는 것이 편하지만, 누군가는 천천히 마음을 열며 자신의 속도로 세상을 받아들인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쉽게 ‘빠른 아이’를 기준으로 삼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랑이라는 이름의 조급함
돌이켜보면 나 역시 아이에게 “괜찮아, 해봐.”라는 말을 자주 했던 것 같다. 용기를 주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어쩌면 아이에게는 자신의 속도를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신호였을지도 모른다. 그날 나는 일기장에 이런 문장을 적었다.
“아이를 더 잘 키우고 싶다는 마음이, 때로는 아이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꾸고 싶다는 욕심이 되기도 하는구나.”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 문장을 적고 나니 마음 한편이 조금 조용해졌다.
결과지보다 중요한 것
다음 날, 아이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떤 상황이 불편했는지, 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 하나씩 물어보았다. 그런데 대화를 나누다 보니 결과지 속 문장보다 더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다. 아이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부모도 함께 배운다
부모는 늘 아이를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때로는 아이를 이해하는 일이 먼저라는 사실을 뒤늦게 배우게 된다. 아이를 바꾸기 전에, 왜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바라보는 일 말이다.
물론 RDTA 검사 하나가 아이의 모든 것을 설명해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람의 성향은 살아가며 계속 변하고, 경험과 관계 속에서 달라지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결과를 맹신하기보다, 아이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완벽히 알 수 없기에
부모가 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사랑하고 있는데도 그 사랑이 때로는 조급함이 되고 기대가 된다. 아이를 위한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아이를 힘들게 만들 때도 있다.
그래서 요즘은 예전보다 더 자주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아이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함께 생각해볼 질문
나는 아이를 이해하려 하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려 하고 있는가.
아이의 속도를 존중하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아이를 한 명의 독립된 사람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결국 부모가 배워가는 것
아마 부모는 아이를 완벽히 알 수 없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완벽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더 오래 바라보게 되고, 더 깊이 이해하려 노력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분명해진다. 아이를 키운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어쩌면 부모 역시 아이를 통해 함께 자라가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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