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구체적이며, 매일 아침 눈을 비비고 일어났을 때, 우리에게 주어지는 그것이 바로 삶이다.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 자체이기도 하고, 우리가 아침에 먹은 음식이기도 하다.
작은 개울이 모여 강으로 흐르듯이 일상이 모여 삶이 된다.”
구본형 작가의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읽다가 이 문장을 만났습니다.
덥석 미끼를 문 물고기처럼 나태한 저의 일상이 이 문장에 낚인 것이겠지요.
작가의 글에 ‘나’를 비추어보고 싶었습니다.
변명하거나 숨기지 않은 내 모습을 마주할 때 비로소 그 모자란 모습을 인정하게 되고, 마침내 그 불만스러운 모습을 부수어 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매일 아침 눈을 비비고 일어나서 무엇을 하고,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 오늘 아침에 나는 무엇을 어떻게 먹었는가? 라는 평범한 질문이 날카롭게 저를 찌릅니다.
저는 눈을 뜨자마자 핸드폰으로 빅 뉴스나 일기예보, 미국 주가지수를 찾아봅니다. 그리고 지각하지 않을 최후의 시간을 남겨두고 후다닥 씻고 옷을 입습니다.
오늘 있어야 할 즐거운 일을 상상하거나 가까운 사람들을 떠올리며 축복하지도 못합니다. 아침마다 번지는 햇살과 특유의 향기를 음미하거나 새로 주어진 하루에 감사하는 마음도 희미합니다.
아침도 건성으로 먹습니다. 아내가 차려주는 따뜻한 밥을 먹을 때도 그저 마파람에 게눈감추듯 후딱 먹어 치웁니다. 누가 이런 모습을 본다면 도망 다니는 사람이 불안한 모습으로 배를 채운다고 여길 것입니다.
바쁜 출근길에서도 저는 망상으로 허우적거립니다. 요즘 저는 매일 억수로 운수가 좋은 주인공으로 변신하는 공상에 빠지곤 합니다. 제가 운전을 하면서 생각하는 것인지 망상 속에서 운전을 하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입니다. 상상이 내가 심은 나무에서 탐스러운 감이 열리기를 기대하는 것이라면 공상은 이웃집 감나무에 열린 감이 우리집 앞마당에 떨어지길 기다리는 것입니다.
다시금 작가의 말에 저를 비춰 봅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마주했던 것들이 삶의 단면이라면 제 삶은 골다공증 환자의 뼈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아침부터 망상에 빠져 있으니 저의 삶이 허황된 것이라 해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아침밥을 먹는 제 모습이 삶이라면 저는 여전히 삶에 쫓기고 있는 셈입니다.
일상이 모여 삶이 되는 것이라면 저의 오늘은 어제와 똑같은 일상이었기에 지금까지 ‘이것이 내 삶이다’ 라고 할 것이 없습니다.
저는 매일 새롭던 아침 시간을 허투루 보냈습니다.
제 삶은 고사하고 우리 가족에게조차 콩 반 쪽 만큼의 미소도 제때 베풀지 못했습니다. 반짝였던 시간에 저는 눈을 감아 버린 것입니다.
결국 “나는 나에게서 존경을 얻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구본형 작가는 추상적 삶을 가장 염려했는데, 저의 삶이 바로 ‘추상적’이었습니다.
다행히 작가는 익숙한 것을 버리고 새 길로 나서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아쉬워하라. 어제와 다를 것 없이 보내버린 오늘이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리는 것을 참으로 가슴 아프게 생각하라.”
그렇습니다.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처럼 강물은 수백 년을 흐르고 있지만 같은 물이 두 번 다시 흐른 적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의 나는 어제와 다르고, 또 달라져야 합니다.
수시로 이어지는 후회와 다짐, 오늘 읽은 한 장의 책, 아침에 뛰었던 3km 거리, 외국어와 자격증 공부, 일상이 헐거워질 때마다 되새겨 보는 버킷리스트, 감사 인사와 감탄은 어제의 나와 결별하는 의지적 행위들입니다.
무엇보다도 미래를 현실로 소환하는 시간이 많아져야 합니다.
만약 미래가 없다면 인간은 현실에 안주하거나 권태를 느낄 게 분명합니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지만 언젠가는 현재가 되는 시점이 필연코 찾아옵니다.
따라서 미래와 현재와 이어져 있기에 이 두 지점은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미래를 구체화할수록 삶은 구체성을 띠고 역동적으로 변합니다.
반대로 지금 우리가 행복감을 자주 느낄수록 미래는 행복한 현실로 바뀌어 가고 있을 것입니다.
어려운 말이 아닙니다. 만약 책을 쓰는 작가를 소망하는 사람이라면 침대의 온기를 박차고 일어나는 것은 쉬운 일이 됩니다.
삶을 아끼고 즐기고 싶은 열망이 있다면 아침 공기, 아침밥에 미소를 짓고, 가까운 이들과 기억 속의 사람들을 수시로 축복하겠지요.
“지금 우리는 미래를 수정할 수 있는 ‘현재’라는 자리에 서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는 자신의 삶을 위해 시간을 내어야 합니다.
생계와 낙오를 면하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것에 시간을 내주어야 합니다. 병아리에게 모이를 주듯이 말입니다.
내일 아침에는 저의 ‘미래’를 엿보려고 합니다.
덧말.
편지 제목과 인용 글은 모두 구본형 작가의 <<익숙한 것과의 결별>>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독자와 작가가 대화할 때 비로소 공명하는 책읽기, 생생한 독서가 됩니다.
이럴 때 독서는 죽어있는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펄떡거리는 체험이 되어 독자의 삶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그러니 ‘읽고 쓰기’는 본래부터 한 몸이자 단짝입니다.
독자님들이 오늘 편지를 읽고 ‘읽고 쓰기’에 흥미를 느끼고 시도해 보시길 바랍니다.
K People Focus 김황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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