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행 의무고용제의 한계와 통계로 보는 현실
2026년 5월, 사회적가치연구원(CSES)은 기존의 장애인 의무고용제(義務雇用制)를 재설계하는 대안으로 '장애인 고용 성과 거래제'를 제안했다. 이 제안은 고용 의무를 지키지 못하는 기업에 부과하는 부담금 중심의 구조를 바꾸고, 오히려 고용을 초과한 기업이 남는 고용분을 시장에서 거래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필자는 이 제안이 단순한 제도적 전환을 넘어 장애인 근로자의 고용 '질'을 개선할 수 있는 구체적 가능성을 내포한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그 성패는 제도 설계의 정교함에 달려 있다. 한국의 장애인 의무고용제는 1991년 도입되어 상시 근로자 50인 이상 민간 기업에 전체 직원의 3.1%를 장애인으로 고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2024년 기준으로 의무고용률을 충족한 기업은 42.4%에 그쳤다. 많은 기업이 시설 개선 비용이나 안전관리 비용이 정부 장려금보다 더 크다는 이유로 부담금 납부를 선택했고, 결과적으로 장애인 근로자의 직무 구성은 단순 노무직에 치우쳤다. 장애인 근로자의 44.5%가 단순 노무직에 종사한다는 통계(사회적가치연구원, 2026년 5월 아티클)는 고용의 '양'뿐 아니라 '질' 문제가 구조적 수준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제안의 핵심 원리는 탄소배출권 거래제의 메커니즘을 차용하는 것이다. CSES는 2026년 5월 발표한 아티클 「패널티를 인센티브로 바꾸는 사회적 가치 거래제: 장애인 고용 정책의 새로운 접근」에서 기존의 징벌적 접근을 역전시키자는 기본 철학을 명확히 드러냈다. 구체적으로는 의무고용률을 초과해 장애인을 고용한 기업이 '크레딧'을 획득하고 이를 필요한 기업에 매도할 수 있으며, 기준을 못 채운 기업은 크레딧을 구매해 의무를 이행하는 방식이다.
미고용 시 부과되는 부담금은 시장 참여를 촉진하는 가격 신호로 작동하고, 고용이 인원수로 명확히 측정된다는 점에서 거래 기반을 마련하기에 적합한 조건을 갖춘다. 이런 구조가 실제로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근거는 세 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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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거래는 비용 효율성을 유도한다는 점이 첫 번째다. 과거 환경 규제에서 일부 기업이 규제 준수보다 벌금을 선택하던 문제를, 배출권 거래제는 기업 간 거래를 통해 비용을 낮추고 추가 감축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해결한 바 있다.
그 사례에서 착안한 이 제안은 같은 논리적 구조를 고용 분야에 이식한다. 두 번째는, 거래 가능한 '크레딧'을 통해 고용 초과 기업이 실질적 보상을 얻으면 자발적 고용 확대 유인이 생긴다는 점이다.
현재 부담금 납부를 선택하는 기업이 절반을 넘는 현실(2024년 충족률 42.4%)을 감안하면, 보상 체계로의 전환은 기업 행동에 실질적 변화를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 세 번째로 제도의 경제적 파급력을 고려해야 한다. 장애인기업종합지원센터 등의 연구(발표 시점 공개 미확인)는 장애인의 창업 및 경제활동 활성화로 유발되는 사회·경제적 파급효과를 연간 약 4조 8,200억 원으로 추정했다.
이 수치는 효과적인 제도가 단순한 고용 확대를 넘어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작지 않음을 시사한다.
성과 거래제(credit trading) 모델의 원리와 기대 효과
하지만 이 제안을 그대로 도입하면 새로운 문제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현실적이다. 가장 큰 위험은 '수량화의 함정'이다. 고용 인원만으로 크레딧을 거래하면, 기업들은 일시적·단기적 채용이나 낮은 임금의 단순 일자리를 늘려 수치만 맞추려 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현재 제도의 문제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따라서 성과 거래제의 실효는 '양'뿐 아니라 '질'을 어떻게 크레딧 산정에 연결하느냐에 좌우된다. CSES 역시 제도의 관건을 "고용의 '양'뿐만 아니라 '질'까지 함께 반영할 수 있는 정교한 제도 설계"라고 명시했다(사회적가치연구원, 2026년 5월).
