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일상에서 남의 분수 모르는 행동이나 꼴불견을 비꼴 때 흔히 쓰는 "병신 육갑한다"라는 말. 다소 거칠고 투박한 비속어로 통하지만, 그 기원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동양 철학의 정수인 60간지와 옛 조상들의 점술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육갑(六甲)이란 무엇인가
여기서 '육갑'은 하늘의 기운을 나타내는 10간(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과 땅의 기운을 뜻하는 12지(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가 맞물려 돌아가는 '육십갑자(六十甲子)'의 줄임말입니다. 갑자, 갑술, 갑신, 갑오, 갑진, 갑인처럼 60년 동안 '갑(甲)' 자가 총 여섯 번 들어간다고 해서 옛 선조들은 이를 '육갑'이라 불렀습니다.
옛날에는 연도와 날짜뿐 아니라 한 사람의 사주팔자와 길흉화복을 따질 때 모두 이 육십갑자를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그만큼 육갑은 삶의 나침반이자 시간을 헤아리는 가장 중요한 지혜였습니다.
왜 '육갑을 짚는다'가 비꼬는 말이 되었을까
달력과 시계가 귀하던 시절, 역학자나 점술가들은 사주와 절기를 계산할 때 왼손 엄지손가락으로 나머지 네 손가락의 12마디를 능숙하게 짚어가며 셈을 했습니다. 이를 두고 '육갑을 짚는다' 혹은 '육갑한다'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고도의 암기력과 역학적 지식이 필요한 전문적인 기술이었습니다.
그런데 역학에 대한 기본 지식도 없거나 손가락이 굳어 온전치 못한 사람이 남들이 하는 것을 어설프게 흉내 내며 손가락을 엉뚱하게 꼽고 아는 척하는 모습을 보며, 사람들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잘난 척 헛짓거리한다"고 비아냥거리던 것이 오늘날의 속어로 굳어졌습니다.
붉은 원숭이의 해 '병신(丙申)년'과 언어유희
여기에 재미있는 민간의 언어유희도 한몫을 했습니다. 육십갑자의 33번째 간지가 바로 붉은 원숭이를 뜻하는 '병신(丙申)'입니다. 옛사람들이 동음이의어를 활용해 "병신(丙申)도 엄연히 육갑(六甲)에 들어간다"며 글자를 이용한 해학적 말장난을 덧붙인 속설도 널리 퍼졌습니다.
말의 뿌리를 알면 그 시대 사람들의 삶과 생각이 오롯이 보입니다. 남을 탓하는 거친 표현 하나에도 조상들의 역학 지식과 해학적인 풍자가 얽혀 있다는 사실이 자못 흥미롭습니다.
미식1947신문사 (김아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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