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사일은 날아갔다. 그러나 아무 데로나 날아간 것이 아니었다. 이란이 최근 퍼부은 보복의 불길은 어떤 나라의 이름 위에서는 활활 타올랐고, 또 어떤 나라의 이름 앞에서는 멈춰 섰다. 쿠웨이트와 바레인, 그리고 요르단은 표적이 됐지만, 아랍에미리트(UAE)와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는 비켜 갔다. 같은 걸프 하늘 아래 어떤 도시는 공습경보에 떨었고, 어떤 도시는 평온했다. 이 갈림은 우연이 아니다. 그 뒤에는 한 치의 빈틈도 없이 계산된 차가운 셈법이 숨어 있다.
도대체 이란은 무엇을 기준으로 칼끝의 방향을 정한 것인가
먼저 표적이 된 곳들의 면면을 보면 군사적 논리가 또렷이 드러난다. 바레인에는 미 5함대 사령부가 있고, 쿠웨이트에는 역내 병참의 동맥인 알 살렘 공군기지가 있다. 이란은 이 두 곳을 미국의 지휘와 보급을 떠받치는 핵심 거점으로 본다. 요르단의 아즈라크 기지 역시 표적 목록에 올랐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모두 21곳을 때려 그 가운데 4곳을 파괴했으며 요르단 기지의 F-35 격납고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는 이란 측의 발표다. 요르단은 미사일 다섯 발을 요격했다고 밝혔고, 쿠웨이트는 방공망을 가동했으며, 바레인에는 경보가 울렸다. 이란 외무부의 논리는 한층 노골적이다. 이들 나라가 이란을 치는 발판으로 영토를 내주었으니, 그 책임은 쿠웨이트와 바레인 정부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칼을 휘두른 자리만큼이나, 칼을 거둔 자리도 많은 것을 말해 준다. UAE와 카타르, 사우디는 이번에 화를 면했다. 독일 국제안보문제연구소의 연구자 하미드 레자 아지지는 이란이 표적을 특정 군사시설로 한정함으로써 '비례적 대응'의 모양새를 갖추려 했다고 분석한다.
여기에 또 하나의 결정적 변수가 겹친다. 최근 테헤란과 아부다비, 도하, 리야드 사이의 물밑 접촉이 부쩍 잦아진 것이다. 전문가들은 바로 이 외교의 가느다란 끈이 세 나라를 표적에서 비켜 가게 한 보이지 않는 손이었을 수 있다고 짚는다. 때리지 않음으로써 보내는 신호, 곧 '우리는 너희와 다툴 뜻이 없다'는 무언의 전갈인 셈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 '선별'은 처음부터 그러했던 것이 아니다. 전쟁 초기인 지난 2월 말과 3월, 이란의 분노는 가리지 않고 쏟아졌다. 그때는 UAE의 두바이와 다프라, 카타르의 도하와 알우데이드, 사우디까지 무차별로 불벼락을 맞았다. UAE에서는 이란의 드론과 미사일에 사람이 목숨을 잃었는데, 그 희생자들은 파키스탄과 네팔, 방글라데시에서 건너온 이주노동자들이었다. 걸프 국가들은 한목소리로 이란의 공격을 규탄하는 공동성명을 냈다. 그러니 지금의 절제는 본성이 아니라 학습된 계산이다. 무차별의 분노에서 정교한 선별로, 이란의 칼끝이 달라진 것이다.
요르단은 그 계산법의 가장 흥미로운 예외다. 이 나라는 전쟁 내내 한 번도 표적이 된 적이 없었다. 그런 요르단을 이번에 때렸다는 사실을, 분석가들은 이란이 전쟁을 걸프 너머 역내 전체로 넓히려는 전략의 신호로 읽는다. 페르시아만의 산유국들에 국한됐던 불길이, 이제 비(非) 걸프 아랍국가의 하늘로까지 번질 수 있다는 불길한 예고다. 누군가를 새로 표적에 넣는다는 것은, 곧 전쟁의 지도가 넓어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영리한 절제는 오래갈 것인가. 전문가들의 답은 회의적이다. 이것을 항구적인 정책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긴장이 다시 치솟으면, 이란 안에서 더 강하게 응징하자는 내부의 압력이 커질 수 있다. 오늘의 자제는 내일의 분노 앞에서 얼마든지 무너질 수 있는 모래성이다. 사우디가 이란에 외교를 선호하나 공격이 계속되면 대응하겠다고 경고한 것도, 이 균형이 얼마나 아슬아슬한 줄타기인지를 보여 준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섬뜩한 진실이 하나 떠오른다. 이 계산법 속에서 나라는 더 이상 사람이 사는 땅이 아니라, 상대에게 보내는 한 통의 '메시지'로 환원된다. 어떤 나라는 본보기로 얻어맞고, 어떤 나라는 회유를 위해 곱게 비켜진다. 때림도 메시지요, 때리지 않음도 메시지다. 그 정교한 신호의 교환 속에서, 정작 그 하늘 아래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운명을 한마디도 거들지 못한다. 공습경보에 잠 깬 쿠웨이트의 아이도, 두바이의 건설 현장에서 스러진 이름 모를 이주노동자도, 누구를 때리고 누구를 비켜 갈지 정하는 그 회의실에는 결코 초대받지 못했다.
계산에서 비롯된 침묵을 우리는 과연 평화라 부를 수 있을까
이 차가운 셈법 앞에서 오래 마음이 무겁다. 전쟁에도 '시기'가 있고 평화에도 '시기'가 있다고 한 옛 전도자의 말이 떠오른다(전도서 3:8). 그러나 그 시기를 정하는 손은 늘 권력의 회의실 안에 있고, 그 결정의 무게는 늘 회의실 바깥의 약한 이들이 짊어진다. 영리하게 절제된 보복은 무차별 폭격보다는 분명 덜 잔인할지 모른다. 그러나 계산에서 비롯된 평온을 우리가 진정한 평화라 부를 수 있을까. 때리지 않기로 '선택된' 안도는, 언제든 다시 표적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과 한 몸이기 때문이다.
자기 이름이 누군가의 지도 위에서 표적이 될지 안전지대가 될지조차 알지 못한 채 잠을 청하는 그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잠시 마음을 모은다. 부디 그들이 내일 아침, 계산된 침묵이 아니라 참된 평화의 햇살 아래 눈뜰 수 있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