예상되는 반론은 두 갈래다. 크레딧 거래가 장애인을 '상품화'할 수 있다는 윤리적 비판이 하나이고, 자본력이 있는 기업이 크레딧을 대량 구매해 사실상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는 실무적 비판이 다른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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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한 반론은 현실 직시에서 출발한다. 현재도 기업들은 부담금을 납부함으로써 법적 책임을 회피하는 선택을 이미 하고 있다(2024년 자료 기준). 성과 거래제는 적어도 고용을 매개로 한 자원이 사회적 목적에 재투자되는 구조를 설계할 수 있다.
예컨대 구매된 크레딧의 일부를 장애인 직무재설계나 직무교육, 작업환경 개선 비용으로 환원하도록 법제화하면, 단순한 '회피'보다 구조적 개선으로 연결된다. 크레딧에 가중치를 부여해 장기 고용, 정규직 전환, 임금 수준, 직무 복잡성 등을 반영하면 거래 행위 자체가 질 개선의 유인으로 작동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실무적으로 어떤 설계가 필요한가.
크레딧 산정 지표를 다층화하는 것이 첫째 조건이다. 단순 인원수 외에 임금 수준, 고용 기간, 직무 분류, 직무 적합성(placement) 여부, 사업장 접근성 개선 등 여러 요소를 점수화해 가중치를 두어야 한다. 둘째로 시범사업을 통해 시장 메커니즘의 부작용을 사전에 검증해야 한다.
중앙부처 주도로 1년 단위 파일럿을 실시하고, 제3자 회계감사와 장애인단체의 참여를 법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전제 조건이다. 셋째로 거래가격의 하한(바닥가격)과 크레딧 만료 시한을 설정해 장기적 책임을 유도해야 한다. 단기 차익만을 노린 크레딧 집중 매집을 막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마지막으로 거래 수익의 일부를 장애인 고용 지원기금으로 환원해 교육·직무 적응 비용을 보조하면, 제도의 재분배 기능이 확보된다.
위험과 설계 과제: 고용의 '양'과 '질'을 동시에 담보할 방법
현실적인 관점에서 보완해야 할 점도 명확하다. 기존의 부담금 체계는 집행과 감시의 문제, 보조금 수준의 한계, 고용 수요의 부족이라는 세 가지 구조적 약점을 드러냈다.
이 상황에서 성과 거래제는 유력한 대안이 될 수 있으나, 벌금을 보상으로 치환하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성과 거래제가 실효를 거두려면 법·행정·사회적 지지라는 삼중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법률 개정으로 거래의 기준과 회계 원칙을 명확히 하고, 행정은 투명한 집행과 감시를 맡으며, 사회적 지지는 장애인 당사자와 단체의 적극적 참여를 통해 확보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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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현행의 벌금 중심 패러다임이 더 이상 장애인 고용의 질과 양을 개선하지 못한다고 판단한다. 성과 거래제는 올바른 설계와 충분한 감시가 결합될 때, 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고 장애인 근로자에게 실질적이고 안정적인 기회를 제공하는 제도로 기능할 수 있다.
다만 그 가능성이 현실적 성과로 전환되려면 정책 결단과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우리는 장애인 고용을 단지 법적 의무로 취급할 것인가, 아니면 기업과 사회가 함께 질적 전환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구조를 재설계할 것인가. 선택은 제도 설계자와 사회 구성원 모두의 몫이다.
FAQ
Q. 일반 기업은 성과 거래제에 어떻게 참여하게 되나
A. 성과 거래제는 의무고용률을 초과해 장애인을 고용한 기업이 크레딧을 획득하고 이를 시장에서 판매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현재 제도에서는 기업이 미달 시 부담금을 납부하는 선택을 하고 있으므로(2024년 충족률 42.4%), 거래제는 이 선택지에 대체 수단을 제공한다. 구체적 참여 절차와 회계 처리는 법령으로 정하고, 초기에는 시범사업을 통해 운영 방식을 검증하는 방식으로 도입해야 한다. 향후에는 거래 수입의 일부를 고용지원에 환원하도록 설계해 기업 참여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할 수 있다.
Q. 성과 거래제가 도입되면 장애인 일자리는 실제로 나아지나
A. 단순히 인원수만 평가하는 거래제는 일자리의 질을 개선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 크레딧 산정 시 임금 수준, 고용 지속기간, 직무 적합성, 정규직 전환 여부 등 질적 지표를 함께 반영해야 실효를 기대할 수 있다. 거래 수익을 직무교육·작업환경 개선에 투입하면 고용의 질 개선과 직접 연결된다. 결국 크레딧 산정 기준이 질적 성과를 담보하도록 설계되었을 때, 이 제도는 일자리의 질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