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용한 양육이 남기는 보이지 않는 상처
“아이들은 부모의 말보다 표정을 배운다.” 이 짧은 문장은 회피형 양육의 본질을 정확히 짚는다. 어떤 어머니는 아이의 울음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냉정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다루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회피형 애착(avoidant attachment)은 흔히 차분함이나 자율성으로 포장되지만, 그 이면에는 정서적 거리두기가 있다. 이 양육 태도는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감정을 억제한다’는 선의로부터 출발하지만, 아이에게는 “내 감정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신호로 각인된다.
심리학적으로 이는 정서적 결핍(emotional deprivation) 상태를 초래하며, 아이는 스스로 감정을 차단함으로써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 한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자기보호는 결국 감정과 언어의 연결 고리를 약화시킨다. 39개월은 언어적 표현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시기다. 그러나 이 시기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지 못한다면, 단순히 ‘말이 느리다’는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닫혀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아이의 말문이 막히는 이유는 언어 발달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의 허용이 차단된 환경 때문이다.
애착의 뿌리와 회피형 어머니의 심리적 배경
애착이론의 창시자 존 볼비(John Bowlby)는 “아이의 내면모델은 어머니의 시선 속에서 만들어진다”고 했다. 메리 에인스워스(Mary Ainsworth)의 ‘낯선 상황 실험(Strange Situation Experiment)’에서는 회피형 애착을 보이는 아이들이 어머니가 떠날 때 울지 않고, 돌아와도 반기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안정감이 아니라 “감정을 표현해도 소용없다”는 학습의 결과였다.
회피형 어머니들은 대개 자신의 성장 과정에서 감정을 표현했을 때 거절이나 비난을 경험한 이력이 있다. 그런 경험은 성인이 되어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두렵게 만든다. 아이가 울거나 화를 낼 때, 그녀들은 무의식적으로 불편함을 느끼며 “괜찮아, 그 정도로는 울지 마”라고 반응한다. 하지만 아이는 그 말 속에서 위로보다 존재의 부정을 배운다.
감정의 이름이 사라질 때 언어의 뿌리도 함께 말라간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느끼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고 학습한다. 연구에 따르면 회피형 양육을 받은 아동은 이후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타인의 감정을 읽는 능력, 즉 공감(empathy) 수준이 낮게 나타난다. 이는 언어 능력과 사회성 발달 모두에 영향을 준다.
39개월 유아의 자기표현 발달과 정서적 의존의 균형
39개월은 인간 발달에서 ‘감정-언어 통합’이 일어나는 결정적 시기다. 이 시기의 아이는 감정 단어를 배우며 자신이 느끼는 세계를 언어화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회피형 어머니는 이 감정적 탐색을 불편하게 여긴다. 아이가 “엄마, 이거 무서워”라고 말하면 “그런 건 무서울 게 없어”로 반응한다. 결과적으로 아이는 감정 표현 대신 침묵과 순응을 배운다.
다니엘 시걸(Daniel J. Siegel)은 『The Power of Showing Up』에서 “아이의 뇌는 공감받을 때 신경 회로가 통합되고, 무시당할 때 분리된다”고 설명했다. 정서적 무반응은 아이의 전두엽 발달과 자기조절 능력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특히 언어 표현과 관련된 브로카 영역의 활성화는 정서적 안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감정이 억압된 아이는 언어적으로도 위축된다.
한국 아동심리학 연구에서도 회피형 양육을 받은 아이들이 ‘정서 명명 능력’(emotion labeling ability)이 낮게 나타났다. 즉, 감정을 이름 짓지 못하면 표현도 불가능하다. 이런 아이들은 낯선 상황이나 또래 관계에서 말을 적게 하거나, 눈치를 보고 순응하는 태도를 보인다. 겉보기에는 “차분하고 착한 아이”처럼 보이지만, 내면에는 “말해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학습된 무기력이 자리한다.
회복의 가능성: 감정의 언어를 회복시키는 방법
그러나 회복은 가능하다. 아이의 감정 언어는 어머니의 반응성(responsiveness)에서 되살아난다. 즉, 아이의 감정 표현을 즉시 ‘수용’하고, ‘이름 붙여주며’, ‘안심시켜주는’ 일상적 대화가 핵심이다. 예를 들어 아이가 넘어져 울 때 “괜찮아” 대신 “무서웠구나, 아파서 울었구나”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런 짧은 문장이 아이에게 “내 감정은 이해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준다. 미국 심리학자 존 가트맨(John Gottman)은 ‘감정 코칭(emotion coaching)’ 개념을 제시하며, 부모가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함께 탐색할 때 아이의 공감능력과 언어표현이 향상된다고 밝혔다.
유아상담 현장에서도 ‘모자 상호작용 놀이치료’(mother–child play therapy)나 ‘감정 그림 일기’ 프로그램이 회피형 부모와 아이의 정서 연결을 회복시키는 데 효과가 있다고 보고했다. 어머니가 완벽할 필요는 없다. 단 한 번이라도 아이의 감정을 “그랬구나”로 받아들일 때, 아이의 뇌 속 미세한 회로들이 다시 연결되기 시작한다. 회피형 양육은 유전이 아니라 경험의 반복일 뿐이다. 공감의 한 마디가 세대를 바꾸는 힘이 된다.
말하지 못한 감정이 말이 된다
아이의 말문은 언어 이전에 ‘정서의 통로’다. 어머니의 침묵은 단지 소리가 없는 공백이 아니라, 아이의 세계를 닫는 문이 된다. 반대로, 어머니가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순간 아이의 마음은 열린다. 결국, 39개월 유아의 자기표현 문제는 언어 교육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 회복에서 시작된다.
아이의 말문을 여는 것은 언어 자극이 아니라 ‘감정의 공감’이다. 어머니가 자기 감정을 인정할 때, 아이의 언어도 다시 피어난다. “엄마의 말 한마디가 아이의 마음 전체를 다시 쓰게 한다.” 이것이 회피형 양육을 넘어, 감정의 언어를 회복시키는 첫 걸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