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식 칼럼] 자작시 해설

김관식

가끔 문예지, 또는 신문 지상의 시 소개란에 시와 함께 해설을 덧붙이는 경우가 있다. 독자들의 감상을 위한 배려라고 생각하지만, 해설자의 주관적인 해석으로 독자들에게 시에 대한 선입견을 심어줌으로써 시에 대한 감상 폭을 한정시킬 개연성이 있다. 굳이 시에 대한 해설이 필요한가? 시에 대한 감상은 독자마다 각기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

 

창작한 시인의 의도와 다르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하물며 자작시 해설란을 두어 해설을 덧붙이는 것은 시인이 시를 통해 전달하려는 의도를 독자들에게 강요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시에 대한 다양한 감상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독자들을 무시하는 오만한 처사일 수도 있다. 

 

이미 발표한 시는 시인을 떠난 독립된 유기체다. 그런데 시를 독립된 창작물로 인식하지 않고, 불필요한 군더더기 글을 덧붙이는 것은 사족이다. 시인의 무능을 폭로하는 짓이다. 시를 발표하는 것은 시인이 완성품을 독자에게 선보이는 행위이다. 그런데 사족을 붙이는 자작시 해설은 시가 시어로 압축해서 표현해야 한다는 명제에 대한 도전이다.  

 

우리나라에서 자작시 해설을 처음 시도한 것은 1950년대 중반 이후 신흥출판사에서 자작시 해설 총서로 박목월의 『보랏빛 소묘』(1958), 조병화의 『밤이 가면 아침이 온다』(1958), 장만영의 『이정표』(1958), 유치환의 『구름에 그린다』(1959), 박두진의 『시와 사랑』(1960), 한하운의 『황톳길』(1960), 조지훈의 『여로 시정』 등을 발행하면서 부터다.

 

오늘날 외국의 유명 문인들의 작품집을 발간할 때 작품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작가와 작품의 경향을 해설할 때는 반드시 해설을 곁들이는 경우가 일반화되고 있지만, 자신의 작품집을 해설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일반적으로 자작시 해설은 연구 대상으로 삼을 가치가 없는 잡문이거나 상업주의에 물든 문단의 병리적인 증상으로 여겨왔다. 특히 1990년대 무렵 문학 권력과 문단의 상업주의에 대한 비판이 일어났는데, 문학작품의 해설은 정실비평, 상업 비평, 주례사비평의 온상으로 지목해 왔으며, 오늘날은 독자가 없는 문학작품집을 발간하면서 문인 자신의 위상을 인증하는 홍보용 주례사 해설을 곁들이 작품집들이 일반화되고 있다.

 

특히 시집을 발간할 때 자작시 해설을 게재하는 등 과잉 친절을 베푸는 오만한 시인도 있고, 동료 시인이나 비평가들의 작품 해설을 덧붙인다. 그러나 이러한 시집 해설은 스스로가 자신의 시적 능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시인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시인의 진실한 모습을 보이기보다는 필요 이상으로 자신을 과시하려는 지나친 허명 의식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따라서 이런 시집을 발간하는 시인들을 보면, 대부분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유명 문인이나 문학단체의 우두머리, 대학교수 등의 칭찬 위주의 주례사 해설을 덧붙인다. 친분도 없는 유명 문인의 해설을 과분한 비용을 지급하면서까지 구걸하여 시집의 앞뒤 부분에 도배질하는 것은 스스로가 시인으로서의 자질은 물론 시적 재능이 없음을 위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다. 

