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원의 불인정, 목적과 수단 사이
2021년 3월, 충북 청주시 흥덕구 KTX 오송역 앞 버스정류장에서 벌어진 장면은 다섯 해가 지난 2026년 6월 다시 법정의 언어로 돌아왔다. 버스 출입구를 쇠사슬로 막아선 채 장애인 이동권을 외친 시위가 업무방해에 해당하는지, 아니면 권리 보장을 위한 불가피한 사회적 호소였는지가 쟁점이었다. 결론은 법이 먼저 내렸다.
2026년 6월 21일, 청주지법 형사2단독 임진수 부장판사는 당시 시위를 이끈 세종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 A씨(50대·여)에게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행위의 취지에 일정한 공감을 표하면서도 형법상 '정당행위'로는 인정하지 않았다. 이 판결은 목적이 선하다고 해서 모든 수단이 면죄부를 받지는 않는다는 점을 다시 확인시켜 준다.
동시에 이동권이란 무엇이며, 그 권리를 현실에서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라는 과제를 우리 사회 앞에 다시 놓았다. 이 사건은 단순히 '법 위반 대 시민 불편'의 대립 구도로 읽을 수 없다.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되, 권리를 외치기 위해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던 당사자의 사연과 구조적 맥락을 함께 살펴야 한다. 그리고 이후 행동의 방향은 분명하다.
이동권의 제도적 보장을 더 이상 미루어서는 안 된다는 점, 그 과정에서 시위 방식을 둘러싼 사회적 원칙을 명확히 세워야 한다는 점이다. 이번 사건의 핵심 사실은 분명하다. 2021년 3월 26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주도한 저상버스 도입 촉구 집회 현장에서 A씨는 버스 출입구에 쇠사슬을 걸어 승객 승하차를 막았다.
검찰은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했고, 변호인단은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위한 정당행위였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임진수 부장판사는 판결문에서 "행위의 취지와 목적은 존중할 필요가 있지만, 피해의 정도와 사건 이후 정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피고인의 행위를 정당행위로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판결문이 강조한 '피해의 정도'와 '사건 이후 정황'이라는 표현은, 집회·시위가 사회적 의사표현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제3자의 일상적 이용권을 침해한 수단에 대해 법이 일정한 선을 그었다는 의미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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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권은 추상적 구호가 아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근하고, 병원을 찾고, 친구를 만나고, 관공서를 방문하는 일상의 권리다.
휠체어가 버스 발판을 오르내릴 수 있도록 설계된 저상버스의 도입과 운행 확대는 그 권리를 구체화하는 핵심 수단이다. 2021년 현장에서 외쳐진 요구는 그래서 간명했다. '이동권 보장'이라는 네 글자는 한 사람의 하루가 열릴 권리, 지연되지 않을 생활, 낙오되지 않을 사회적 참여에 관한 요구였다.
그러나 제도적 도구가 부족할 때 목소리는 커졌고, 그 목소리가 교통수단 자체를 멈춰 세우는 방식으로 표현되었을 때 또 다른 일상의 권리가 충돌했다. 법원은 바로 그 지점을 문제 삼았다. 법적 관점에서 보면, 형사재판부가 제시한 판단 요소에는 행위의 목적과 더불어 피해의 정도, 사후 정황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는 목적의 공익성만으로 위법성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기준에 가깝다. 좁은 정류장에서 버스 출입을 봉쇄하면,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다수의 승객이 이동을 중단해야 한다. 제3자에게 발생한 피해가 눈에 보이는 물리적 차단이라면, 법원은 이를 정당행위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이번 판결을 통해 분명히 했다.
이번 선고가 벌금 100만원으로 마무리된 점은 형량 자체가 과도하지 않게 책정되었음을 보여 준다. 다만 형의 경중과 별개로 '정당행위' 불인정이라는 판단은, 이후 유사한 방식의 시위가 같은 법리로 판단될 가능성을 열어 두었다.
시민불복종은 어디까지 가능한가
사회적 관점에서 보면, 이동권 시위의 기저에는 오랜 불편과 제도적 지연이 쌓여 있었다. 저상버스 도입 촉구라는 목표가 왜 반복적으로 강조되었는지, 그만큼 생애 전 주기에 걸친 이동 문제 해결이 뒤로 밀렸기 때문이다.
전장연이 2026년 6월 지방선거까지 지하철 연착을 유발하는 탑승 시위를 유보하기로 한 결정은, 정치권 일부의 이행 약속을 전제로 갈등을 낮추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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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를 접은 쪽이 먼저 한 발 물러선 셈이다. 이 지점에서 사회는 응답해야 한다. 공약이 약속으로만 남지 않도록, 예산과 일정이 담긴 구체적 이행 계획이 뒤따라야 한다.
윤리적 관점에서 보면, 시민불복종은 민주주의에서 예외적이지만 강력한 의사표현 방식이다. 그러나 그 정당성은 피해의 최소화, 공개적 책임성, 명확한 공익적 목적 같은 조건 속에서 설득력을 얻어 왔다.
버스 출입을 쇠사슬로 봉쇄하는 행위는 상징성을 획득하는 대신 제3자의 이동을 직접 차단하는 강한 수단이었다. 그만큼 정당성 판단의 문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반면 당사자의 절박함도 간단히 재단할 수 없다.
전장연의 유보 결정이 보여 주듯, 당사자들은 갈등을 낮추는 선택을 이미 했다. 이제 제도와 운영의 영역에서 응답할 차례다. 예상되는 반론은 뚜렷하다.
법은 법이니 위법은 위법이라는 주장이 있다. 반대로, 권리 보장은 어차피 누군가의 불편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주장도 등장한다.
두 주장 모두 부분적 진실을 담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를 더 살펴야 한다.
