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자꾸 깜빡한다”는 말을 무심코 내뱉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지갑을 냉장고에 넣어두거나, 약속 시간을 착각하는 일도 잦아졌다.
누구나 겪는 일상의 실수 같지만, 문제는 이 ‘깜빡함’이 단순 건망증이 아닌 치매의 전조 증상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의학계는 “기억을 잊는 건망증과, 기억 자체가 사라지는 치매는 다르다”고 강조한다.
이 두 가지의 경계선을 이해하는 것은, 단순히 기억력을 지키는 수준을 넘어 삶의 질을 결정하는 일이 되고 있다.

나이 들면 누구나 깜빡한다? 건망증의 정상 범위 이해하기
현대인에게 건망증은 자연스러운 노화의 결과로 여겨진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모든 깜빡임이 노화 탓은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건망증은 뇌의 주의력 일시적 저하나 피로, 스트레스, 수면 부족 등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친구 이름이 순간적으로 생각나지 않다가 잠시 후 떠오른다면 이는 정상적 기억 회복 과정이다.
서울대병원 신경과 연구팀이 60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8%가 ‘최근 기억력 저하’를 느꼈으나 그중 85%는 신경학적 손상이 없는 단순 건망증이었다.
건망증은 ‘정보를 떠올리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이며, 정보 자체는 뇌 속에 보존되어 있다.
반면 치매는 기억이 저장되는 과정 자체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단서가 주어져도 기억의 복원이 불가능하다.
단순한 ‘깜빡’과 병적 기억 저하의 뇌 차이
의학적으로 볼 때, 건망증은 뇌의 전두엽과 해마(hippocampus) 사이의 연결 기능이 일시적으로 저하된 상태다.
하지만 치매는 해마 신경세포의 파괴로 인해 기억 형성 능력 자체가 손상된다.
가천대 길병원 박지현 신경과 교수는 “건망증은 뇌의 데이터베이스는 살아 있지만, 일시적으로 검색 기능이 느려진 상태다. 반면 치매는 저장 장치 자체가 손상돼 데이터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또한, 시간 감각과 공간 인식 능력도 두 질환을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건망증 환자는 ‘언제’ 혹은 ‘어디서’ 일을 잊었는지를 인식하지만, 치매 환자는 약속을 한 사실 자체를 잊는다.
이는 단순 기억력 저하를 넘어, 뇌의 인지체계 전체가 영향을 받는 병적 변화를 뜻한다.
치매 초기의 경고 신호, 무심코 지나치는 5가지 행동 패턴
치매는 천천히 다가오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직 괜찮다”며 초기를 놓친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경고 신호 5가지는 분명 존재한다.
익숙한 일의 순서를 잊는다. — 밥을 하다가 불을 끄는 것을 잊거나, 양말보다 신발을 먼저 신는 등 일상 순서가 뒤섞인다.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 평소 자주 쓰던 단어가 기억나지 않아 “그거 있잖아”로 대체한다.
공간 방향 감각 저하. — 익숙한 길에서도 방향을 잃고, 낯선 곳에서 불안감을 느낀다.
성격 변화. — 갑자기 짜증이 늘거나, 가족을 의심하는 행동이 잦아진다.
금전 관리 문제. — 단순 계산을 반복 실수하고, 전화 사기에 쉽게 노출된다.
이러한 행동이 3개월 이상 지속된다면 단순 건망증이 아닌 경도인지장애(Mild Cognitive Impairment, MCI) 단계일 가능성이 높다.
이 시기에는 치료를 통해 진행을 늦출 수 있으므로, 병원 검사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
예방 가능한 치매, 기억력 지키는 일상 습관 7가지
치매는 완치를 기대하기 어려운 질환이지만, 예방 가능성은 크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건강한 생활습관만으로 치매 위험의 40% 이상을 줄일 수 있다”고 발표했다.
기억력을 지키는 일상 7가지 실천법은 다음과 같다.
매일 30분 이상 걷기 — 뇌 혈류를 개선하고, 신경세포 재생을 돕는다.
규칙적인 수면 — 수면 중 베타아밀로이드(치매 유발 단백질)가 제거된다.
사회적 교류 — 친구·가족과의 대화는 언어 기억 회로를 자극한다.
두뇌 자극 활동 — 독서, 글쓰기, 악기 연주, 퍼즐 등은 해마를 활성화한다.
균형 잡힌 식사 — 생선, 올리브유, 견과류 위주의 지중해식 식단이 효과적이다.
스트레스 관리 — 만성 스트레스는 해마 위축을 초래한다.
정기 검진 — 60세 이후 1년에 한 번 인지기능 검사는 필수다.
건망증과 치매의 차이는 ‘얼마나 잊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잊는가’**에 있다.
건망증은 뇌가 잠시 쉬어가는 신호이지만, 치매는 뇌 구조의 근본적 손상이다.
따라서 “요즘 왜 이렇게 깜빡하지?”라는 의문이 들 때는 스스로를 탓하기보다, 기억의 변화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기억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나 자신을 구성하는 삶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작은 관심이, 미래의 기억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예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