 

자신의 조잡한 시적 수준을 은폐할 목적으로 해설을 실었지만, 시인으로서의 자질 부족을 명사의 해설로 위장하려는 속마음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오늘날 우후죽순처럼 창간된 문예지들이 신인상 제도를 두어 수준 미달의 시인을 대량 배출한 결과의 후폭풍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은 문학작품의 창작보다는 문학을 취미활동으로 수단으로 문학단체의 감투 명함을 내미는 문학 놀이꾼으로 활동하거나 대필이나 첨삭지도에 의존해 문집을 발간하여 자신이 시인임을 인증하려고 한다. 따라서 문집을 발간할 때 호화양장으로 비싼 출판비를 들인다. 그리고 문집에는 자신의 화려한 사회활동 경력이나 사진들을 늘어놓는 등 호랑이가 가죽을 남기듯이 작품보다는 이름을 남기려고 한다. 따라서 명작을 남기려는 문인이 아니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정신적인 빈곤감을 시인으로 위장하여 남에게 과시하려는 홍보용 시집이기 때문에 조잡한 시에 대한 유명 인사의 해설을 곁들이는 것이다.

 

1950년대 자작시 해설집이 유행할 때 유치환의 자작시 해설집 『구름에 그린다』에 실린 「하얼빈 도리공원」이라는 자작시와 해설을 소개한다.

 

 여기는 하르빈 도리공원

 오월도 섣달 같이 흐리고 슬픈 기후

 사람의 솜씨로 꾸며진 꽃밭 하나 없이

 크나 큰 느름나무만 하늘도 어두이 들어 서서

 머리 위에 까마귀 떼 종일을 바람에 우짖고

 슬라브의 혼 같은 울암한 수음(樹陰)에는 

 나태한 사람들이 검은 상념을 망토같이 입고

 혹은 뺀취에 눈고 혹은 나무에 기대어 섰도다

 하늘도 광야 같이 외로운 이 북쪽 거리를 짐승같이 고독하여 호을로 걸어도

 내 오히려 인생을 윤리치 못하고

 마음은 망향의 욕된 생각에 지치었노니

 아아 의식(衣食)하여 그대르은 어떻게 족하느뇨

 창량히 공원의 철문을 나서면

 인차(人車)의 흘러가는 거리의 먼 음천(陰天) 넘어

 할 수 없이 나누운 광야는 황막히 나의 감정을 부르는데

 남루한 사람 있어 내게 인색한 소전을 요구하는도다

 -유치환의 「하얼빈 도리공원(哈爾賓道裡公園)」 전문

 

유치환은 『구름에 그린다』에 실린 「하얼빈 도리공원」이라는 시에서 “망향의 욕된 생각”이라는 시구절을 다음과 같이 장황하게 해설한다. 

 

“이때 내 자신을 스스로가 주체 못 하는 밑 없는 절망 속에서 아프게도 나를 불러 손짓하고 또한 내 스스로 그것을 치욕으로 생각하는 망향의 먼 향수는 어쩌면 현실의 나의 고향이나 조국에 대한 그것이 아니라 영혼이 돌아가 의지할 그러한 정신의 안주지가 아니었던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이국의 혼령들이 귀의한 혼령의 고토마저 내게는 내것인 듯 애닲게도 간절하게 느껴졌던 것입니다.”

(유치환, 「구름에 그리다」, 신흥출판사, 1959. 43쪽)

 

위와 같이 유치환은 이 시의 해설을 통해 역사와 이념을 희석시키는 신의 관념론에 관한 비평적 토대를 마련함과 동시에 고향의 심상을 통해 ‘망향의 지친 나의 마음’과 ‘스스로 만족하며 사는 그대의 의식(衣食)’의 상반된 의미 모두를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재구성한다. 따라서 굳이 이런 해설이 필요할까:하는 의문이 생긴다. 

 

시는 압축과 함축, 간결, 비약, 암시, 침묵의 묘미가 생명이다. 설명이 아니라 이미지화시켜 예술적 심미감을 유발하게 해야 한다. 시인이 시로 압축해서 독립된 유기체로서의 시창작물을 발표했으면 그만이지 무슨 해설이 필요하겠는가. 해설은 군더더기일 뿐이고 독자의 상상력과 감상 권한을 제한하는 사족(蛇足)이다.

 

 

[김관식]

시인

노산문학상 수상

백교문학상 대상 수상

김우종문학상 수상

황조근정 훈장

이메일 : kks41900@naver.com

 

작성 2025.12.22 08:38 수정 2025.12.22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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