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88만 원 세대”의 탄생: 청년 불안의 시대적 시작점
“젊음은 무한한 가능성이다.” 한때는 누구나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2007년, 한 책 제목이 그 믿음을 조용히 허물었다. 『88만 원 세대』. 이 단어는 충격이었다. 정규직을 꿈꾸지만 비정규직 월급 88만 원에 갇힌 청년의 삶을 적나라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당시 20대였던 이들은 IMF의 후폭풍을 정면으로 맞았고, 구조조정의 상처를 부모 세대와 공유했다. 등록금 천만 원, 졸업 후 백수, 스펙 쌓기에 허덕이던 그들에게 ‘청춘은 아름답다’는 말은 조롱처럼 들렸다.
그 이전까지 청년 세대는 사회의 변화에 적응하고 발전의 주체로 여겨졌지만, 이 시기부터는 불안한 존재, 미래 없는 집단, 지원이 필요한 대상으로 전환됐다. ‘청년 담론’이란 말이 본격적으로 공론장에서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다. 사회는 이들을 ‘도와줘야 할 계층’으로 분류하면서도, 정작 실질적인 구조개혁이나 정책 변화는 따르지 않았다.
‘88만 원 세대’라는 키워드는 단순한 월급 수준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것은 청년들에게 씌워진 첫 번째 사회적 낙인이자, 미래를 전망할 수 없는 구조 속에서 태어난 새로운 정체성의 상징이었다. 이 키워드는 곧 다른 단어들로 진화하게 된다.
2. ‘헬조선’과 ‘흙수저’: 청년 담론의 절망이 언어가 되다
시간이 흐르며 청년들이 현실을 말하는 언어는 더욱 거칠어지고 체념적으로 바뀌었다. “헬조선.” 이 단어는 2010년대 중반 이후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확산됐다. ‘지옥 같은 대한민국’이라는 자조 섞인 신조어는, 단지 불만의 표현이 아니었다. 그 속에는 불평등한 사회구조, 수직적 계급 체계, 그리고 불가능한 역전의 벽에 대한 깊은 절망이 녹아 있었다.
비슷한 시기 등장한 ‘흙수저’라는 단어도 이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부모의 경제력, 학력, 인맥에 따라 청년들의 삶이 결정된다는 인식은 청년들의 자기 인식을 철저히 계층화했다. “노력하면 된다”는 말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실제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상위 10% 부모 소득을 가진 자녀가 SKY 대학에 진학할 확률은 하위 10%의 자녀보다 8배 이상 높았다. 한국 사회의 구조는 노력만으로는 돌파하기 힘든 ‘출발선의 불평등’을 고착화시키고 있었다.
‘헬조선’과 ‘흙수저’ 담론은 청년들이 직면한 사회 구조의 무게를 생생하게 드러낸다. 이 키워드들이 담고 있는 절망은 단순한 푸념이 아니다. 이는 구조적 문제에 대한 청년 세대의 집단적 항의이자, 더 나아가 한국 사회가 청년들에게 제공하는 미래의 얼굴이었다.

3. 욜로와 워라밸: 체념인가 전략인가? MZ세대의 자기 서사
2016년 즈음부터 청년 담론에 낯선 단어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와 “워라밸(Work-Life Balance)”. 이 단어들은 앞선 ‘헬조선’ 담론과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마치 절망에서 갑작스레 희망으로 전환된 듯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키워드들이 나타난 이유는 단순한 낙관주의 때문이 아니었다.
‘욜로’는 미래를 포기한 세대의 자기 위로였다. 취업도, 결혼도, 집도 어려운 청년들은 ‘지금 이 순간의 행복’에 집중하기로 했다. 여행, 소비, 혼자만의 취향… 그들은 더 이상 미래를 위한 고통을 감내하지 않았다. 이는 낙천적인 가치관이라기보다는 구조적 무력감에 대한 방어기제였다.
‘워라밸’ 또한 비슷하다. 고용 불안정, 과로 사회, 일-삶 균형 붕괴 속에서, 청년들은 ‘일’보다 ‘삶’을 우선하는 선택을 하기 시작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재택근무, 유연근무제 등이 확산되면서 MZ세대의 워라밸 요구는 더욱 목소리를 얻었다.
사회는 이를 ‘이기적’이고 ‘열정이 부족하다’며 비판하기도 했지만, 정작 이 키워드들은 청년 세대가 자신들의 삶을 주체적으로 설명하고 선택하려는 전략적인 자기 서사로 읽혀야 한다. 욜로와 워라밸은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새로운 저항 방식이자 생존 방식이다.
4. 변화하는 프레임, 그리고 청년의 목소리를 되찾는 시간
지금 우리는 또 다른 변곡점에 서 있다. ‘청년’은 더 이상 동질적인 집단이 아니다. 20대 초반의 대학생부터 30대 후반의 워킹맘까지, 다양한 삶의 경로와 고민을 가진 이질적인 구성체가 되었다. ‘MZ세대’라는 말은 그 다양성을 가리기에는 지나치게 편리한 용어다. 언론과 정치권이 청년을 하나의 이미지로 소비하려 할수록, 실제 청년들의 목소리는 더 가려진다.
최근에는 ‘N잡러’, ‘퇴사준비생’, ‘파이어족’ 등의 새로운 키워드가 등장하고 있다. 이는 더 이상 정규직이나 전통적 성공 신화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새로운 경로를 찾으려는 움직임으로 해석할 수 있다. 동시에 청년 스스로가 자기 정체성을 언어화하고 발화하는 능력이 커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제 청년 담론은 낙인이나 위로가 아닌, 정치적 주체로서의 자리 찾기로 나아가야 한다. 사회가 청년에게 기대를 걸기 전에, 청년 스스로가 자신의 조건을 분석하고, 그 안에서 나아갈 길을 모색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더 이상 사회가 청년을 정의하지 않고, 청년이 사회를 다시 그려나가는 시간이 왔다는 점이다.
결론: 언어는 시대를 기록한다, 그리고 세대를 증언한다
청년 세대를 둘러싼 키워드는 단순한 유행어가 아니다. 그것은 시대의 감정이고, 현실의 언어이며, 저항의 코드다. ‘88만 원 세대’에서 시작된 담론은 ‘헬조선’의 절망을 지나, ‘욜로’와 ‘워라밸’로 이어지며 이제는 자기 선택과 실험의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청년이 말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고, 그들의 언어는 종종 왜곡되어 소비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청년의 키워드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언어의 주인이 청년 자신이 되도록 사회가 귀를 기울이는 일이다.
다시 말해, 청년 세대는 분석의 대상이 아니라 대화의 주체로 인정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새로운 키워드는,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한국 사회의 미래를 미리 보여주는 지도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