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그 이름을 생각하면 늘 그렇습니다. 타협을 모르는 날 선 검 같았던 사람, 바로 터툴리안(Tertullian, 160?~220?)입니다. 테르투야누스라고도 부르는 이 인물은 교회사에서 참 독특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는 북아프리카의 거대 도시 카르타고 출신입니다. 지금으로 치면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 인근이지요. 오늘날 그곳은 푸른 지중해를 품은 평화로운 관광지처럼 보이지만, 초기 기독교 역사에서는 눈물과 피로 얼룩진 영적 최전방이었습니다. 로마의 무자비한 박해 속에서도 가장 뜨겁게 신앙을 불태웠던 라틴 기독교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법률을 공부한 지식인이었던 그는 차갑고 명석한 머리와 불같은 심장을 동시에 가졌던 인물이었습니다.
아테네와 예루살렘이 무슨 상관인가!
당시 교회에는 세상의 철학과 신학을 섞어보려는 시도가 유행했습니다. 똑똑해 보이고 싶었던 것이죠. 그때 그가 던진 유명한 사자후가 있습니다. 아테네와 예루살렘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외침이었습니다. 아테네는 세상 학문과 철학을 상징하고, 예루살렘은 오직 하나님의 계시와 복음을 뜻합니다. 그는 세상의 그럴듯한 논리로 복음을 가위질하는 행태를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말라는 고함이었습니다.
동시에 그는 우리가 매주 고백하는 '삼위일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만들어낸 천재였습니다. 한 분 하나님이 어떻게 세 위격으로 존재하는지, 그 신비로운 진리를 라틴어 '트리니타스(Trinitas)'라는 명쾌한 단어로 정리해 냈습니다. 겉보기에는 세상 학문을 거부한 고집쟁이 같지만, 실제로는 복음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지성을 쏟아부었던 위대한 변증가였습니다.
우리는 매일 선택의 기로에 섭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적당히 섞이라고 유혹합니다. 직장에서 조금만 눈감으면 편해질 수 있다고 속삭이지요. 친구들 사이에서 튀지 않으려면 적당히 유행을 따르고 세상 가치관에 발을 맞춰야 할 것 같습니다. 마치 아테네의 계산기를 두드리며 예루살렘의 신앙을 유지하려는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학창 시절 시험을 볼 때 커닝을 하면 쉽게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세상의 방법입니다. 하지만 빵점을 맞더라도 내 정직을 지키겠다고 다짐하는 순간, 우리는 예루살렘의 길을 걷게 됩니다. 터툴리안은 바로 그 순간에 진짜 신앙의 능력이 나타난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순교자의 피가 교회의 씨앗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고통을 피하기 위해 세상과 타협하는 백 명의 가짜보다, 손해를 보더라도 진리를 붙드는 한 명의 진짜가 세상을 바꾼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조금 더 밝고 희망찬 미래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 미래는 거창한 구호로 오지 않습니다. 오늘 내 삶의 자리에서 세상의 편법을 거부하는 정직한 발걸음 하나에서 시작됩니다. 남들이 다 넓은 길로 갈 때, 묵묵히 좁은 길을 택하는 청소년의 용기, 손해를 보더라도 정직하게 사업을 운영하는 직장인의 결단이 모일 때 우리 사회는 비로소 맑아집니다.
터툴리안이 보여준 그 순전한 용기는 오늘날 무기력해진 우리에게 다시금 가슴 뛰는 희망을 전해 줍니다.
허동보 목사(Rev. Huh Dongbo) | 수현교회(Suhyun Church)
저서 | 『왕초보 히브리어 펜습자』, 『왕초보 헬라어 펜습자』, 『왕초보 히브리어 성경읽기』, 『고난, 절망의 늪에서 피어난 꽃』, 『부와 기독교신앙』, 『그와 함께라면』, 『만남』, 『AI시대, 히브리어로 답하다』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