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이 있고, 바람 부는 날이 있고, 눈 오는 날이 있는 것은 정상적인 하늘의 날씨이다. 봄이 오면 움트고, 여름이 오면 무성해지고, 가을이 오면 낙엽지고, 겨울이 오면 앙상한 가지만 남는 것도 정상적인 계절의 운행과정이다. 이런 하늘의 인자(因子)를 안고 태어난 인간의 삶은 당연히 맑은 날도 있고, 눈비 오는 날도 있고, 찬바람 부는 날도 있는 것이 정상적인 삶일 것이다.
실제로 신문방송의 뉴스를 보면 단 하루도 사건 사고가 없는 날이 없다. 어디에선가 자동차 사고가 나서 사상자가 생기고, 어디에선가 작업 중 사고가 생겨 사람이 다치거나 죽고, 어디에선가 긴급환자가 119긴급자동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되고, 또 어디에선가 노동자들이 임금인상을 외치며 데모를 하고, 정치인들이 군중집회를 열고 정권퇴진 운동을 벌인다. 이런 문제투성이의 세상이 거짓없는 인간 세상이고, 거짓없는 이런 인간 세상은 영원히 지속될 정상적인 세상이다.
이런 정상적인 세상은 문제될 것도 없고, 문제 되어서도 안 될 세상이다. 이는 숨 쉬는 것이 문제 될 수 없고, 밥 먹는 것이 문제 될 수 없고, 대소변 보는 것이 문제 될 수 없고, 태어나고 죽는 것이 문제될 수 없는 이치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이런 정상적이고 당연한 삶을 문제 삼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종교인들이다. 종교인들은 행복한 날과 불행한 날을 대비시키며 건강하고 행복한 날만 있는 삶을 보장하는 하느님을 믿으라고 소리쳐 외친다.
슬픔은 없고 기쁨만 있는 삶, 감기 한번 걸리지 않고 무병장수하는 삶, 부부싸움 한번 없이 매일같이 희희낙락하는 삶, 힘들여 일하지 않고도 잘 먹고, 잘 사는 꿈같은 삶, 이런 삶은 원하는 자체가 불행이고, 불가능한 일이다. 세상을 살아본 사람이라면 이를 모를 자 아무도 없다. 이렇게 볼 때 ‘문제없는 삶이야말로 문제가 있는 삶’이다. 그런데도 그 문제 없는 삶을 갈구하는 자들이 많다. 이는 한 마디로 불가능한 것을 바라는 헛된 욕망이요, 이룰 수 없는 과욕이고 탐욕이다. 부처를 믿고 매달린다고, 또 예수와 알라신을 믿고 매달린다고 감기드는 날, 배 아픈 날이 단 하루도 없을 리 없건만 종교인들은 “믿음은 산도 움직인다”며 얼마든지 가능한 것처럼 큰소리친다.
사기꾼들은 처음부터 될 수 없는 일인 줄 알면서도 된다고 온갖 요설로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내가 추천하는 주식을 사면 100% 큰돈을 벌 수 있다며 온갖 거래 장부, 거래 내역, 거래 실적을 증거로 내보인다. 갓난아기가 하루아침에 어른이 될 수 없듯, 소액 투자로 일확천금하는 일은 이 세상에서든 저세상에서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사기꾼들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투자자를 유인한다.
이렇게 볼 때 그런 사기꾼들의 말에 현혹되어 돈 잃고 신세 망치는 자들은 사기당한 자들이 아니라 사기당하고 싶어 자진해서 사기당한 자들이라 할 수 있다. 냉정히 말하면 그런 자들은 자기 탐욕에 빠져 환상의 세계를 허우적거리다가 돈 잃고 신세 망친 후에야 환상에서 깨어나는 자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교인들은 하나님만 믿으면 씻은 듯 모든 불운과 불행이 사라진다고 한다. 그것은 이미 하나님이라는 믿음의 마약에 취한 언행,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우리는 누구도 마약에 취해 비틀거리며 느끼는 행복을 진정한 행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법으로 마약을 금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물질적 마약은 마약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신앙적 마약은 마약이 아니라고 누가 판결했단 말인가? 물질적 마약에 취한 뽕쟁이들이 저지르는 살상이든, 십자군 전쟁처럼 신앙적 마약에 취해 수많은 생목숨을 빼앗는 전쟁이든 똑같은 살상이고 살육이 아닌가?
인류역사를 되돌아보면 신앙만큼 인류를 불행의 구렁텅이로 빠뜨린 괴물은 없다. 십자군 전쟁은 물론이고, 중세 제국주의시대 때 서구선진국들은 하나님의 복음서를 앞세우고 아프리카로, 남미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잔인한 살육과 약탈과 식민지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런 천인공노할 전범들이 선진국의 문명인이라니, 기가 차고 매가 찬다. 오늘도 중동에서는 서로 다른 신앙을 지키기 위해 죽고 죽이는 살육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이는 아무리 부인해도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종교적 하나님은 바로 그런 불행을 낳는 하나님이다.
물론 종교인들은 이런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알리도, 인정할 리도 없을 것이다. 하기야 세상이 정말로 불행 없고, 다툼 없고, 전쟁 없는 행복한 세상이 되면 하나님을 찾을 신도들이 없어 교회가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 불행한 세상이 계속되어야 그들이 내미는 신앙적, 환상적 마약을 찾는 신도들이 많아질 것이므로 사건사고가 그치지 않는 당연한 삶을 불행한 삶이라고 우길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때로는 웃고 때로는 우는 삶, 때로는 배 아프고 때로는 머리 아픈 삶, 때로는 사랑하고 때로는 미워하는 삶, 때로는 다투고 때로는 화해하는 삶, 그런 삶이 거짓 없고 문제없는 정상적인 삶이다. 이렇게 볼 때 오직 행복뿐인 삶, 오직 웃는 일뿐인 삶, 오직 건강하고 축복뿐인 신앙적 삶은 문제 없는 삶이 아니라 가장 큰 문제가 있는 삶이 될 것이다.
-손영일 컬럼 일요단상(日曜斷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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