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연을 집처럼 품은 한 사람, 숲이 된 인생
충남 태안반도 서쪽 끝,만리포를 지나 바닷바람이 쉼 없이 스치는 천리포 해안에는 계절마다 다른 색으로 숨 쉬는 숲이 있다. 천리포수목원이다. 이 공간은 단순한 식물 전시장이 아니다. 인간이 자연 앞에서 어떤 태도를 선택해야 하는지를 조용히 묻는 장소다. 그리고 그 질문의 중심에는 한 인물의 삶이 놓여 있다. “아름다운 삶의 향기를 남긴 푸른눈의 민병갈(Carl Ferris Miller)”이다.
민병갈은 미국 펜실베니아주에서 태어났다. 1950년대 한국전쟁 직후 미 24군단 정보장교로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당시 그가 마주한 한국의 풍경은 전쟁의 흔적이 깊게 남아 있었다. 산림은 훼손돼 있었고, 해안과 들판은 생기를 잃은 상태였다. 그러나 그는 폐허 속에서도 되살아나는 자연의 질서를 보았다. 계절은 어김없이 돌아왔고, 나무는 다시 잎을 틔우고 있었다. 이 경험은 그의 인생 방향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1960년대 초, 그는 태안 천리포 해안을 찾았다. 모래가 많은 척박한 토양, 강한 해풍, 높은 염도는 식물이 살아가기 쉽지 않은 조건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이 땅은 가능성으로 보였다. 그는 토지를 매입한 뒤, 장기적인 안목으로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단기간의 성과가 아닌, 수십 년 뒤를 내다보는 선택이었다.
당시 한국 사회에서 개인이 사유지를 기반으로 수목원을 조성한다는 개념은 낯설었다. 나무를 심는 일은 취미나 장식으로 인식되던 시기였다. 그러나 민병갈에게 식재는 생태 보전이자 삶의 사명이었다. 그는 전국을 돌며 토종식물과 외래식물을 조사하고 수집했다. 토양의 성질과 바람의 방향, 수분과 염도를 기록하며 식물이 스스로 뿌리내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1979년, 그는 천리포수목원을 공식 설립했다. 그리고 같은 해 한국으로 귀화하며 이름을 민병갈로 바꿨다. 국적의 변경은 행정적 절차였지만, 그의 정체성은 이미 이 땅에 깊이 내려와 있었다. 그는 자신을 수목원의 주인이 아닌 관리자로 정의했다. 그가 자주 언급한 원칙은 분명했다. 사람은 앞에 나서지 않고, 나무가 중심이 되는 공간을 만든다는 것이었다.
천리포수목원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든 나무에 이름과 정보가 기록돼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관리 방식이 아니었다. 민병갈은 식물을 개체로 존중했다. 나무를 종이나 번호가 아닌, 고유한 생명으로 대했다. 그는 매일 정원을 돌며 생육 상태를 살폈고, 작은 변화도 놓치지 않았다. 그의 관리 방식은 과학적이면서도 철학적이었다.
현재 천리포수목원에는 1만7000여 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다. 이 가운데에는 국내외에서 희귀성이 인정되는 종도 다수 포함돼 있다. 이러한 성과는 단기간의 집중 투자로 가능하지 않았다. 수십 년간 축적된 관찰과 기록, 그리고 일관된 원칙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1990년대 들어 천리포수목원은 국제 식물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세계식물원 관련 기구들로부터 보전 가치와 경관적 우수성을 인정받으며, 국제적 모범 사례로 소개됐다. 그러나 민병갈은 외부의 평가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숲이 스스로 유지되고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를 갖추는 일이었다.

2002년, 민병갈은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그의 부재는 곧바로 공백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는 생전에 수목원의 운영 원칙과 철학을 체계화해 남겼다. 그 덕분에 천리포수목원은 지금도 초기의 방향성을 유지하며 관리되고 있다. 그가 심은 나무들은 성장해 또 다른 그늘을 만들고, 새로운 생명들의 터전이 되고 있다.



한 사람의 선택은 시간이 지나 숲이 됐다. 민병갈이 남긴 것은 단순한 수목원이 아니다. 인간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남겨야 할 유산에 대한 하나의 기준이다. 천리포의 숲은 오늘도 말없이 그 기준을 증명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