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영하의 날씨가 찾아오기도 전에, 저희 집은 독감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독감이 유행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아이들이 멀쩡한 걸 보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
며칠 후, 첫째가 40도를 넘나드는 고열로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고, 4일 정도 지나 증상이 완화되나 싶었는데 둘째에게 똬리를 틀었습니다. 역시 40도에 육박하는 고열과 신음을 반복하며 2주 가량 끙끙대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것은 힘겨운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밤새도록 끊이지 않는 기침 소리는 곤욕이었습니다. 뱃가죽이 당길 정도로 콜록대는 아이들이 가장 힘들겠지만, 밤잠을 설치는 부모 역시 지쳐갑니다. 급기야 머릿속으로는 '여기가 지옥 아닌가, 도대체 이놈의 육아는 언제 끝나는가'라는 푸념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박완서 작가의 일기 <한 말씀만 하소서>가 떠올랐습니다. 외아들을 불의의 사고로 잃은 후, 슬픔과 고뇌, 억울함 등 솔직한 심정을 담은 책입니다. 참척(慘慽)의 고통 속에서 신에게 '왜 하필 내 아들을 데려갔느냐'고 절규하는 구절은, 감히 아이들의 독감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중차대한 아픔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절절한 고통 속에서 한 젊은 수녀의 이야기를 듣고 깊은 깨달음을 얻습니다. 속썩이던 자신의 동생을 보며 '왜 내 동생이 저래야 되나'라는 원망을, '왜 내 동생이라고 저러면 안 되나'라고 관점을 바꾸면서 관계가 좋아졌다는 대화입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그녀는 '사고의 전환'의 실마리를 찾습니다. "왜 하필 내 아들을 데려갔을까"라는 집요한 원망을 "내 아들이라고 해서 데려가지 말란 법이 어디 있나"로 고칠 수 있다면, 이 절망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고백합니다.
말은 쉽습니다. 하지만 절박함을 느끼지 못하면 받아들이기 힘든 이 '사고의 전환'을, 저는 겸손함을 빙자한 무례함으로 그녀의 아픔 위에 숟가락을 얹어봅니다.
그녀는 생전에 외아들의 숨소리를 얼마나 간절히 듣고 싶었을까요. 그런데 외려 우리 아이들은 그 숨소리가 너무 세서 기침으로 뿜어 냅니다. 이 단순한 사실 앞에 절로 겸손해집니다.
비록 밤잠을 설치게 하는 괴로운 기침 소리일지라도, 지금 내 곁에서 숨 쉬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 또한 언젠가는 되돌릴 수 없는 귀한 '추억'이 될 것을 알기에, 이 순간 아이들의 거친 숨소리를 감사히 듣습니다.
그리고 그 독감을 이 애비에게 옮긴 것 또한 감사하게 여겨야겠습니다. 저 또한 살아있다는 것일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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