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쟁이 끝난 자리에서, 우리는 함께 걷는다
— 그래픽노블 『경쟁 속 동행』이 말하는 협력의 미학
치열한 경쟁이 일상이 된 사회에서, ‘함께’라는 단어는 종종 사치로 여겨진다. 각자도생의 시대 속에서 예술이 던지는 질문은 더 묵직하다. 김정희 작가의 그래픽노블 『경쟁 속 동행』(두온교육, 2025) 은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김정희 작가는 독서·논술 강사로 활동하며 철학상담심리학 박사 과정을 수료한 인문학자이자, 부산문예대학에서 동화를 공부한 후 『대통령의 눈물』, 『낚시하는 거미』, 『하람과 멈춘 시간들』, 『연꽃의 꿈』 등 다수의 작품을 선보인 동화가다. 그의 글은 언제나 ‘인간의 내면을 바라보는 시선’으로부터 출발한다. 이번 그래픽노블에서도 철학적 사유와 감성적 스토리텔링이 조화를 이루며, 경쟁 사회 속에서 협력과 공존이라는 새로운 길을 제시한다.
『경쟁 속 동행』은 도시 재생을 위한 벽화 공모전을 배경으로, 서로 다른 성격과 결핍을 지닌 세 청춘이 경쟁을 통해 성장하고, 결국 협력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단순한 성장 서사나 청춘의 열정담을 넘어선다.
김정희 작가는 예술을 ‘소통의 언어’로 삼아, 색과 감정이 교차하는 서사를 통해 “경쟁과 동행은 결코 반대말이 아니다” 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감정의 미세한 떨림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예술적 감수성과 철학이 공존하는 그래픽노블이다.
이야기의 무대는 도시 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열린 벽화 공모전이다.
즉흥적인 벽화 아티스트 ‘승리’, 완벽주의 성향의 만화가 지망생 ‘다정’, 그리고 소리를 색으로 느끼는 특별한 감각을 지닌 청년 ‘수철’. 이 세 사람은 각자의 이유로 공모전에 참여한다.
처음에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벽을 칠하고, 서로의 작품을 견제하며 갈등을 겪는다. 그러나 도시의 낡은 벽 앞에서 그들은 깨닫게 된다. 이 벽은 경쟁의 벽이 아니라, 함께 색을 채워야 완성되는 ‘공존의 벽’이라는 것을.
김정희 작가는 이 장면을 통해 “예술은 결국 혼자 완성할 수 없는 언어”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승리의 자유로움은 다정의 규율을 흔들고, 수철의 감각은 두 사람의 감정을 연결한다. 경쟁이 아닌 협력의 순간, 세 인물의 벽화는 하나의 거대한 작품으로 완성된다.
그 결과, 벽화는 단순한 미술작품을 넘어 ‘관계의 회복’과 ‘소통의 은유’로 자리 잡는다.
『경쟁 속 동행』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색의 서사 구조’다.
붉은색은 즉흥적이고 뜨거운 승리의 열정을, 푸른색은 차갑지만 완벽을 추구하는 다정의 내면을, 그리고 보라색은 두 감정의 중재자이자 감각의 언어를 지닌 수철을 상징한다.
이 세 색은 작품 내내 서로 부딪히며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낸다.
특히 김정희 작가는 색채를 단순한 시각적 요소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인물의 감정선과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색이 변화하는 서사’를 구축한다.
붉음이 푸름과 섞여 보라로 변할 때, 그것은 경쟁이 협력으로 전환되는 순간이자, 인물들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장면이다.
그래픽노블이 가진 시각적 특성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한 대목이며, 독자는 색의 움직임만으로도 인물의 감정 변화를 체감하게 된다.
이러한 서사적 장치는 김정희 작가가 동화와 철학, 그리고 심리학을 넘나들며 쌓아온 서사 감각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색의 언어는 곧 인간의 내면 언어로, 경쟁과 협력이 공존하는 세계를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경쟁 속 동행』의 핵심 주제는 ‘다름의 공존’이다.
세 인물은 각자의 불안과 결핍으로 인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승리는 자유를 갈망하지만 불안에 휩싸이고, 다정은 완벽을 추구하지만 감정을 억누른다. 수철은 감각적으로 세상을 느끼지만 언어로 표현하지 못한다.
이들의 벽화 협업 과정은 결국 ‘자신의 결핍을 타인의 색으로 채우는 과정’이다.
김정희 작가는 이를 통해 예술이 가지는 근본적인 치유의 힘을 말한다.
협력은 결코 이상적인 미화가 아니라, 서로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그 틈을 예술로 메우는 과정이다.
그래서 『경쟁 속 동행』은 경쟁의 끝에서 피어나는 진짜 성장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이 작품 속의 협력은 단순한 팀워크가 아니라 존재의 대화다.
각자의 불완전함이 모여 새로운 색을 만드는 순간, 독자는 인간 관계의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다시 발견하게 된다.
『경쟁 속 동행』은 단순한 스토리텔링을 넘어 예술의 본질적 가치와 철학적 성찰을 담은 작품이다.
김정희 작가는 색과 감정, 그리고 예술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섬세하게 비춘다.
그래픽노블이라는 형식 안에 문학적 깊이와 철학적 메시지를 담아낸 이 작품은, ‘협력’이라는 주제를 시각 예술로 완벽하게 구현한 보기 드문 성취다.
“경쟁은 끝났지만, 동행은 계속된다.”
이 문장은 단순한 문학적 장식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선언처럼 들린다.
예술이 개인의 감정에서 사회적 공감으로 확장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함께 걷기 시작한다.
김정희 작가의 작품은 결국 한 줄의 결론으로 귀결된다.
“예술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그려야 완성된다.”
그의 색은 사람의 색이며, 『경쟁 속 동행』은 그 색들이 모여 빚어낸 ‘공존의 미학’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