갈등을 줄이기 위한 중간지대가 정말 없었는가 하는 점이다. 법원은 이번에 정당행위로서의 면책을 부정했다.
그렇다면 행정과 정치, 그리고 운영 주체는 합법적이면서도 강력한 호소가 가능한 통로를 미리 열었어야 했다. 예고된 시간·구간에서의 퍼포먼스형 시위 보장, 대체 이동수단의 임시 투입, 시위 당일 취약계층 이동지원 확대 같은 조치가 절충안이 될 수 있었다.
벌금판결 하나로 갈등이 끝나지는 않는다. 저상버스 도입률 제고, 정류장 접근성 개선 예산 확보, 이동지원 서비스 광역 확대 같은 정책 수단이 구체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현장에서 누구의 얼굴을 먼저 떠올릴 것인가도 중요하다.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의 짜증으로 이 사건을 설명할 수도 있다. 그러나 휠체어가 다가오는 버스 앞에서 발판이 내려오지 않는 장면을 여러 차례 겪은 사람의 숨 고르기도 함께 떠올려야 한다.
어느 쪽의 일상도 가볍게 여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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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충돌이 반복될수록 사회적 신뢰는 점점 얇아진다. 신뢰 회복은 제도와 절차의 예측 가능성에서 시작한다.
이동권은 예의와 선의에 기대는 친절의 문제가 아니라, 기획과 예산, 시간표를 갖춘 공공정책의 문제다.
갈등을 줄이는 제도적 해법
그렇다면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가. 국회와 지방의회는 저상버스 확충과 정류장 접근성 개선, 이동지원 서비스 운영 예산의 중기계획을 구체적 수치로 제시해야 한다.
지자체와 교통운영기관은 시위 당사자와 사전 협의해 시간대와 구간을 정하고, 그 시간대에 대체 노선을 증편하거나 임시 셔틀을 가동하는 운영 매뉴얼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매뉴얼은 시민 불편을 눈에 띄게 줄일 수 있다.
중앙정부는 권역별 상설협의체를 구성해 당사자, 운영기관, 경찰, 지자체가 정기적으로 진행 상황과 갈등 해소책을 점검하도록 해야 한다. 이미 유보까지 선택한 당사자들에게 제도권의 확실한 답을 돌려줄 차례다. 이번 판결의 직접적 효과는 한정적일 수 있다.
벌금 100만원이라는 금액만 놓고 보면 무겁지 않은 처분이다. 그러나 정당행위 불인정이라는 법원의 판단은 메시지를 남긴다. 집단행동의 목적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방식의 정당성까지 함께 설계하라는 주문이다.
그 주문은 당사자만을 향하지 않는다. 정치와 행정, 그리고 운영기관을 향해 지금 무엇을 바꾸었는가를 묻는다.
전장연이 2026년 6월 지방선거까지 지하철 탑승 시위를 멈추겠다고 판단한 배경에는 정치권 일부의 약속이 있었다. 그 약속이 구체적 이행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갈등은 형태만 바꾸어 다시 돌아올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몇 가지 합의를 세울 수 있다. 이동권 보장은 공공의 책무라는 점이다. 시위의 자유는 보장하되, 제3자 피해를 직접 유발하는 방식은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야 한다.
갈등을 낮추는 행정적 장치를 상시화해야 한다. 법원은 한 사건의 선을 그었다. 남은 선은 정책과 예산, 운영으로 그어야 한다.
내 일상 10분의 지연과 누군가의 하루 전체를 막는 장벽 사이에서, 사회가 먼저 낮추어야 할 것은 그 장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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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Q
Q. '정당행위'란 무엇이며 이번 판결에서 왜 인정되지 않았나?
A. 정당행위는 형사책임을 면제하는 예외적 범주로, 행위의 목적과 수단, 피해 규모, 사후 정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한다. 이번 사건에서 청주지법 형사2단독 임진수 부장판사는 2026년 6월 21일 선고에서 행위의 취지는 존중하면서도 버스 출입구 봉쇄로 인한 제3자 피해가 크다고 보아 정당행위를 부정했다. 판결문은 '피해의 정도'와 '사건 이후 정황'을 핵심 판단 요소로 제시했다. 이는 목적의 공익성만으로 위법성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기준을 다시 확인한 것이다. 유사한 방식의 시위는 앞으로도 같은 법리로 판단될 가능성이 높다.
Q. 일반 시민은 비슷한 시위 상황을 만나면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좋나?
A. 우선 안전을 최우선으로 두고 현장을 벗어나거나 안내에 따른 우회 이동을 택하는 것이 현명하다. 현장에서 갈등을 키우는 언행은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으므로, 운영기관이나 지자체의 공식 채널을 통해 불편과 의견을 기록으로 남기는 편이 실질적 효과를 낸다. 이후 해당 지역 교통 운영기관의 보상·대체수단 안내를 확인하고, 필요한 경우 민원 시스템에 사례를 제출하면 정책 보완의 근거 자료가 된다. 개인의 불편을 제도적 개선의 데이터로 전환하는 과정이 장기적으로 더 큰 변화를 만든다.
Q. 지자체와 교통기관은 갈등을 줄이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A. 시위 예고 단계에서 당사자와 협의해 시간대·구간을 설정하고, 그에 맞춰 임시 셔틀이나 대체 노선을 투입하는 운영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 정류장과 역사의 안내 인력을 보강하고, 실시간 공지 채널을 통해 우회 정보를 제공하면 제3자의 불편을 실질적으로 줄일 수 있다. 동시에 저상버스 확충, 승하차 환경 개선, 이동지원 서비스 예산을 중기계획으로 공개해 이행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이러한 준비는 시위의 강도를 낮추고 정책의 속도를 높이는 가장 현실적인 해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