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색을 시각적 현상으로 이해하지만, 고대인에게 색은 그보다 훨씬 넓은 세계였다. 색은 자연의 질서, 계절의 순환, 인간의 감정, 삶의 방향까지 설명하는 하나의 사유 체계였다. 눈에 보이는 빛의 차이가 아니라, 세계가 작동하는 방식을 해석하는 언어였던 것이다. 동아시아의 사유는 색을 단순한 미적 요소로 다루지 않았다. 색은 오행(五行)과 음양(陰陽), 시간과 공간을 연결하는 철학적 장치였고, 각 색은 한 시대의 정신과 문화를 지탱하는 기호로 사용되었다.

오행과 색 — 다섯 색이 다섯 세계를 만들다
오행의 다섯 기운은 곧 다섯 색으로 대응한다.
- 청(靑): 봄, 생명, 동쪽
- 적(赤): 여름, 불, 남쪽
- 황(黃): 중심, 대지, 생명력
- 백(白): 가을, 수확, 서쪽
- 흑(黑): 겨울, 깊음, 북쪽
이 다섯 색은 사계절의 흐름, 기후의 변화, 인간의 감정, 국가의 제례, 의복, 음식, 심지어 건축 색채에 이르기까지 문화 전체에 질서를 부여하는 구조적 원리였다. 색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우주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는 하나의 지도였다.
색과 시간 - 색은 변화의 기록이다
자연은 계절따라 변한다. 자연의 빛이 바뀌면 색이 변하고, 계절이 바뀌면 다시 색이 달라진다. 고대인은 이 변화를 우연으로 보지 않았다. 그들에게 색은 시간이 남긴 흔적, 즉 “변화의 기록”이었다.
- 새벽은 푸른 청
- 정오의 빛은 붉은 적
- 땅이 농익는 시간은 황
- 낙엽의 기운은 백
- 겨울의 숨결은 흑
이처럼 시간의 흐름은 곧 색의 흐름이었다. 색을 읽는다는 것은 시간과 자연의 움직임을 읽는 것이었다.
색은 감정의 지도가 되었다
오행과 색이 인간의 감정과 이어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청: 새로움, 젊음, 시작
- 적: 기쁨, 생명력, 열정
- 황: 안정, 중심, 균형
- 백: 정리, 결심, 수확
- 흑: 침잠, 사유, 깊이
색은 마음의 상태를 설명하는 또 하나의 언어였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기운이 바뀌면 색이 바뀌고, 색이 바뀌면 마음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발효의 시간과 색 — 씨초포스트가 바라보는 색채 철학
발효는 색을 바꾼다. 미생물이 살아 움직이는 동안, 재료는 스스로 호흡하며 맛과 향과 색을 바꾼다. 고추장의 붉음이 깊어지는 것, 식초가 시간이 지나며 갈색을 품는 것, 누룩이 서서히 황색으로 피어나는 것, 모두 시간이 만든 색이다.
그래서 발효는 색채 철학과 닮아 있다.
- 변화: 色
- 비움과 생성: 空
- 기다림이 만든 농도: 玄
- 균형을 이루는 중심: 黃
색은 단순한 시각 경험이 아니라 시간·생명·자연·문화가 함께 빚어낸 층위의 언어라는 사실이 발효의 세계와 가장 닮아 있다. 씨초포스트가 색을 이야기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색을 이해하는 일은 결국 시간의 감각을 배우는 일이고, 시간의 감각은 곧 지혜의 또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색은 세계를 설명하는 가장 오래된 철학
색은 단순한 미적 취향을 넘어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고 연결하는 틀을 제공했다.
검정의 깊이, 흰색의 비움, 붉은색의 생명력, 푸른색의 시작, 황색의 균형 등 색은 곧 세계였고, 세계는 다시 시간 속에서 발효되어 왔다. 씨초포스트의 《색채 철학》 연재는 이 오래된 세계 해석의 방식 속에서 다시 우리의 삶과 문화를 읽어내는 시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