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바라 G. 워커, 동화를 다시 쓰다: 가부장제를 깨뜨리는 여성 신화의 힘
옛이야기의 달콤한 독성 : 동화는 누구를 위한 이야기였을까?
“그리고 그녀는 왕자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다.”
이 문장은 수많은 고전 동화의 마침표 역할을 해왔다. 아이들은 ‘행복’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기도 전에, 결혼이라는 종착점이 모든 여성의 꿈이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반복 학습한다. 신데렐라는 청소와 봉사를 감내한 끝에 왕자를 만나 보상받고, 백설공주는 일곱 남성에게 보호받으며 왕자의 키스로 ‘부활’한다. 이들 이야기는 우리 사회에 ‘수동적이고 인내하는 여성이 보상받는다’는 인식을 은근히 심어 왔다.
그러나 이처럼 익숙하고도 사랑받아 온 동화들이 사실은 매우 정교하게 구성된 가부장적 장치라는 사실을 마주할 때, 우리는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과연 어린 시절 우리가 꿈꾸던 ‘행복’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왜 대부분의 여성 주인공은 능동적인 선택권을 갖지 못하고, 외부의 구원자에 의해 삶이 변화하는가?
동화는 단지 환상과 상상의 세계가 아니다. 그것은 시대의 가치관과 사회적 규범이 반영된 서사 구조이며, 세대를 이어 가치관을 내면화시키는 강력한 문화도구다. 바바라 G. 워커(Barbara G. Walker)는 이런 통념을 정면으로 비틀었다. 그녀는 “우리가 믿고 있는 동화는 남성 중심의 시선으로 재단된 이야기일 뿐”이라고 단언하며, 동화와 신화를 새롭게 재해석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가부장제의 서사 구조 : 백설공주부터 미녀와 야수까지
고전 동화 속 여성은 대부분 ‘패시브 캐릭터’다. 그녀는 무언가를 욕망하지 않고, 능동적으로 싸우지 않으며, 심지어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녀는 언제나 누군가의 보호 아래 존재하거나, 문제 해결의 도구로 쓰일 뿐이다. 이는 단지 캐릭터 설정의 문제가 아니라, 동화가 만들어진 시대와 구조에서 비롯된 것이다.
백설공주는 어떠한가. 그녀는 질투심 많은 계모의 표적이 되어 쫓기고, 결국 죽음에 가까운 잠에 빠진다. 그녀를 구한 것은 자신의 힘이나 지혜가 아니라, 키스라는 낭만적 포장 속 남성의 행위다. 미녀와 야수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벨은 자신의 희생을 통해 야수의 ‘인간성’을 회복시키며, 결국 그에게 사랑을 바침으로써 결말을 맞이한다. 이 서사 구조는 여성을 ‘치유자’, 혹은 ‘구원자에 의해 정체성이 완성되는 존재’로 고착시킨다.
이러한 틀은 단순히 시대의 산물로 볼 수 없다. 현대에도 다양한 콘텐츠와 미디어 속에서 비슷한 구조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으며, 이는 여성의 자기서사와 자율성을 제한하는 보이지 않는 틀로 작용한다. 여기서 ‘동화’는 단순한 어린이용 이야기책이 아니라, ‘성역할’과 ‘성별 위계’의 설계도로 기능한다.
바바라 G. 워커는 이를 “문화가 여성을 어떻게 통제하고 길들이는가를 보여주는 서사의 집합”이라고 표현한다. 그녀의 관심은 단지 이야기를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녀는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고자 했다. 이야기를 '다시 쓰는 것'으로 말이다.
워커의 붉은 펜: 『여성 백과사전』과 『재창조된 동화』의 의미
바바라 G. 워커는 페미니스트 작가이자 역사학자이며, 동시에 신화를 해체하고 재구성한 선구자다. 그녀는 『여성 백과사전(The Woman's Encyclopedia of Myths and Secrets)』과 『재창조된 동화(The Woman's Fairy Tale)』 시리즈를 통해 기존 신화와 동화를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비틀고 다시 썼다. 특히 『재창조된 동화』에서는 전통적으로 수동적이던 여성 주인공들을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존재로 변화시켰다.
예를 들어, 그녀의 ‘신데렐라’는 단순히 왕자를 기다리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이 처한 상황을 분석하고, 현실을 바꾸기 위한 전략을 스스로 세운다. 요정은 더 이상 마법을 선물하는 존재가 아니라, 신데렐라 내부의 ‘자각’과 ‘행동력’의 은유로 사용된다. 벨은 야수의 인간성을 끌어내는 희생자가 아니라, 자신의 감정과 욕망에 충실하게 행동하며, 타인에게 억압받지 않는 독립된 존재로 재탄생한다.
워커의 작업은 단순한 문학적 리라이팅이 아니다. 그것은 전통적 가치관을 구조적으로 비판하고, 새로운 가치를 제시하는 사회운동의 일환이었다. 그녀는 “여성은 단순히 이야기 속 주체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자체를 만들 수 있는 창조자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녀가 만든 이야기는 때로는 낯설고, 때로는 기존 서사의 법칙을 위반하지만, 그것이야말로 독자가 ‘다른 시선’을 갖게 만드는 힘이었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동화는 항상 이래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다시 바라보게 한다.
누구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다시 쓸 것인가?
이제 우리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왜 여성은 언제나 구조의 대상이었는가?”
“왜 행복의 정의는 결혼이나 사랑에 종속되어야 했는가?”
“누가 이야기를 만들었고,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계승해왔는가?”
이야기를 다시 쓰는 일은 단순히 문장을 고치는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세계를 해석하는 프레임을 바꾸는 일이다. 동화 속 구조와 문법, 상징과 역할은 우리가 현실을 어떻게 인식하고 살아가는지를 결정짓는다. 따라서 이야기의 주도권을 탈환하는 일은 곧 존재의 주도권을 회복하는 일이기도 하다.
바바라 G. 워커의 작업이 시사하는 점은 분명하다. 이제는 더 이상 수동적 여성상을 내면화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새로운 동화는 ‘누군가의 구조’를 기다리지 않는다. 스스로의 힘으로 세계를 탐험하고, 자기만의 결말을 쓰는 주인공이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다.
오늘날 수많은 작가, 창작자, 교육자들이 워커의 메시지를 계승하고 있다. 젠더 감수성이 깃든 아동 서적이 증가하고 있으며, 디즈니조차 ‘엘사’와 ‘모아나’처럼 전통적 틀에서 벗어난 캐릭터들을 통해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교육 현장과 미디어는 고전 동화를 주요 콘텐츠로 소비하고 있으며, 그 속에 담긴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게 작동 중이다.
우리가 이제 해야 할 일은 단순하다.
동화를 의심하자. 그리고 다시 쓰자.
고전 동화 속 여성들이 어떤 방식으로 침묵당하고, 왜곡되었는지를 인식할 때, 우리는 비로소 다른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 바바라 G. 워커가 제시한 대안적 여성 신화는 단지 ‘문학의 수정’이 아니라, 삶의 방식에 대한 재정의였다.
더 많은 창작자들이, 교육자들이, 부모들이 이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우리는 더 이상 “왕자가 구하러 오기를 기다리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다.
이제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써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