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는 진로를 ‘평생 진행되는 시간적 개념’이라고 주장한다. 진로는 시간의 흐름에서 4단계의 시장이 있다고 주장한다. 진학(進學) 시장, 취업(就業)시장, 결혼(結婚) 시장 그리고 전직(轉職) 시장이 그것이다. 이런 시장을 선택하느냐? 마느냐는 별개로 모든 사람이 어떤 선택과 결정해야만 하는 시장이다. 어떤 이는 능동적인 선택을 하지만, 다른 이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거나 선택을 당할 수밖에 없다.
두 자녀를 대학에 보낸 엄마의 고민
그럼에도 ‘진로(進路)’를 말하면 항상 중·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진로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진로’는 중 고등 학생의 ‘진학을 위한 도움’ 정도로 인식되면서, 중고등학교의 전유물이 되곤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성인이 되었을 때도 진로가 고민이다. 2개월 전에 필자는 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진로 특강을 하였다. 많은 부모님이 자녀의 진로에 관심이 있지만, 일부 학부모님은 자신의 진로에 대한 고민을 더 많이 하고 있었다. 현재 나이가 47세인 한 어머니는 두 자녀를 대학에 진학시켰다. 그런데 인공지능 시대에 대학에 다니는 자녀의 진로도 걱정이지만, 자신의 진로도 걱정이라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는데 무엇을 해야 먹고 살 수 있을까가 걱정이었다. 그러면서 무엇을 하면 좋겠느냐는 질문과 함께, 자기가 진로를 준비하는데 추천해 줄 책이 있느냐고 질문했다.
학교에서 학생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사이, 사회에서는 부모의 진로가 새로운 화두가 되었다. 즉 자녀의 진학(進學) 시장 못지않게 부모의 전직(轉職) 시장이 크게 움직이는 것이다. 자녀의 진학 시장은 시간적 여유가 있어 재수도 가능하다. 하지만, 부모의 전직 시장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족 생존에 직결된 문제이므로 시간을 지체하기 힘든 면이 있다. 중고등학생 자녀들이야 자기의 미래만 고민하면 되는데, 부모는 자녀의 생존 길을 만들어 주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고, 세상의 욕심대로 굴러가므로, 부모는 자녀에게 말하지 못할 진로 고민이 있다. 부모의 진로는 자녀와 가족의 생계가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중 고등학생의 진로 지도는 대학을 졸업하는 경로가 아닌 노후까지 일을 하면서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기나긴 인생을 살아갈 때 경제적인 문제를 어떤 경로에서 가장 잘 해결해 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 진로 지도가 이루어져야 한다. 일부 의식 있는 분들은,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이 쉽지 않으니 그런 점을 고려하여 진로를 지도한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분은 대학에 진학만 하면 취업은 따 놓은 당상이라는 생각에 빠져 있다. 평생 학습이 일반화된 시대에, 평생 학습을 하는 것도 좋지만, 청소년 때부터 평생 학습의 효과를 얻는 진로를 선택하도록 돕는 것이 매우 바람직하다. 대학 진학과 별개로 말이다.
평생 학습 시대의 진학 선택 :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배 A
지금은 수명도 길어졌지만, 배움도 길어지고 다시 해야 하는 평생 학습의 시대다. 평생학습을 통해서 새로운 자격을 취득하고 기회를 잡아 진로를 바꾸는 것은 권장할 만하다. 그렇게 해서라도 새로운 길에 접어들면 남은 인생을 위한 새로운 일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이미 그런 길에 들어서서 수십 년을 일해온 사람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새롭게 진로에 진입한 이들은 기존 전문가를 도우면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해야 한다. 청소년 시절, 대학에 진학할 때 마음을 조금 내려놓아야 한다. 학교 성적과 수능 점수를 대학의 입결점수(입학 전형 결과 대학에 합격한 점수) 에서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마음을 조금 내려놓아야 한다. 이것은 점수를 꼭 맞추어 대학에 진학하려고 하지 말고, 미래를 위한 선택을 위해 점수를 과감하게 포기하라는 것이다. 그랬다면 지금은 더 좋은 진로의 길에서 일할 크지 않았을까? 결과론적인 말이지만, 현실에서 보거나 인생 전체를 돌아보면 그렇게 낮추고 비우는 것이 더 나은 길을 만들고 기회를 창출하는 경우가 많다.
필자 후배인 A는 수도권의 이름 있는 대학의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대학에 진학해서 나름대로 자부심이 있었다. 취업이 마땅치 않아 영어를 공부하여 영어 학원을 운영하였다. 다행히 아내도 영어를 잘해서 둘이 학원을 운영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그렇다고 큰돈을 버는 것은 아니고 생계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다 나이가 들면서 더 이상 학원을 운영하면서 살아가기가 힘들다는 판단에 새로운 일을 찾기 시작했다. 다행히 대학에서 공부할 때 들었던 과목 일부가 전기 기사 자격을 취득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아, 전기 기사 자격 공부를 하고 있다. 약 2년 간의 수험생활을 각오하고 있으며, 그 기간에 아내가 영어를 가르치면서 생활을 맡기로 했단다. 다행히 자녀는 모두 성장하여 제 밥벌이를 하기에 부담은 덜 한 편이다. 그러나 필자와 같이 자녀가 아직 사회에 진출하지 못한 상태에서 A와 같은 선택을 해야 한다면, 그 부담은 엄청 클 것이 분명하고, 어쩌면 가난한 노후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 시대의 진로 진학 지도
이제 중 고등학교에서의 진로 지도가 바뀌어야 한다. 대학을 합격해야만 인생의 진로가 제대로 되는 것이라는 관념에서 깨어나야 한다. 대학은 선택이다. 갈 수도 있고 안 갈 수도 있다. 늦게 가도 괜찮고, 일반대학이나 전문대학이나 기타 대학도 자기의 진로에 유익하고 길을 만들 수 있다면 선택해야 한다. 흔히들 사회적 인식이 좋은 대학을 졸업해야 취업이 잘 된다고 하지만, 앞으로는 그런 말의 위력은 약해질 것이다. 실제 일을 잘하는 사람이 필요하기에, 경력직을 선호한다. 대학 졸업보다 직업 능력을 키우고 경력을 키우는 것이 효과적이다. 기업에서는 직업 능력, 즉 경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구직자들은 기업에서 요구하지 않는 스펙(spec)을 쌓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고 있다.
이제, 인공지능 시대다. 인공지능은, 인공지능 연구자들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을 하도록 만들었다. 그렇기에 인공지능이 잘하는 것은, 일은 돈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패턴화된 일이다. 이런 일들을 제외하면 각 개인의 진로, 취업시장과 함께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선택해야 하는 전직 시장에서 필요성을 인정받을 가능성이 크다. 직업과 일자리는 내가 원하고 좋아하며, 남들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생겨 나에게 다가오지 않는다. 내가 받은 ‘직업 능력 교육’이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잡다한 분야와 일치할 때 내게 기회가 되어 오는 것이다. 그것은 대학과 인생을 통틀어 생각해야 하는 개념으로, 무엇 하나 선택하고 포기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다. 음식을 먹어야 살 수 있는 생물인 우리 인간에게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필수적인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