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금만 더 열심히 해.”
“왜 이렇게 끈기가 없어?”
“뭐든 하나는 끝까지 해봐야지.”
아이를 키우다 보면 부모가 자주 하게 되는 말이다. 시작한 일을 쉽게 그만두거나 공부에 의욕을 보이지 않는 아이를 보면 걱정부터 앞선다. 앞으로 살아가려면 끈기도 있어야 하고, 힘든 일을 견디는 힘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무엇을 위해 열심히 해야 하는지 모르는데 어떻게 열심히 할 수 있을까. 자신이 원하는 목표가 아닌데 어떻게 오래 붙들고 있을 수 있을까.
우리는 아이에게 ‘열심히 하라’고 말하면서 정작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에 마음이 움직이는지는 충분히 묻지 않을 때가 많다.
GRIT을 흔히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심리학자 앤절라 더크워스는 GRIT을 장기적인 목표를 향한 열정과 끈기로 설명한다. 여기에는 끈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열정’도 함께 있다.
그렇다면 아이에게 끈기를 요구하기 전에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이 있다.
아이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좋아하는 것이 없는 게 아니라 아직 충분히 만나보지 못했을 수 있다
부모교육 현장에서 “우리 아이는 좋아하는 게 없어요”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꿈이 없어요.”
“하고 싶은 게 없대요.”
“게임이나 휴대전화 말고는 관심 있는 게 없어요.”
부모 입장에서는 답답할 수 있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이 분명하지 않다고 해서 의욕이 없는 아이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아직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발견할 만큼 충분한 경험을 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아이의 관심은 처음부터 완성된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다. 우연히 접한 활동이 재미있어서 한번 더 해보고, 조금 알게 되면서 궁금해지고, 실력이 늘면서 관심이 깊어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네 꿈이 뭐야?”라고 답을 재촉하기보다 아이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질문해보는 것이 좋다.
“오늘 뭐가 제일 재미있었어?”
“다시 해보고 싶은 게 있었어?”
“어떤 걸 할 때 시간이 빨리 가는 것 같아?”
“요즘 자꾸 궁금해지는 건 뭐야?”
이런 질문은 당장 진로를 결정해주지는 않는다. 대신 아이가 ‘나는 무엇에 관심을 갖는 사람인가’를 알아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때 부모가 주의할 점도 있다. 아이가 무언가를 좋아하는 순간 곧바로 성취의 대상으로 바꾸지 않는 것이다. 그림을 좋아한다고 미술학원부터 알아보고, 축구를 좋아한다고 선수 가능성을 판단하며, 과학에 관심을 보인다고 입시와 연결하면 작은 호기심이 또 하나의 과제가 될 수 있다.
때로는 그냥 좋아하게 두는 시간이 필요하다. 좋아서 해보고, 궁금해서 찾아보고, 실패해도 다시 해보고 싶은 마음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GRIT은 억지로 버티는 힘이 아니라 ‘계속하고 싶은 이유’를 발견하는 과정이다
GRIT을 이야기하면 ‘힘들어도 참는 것’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무조건 참고 견디는 것을 GRIT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해 지속하는가이다.
아이가 피아노를 배우다가 그만두고 싶다고 해보자. 부모는 “또 포기하려고?”라고 말하기 쉽다. 하지만 먼저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연습이 어려워서 피하고 싶은 것인지, 실력이 늘지 않아 좌절한 것인지,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자신감을 잃은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관심이 다른 곳으로 옮겨간 것인지에 따라 부모의 대응도 달라져야 한다.
어려움 때문에 그만두고 싶다면 조금 더 도전해보는 경험이 필요할 수 있다. 반대로 충분히 경험한 뒤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방향을 바꾸는 것도 배움이다.
GRIT은 한번 시작한 모든 일을 무조건 끝까지 붙드는 능력이 아니다. 자신에게 의미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고, 그것을 발견했을 때 쉽게 포기하지 않으려는 힘을 기르며, 어려움이 생기면 방법을 바꾸어 다시 시도하는 과정에 가깝다.
그래서 아이의 GRIT을 키우려면 ‘끈기’만큼 ‘관심’을 소중하게 바라봐야 한다. 좋아하는 경험이 쌓이면 더 알고 싶어질 수 있다. 더 알고 싶으면 스스로 찾아보게 된다. 조금씩 잘하게 되면 더 어려운 것에도 도전해보고 싶어질 수 있다.
그러다 실패를 만났을 때 끈기가 필요해진다. ‘좋아해서 시작하고, 의미를 발견하며, 어려움을 넘어 지속해보는 경험’이 쌓이면서 아이만의 GRIT도 자랄 수 있다.
부모의 역할은 목표를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자기 방향을 찾도록 돕는 것이다
정보와 답을 쉽게 얻을 수 있는 환경일수록, 무엇에 관심을 두고 무엇을 해보고 싶은지를 스스로 묻는 힘이 더욱 중요해질 수 있다.
AI에게 질문하면 답을 얻을 수 있고, 계획을 세우거나 글을 쓰고 아이디어를 얻는 과정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오히려 더 중요해지는 질문이 있다.
“나는 무엇을 알고 싶은가?”
“나는 무엇에 관심이 있는가?”
“나는 무엇을 해보고 싶은가?”
“나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AI는 수많은 선택지를 제안할 수 있지만 그중 무엇에 마음이 움직이는지는 아이 자신이 알아가야 한다.
부모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아이보다 먼저 목표를 정해주면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갈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빠르게 가는 것과 자기 길을 가는 것은 다르다.
부모의 역할은 완성된 인생지도를 건네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자신의 지도를 그려갈 수 있도록 다양한 길을 경험하게 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아이가 아직 꿈이 없다고 지나치게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 좋아하는 것이 자주 바뀌는 것 역시 자신에게 맞는 것과 맞지 않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일 수 있다.
그 경험들이 모두 직업이나 입시로 연결되어야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무엇을 좋아해봤는지, 얼마나 몰입해봤는지, 어려움을 만났을 때 어떻게 반응했는지, 그 경험을 통해 자신에 대해 무엇을 알게 됐는지가 중요하다.
그렇게 아이는 조금씩 자신을 알아간다. 그러니 “열심히 해”라고 말하기 전에 한번 물어보자.
“너는 왜 이걸 하고 싶어?”
“이걸 할 때 어떤 기분이 들어?”
“조금 힘들어도 다시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목표를 끝까지 해내는 힘만이 아니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차리고, 관심을 탐색하며, 자신에게 의미 있는 목표를 만들어가는 경험이 필요하다.
GRIT은 “포기하지 마”라고 반복해서 말한다고 생기지 않는다. 먼저 마음이 움직여야 한다. 궁금해야 한다. 해보고 싶어야 한다. 그 마음이 어려움을 만났을 때는 조금 더 시도해볼 수 있도록 부모가 기다려주는 것이 필요하다.
목표 없는 아이에게 무조건 “열심히 해”라고 말하기 전에 먼저 물어보자.
“요즘 네가 좋아하는 건 뭐야?”
그 작은 관심이 당장 꿈이나 진로가 되지 않아도 괜찮다. 좋아하는 것을 만나고, 충분히 경험하고, 자신에게 중요한 이유를 발견하는 과정에서 아이는 자기 삶의 방향을 조금씩 찾아간다.
자신이 선택한 방향을 쉽게 포기하지 않고 걸어가는 힘.
그런 경험들이 쌓일 때 아이의 GRIT도 함께 자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