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儉而不陋 華而不侈(검이불루 화이불치)”
최근 법정에서 나온 말이다.
이말은 시대를 넘어 정치의 본질을 묻는다.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하지 말라는 경구는 단순한 생활 윤리가 아니라 공적 권력을 다루는 이들이 지켜야 할 태도의 기준이다. 정치는 언제나 선택의 연속이며, 그 선택의 이면에는 반드시 절제와 균형이라는 원칙이 자리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의 정치 현실은 이 오래된 가르침과 거리가 멀다. 재정 위기와 경제 불안을 이유로 국민에게는 인내와 희생을 요구하면서도, 정치권의 언어와 행동은 여전히 화려하다.
개혁과 쇄신을 외치지만, 그 실천은 더디고 선택적이다. 검소함은 곧잘 무책임한 긴축으로 오해받고, 화려함은 성과 없는 말의 잔치로 변질된다. 국민이 정치에 피로감을 느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치의 또 다른 단면은 ‘어제의 동지, 오늘의 적’이라는 말에 집약돼 있다. 민주주의에서 타협은 불가피하고 필요하다.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가는 과정은 정치의 본령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타협이 가치와 철학이 아닌 권력의 유불리에 따라 이뤄질 때, 정치는 신뢰를 잃는다. 불과 얼마 전까지 서로를 향해 비난을 쏟아내던 정치인들이 이해관계가 맞는 순간 손을 맞잡는 모습은 이제 낯설지 않다.
문제는 변화 그 자체가 아니라, 변화의 이유와 책임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정치가 공적 행위라면, 동지가 바뀌는 순간에도 국민 앞에 내놓을 수 있는 분명한 명분과 기준이 있어야 한다.
원칙 없는 유연함은 결국 기회주의로 읽히고, 그 결과 정치 전반에 대한 불신은 더욱 깊어진다. 국민은 정치의 말을 듣는 동시에 그 이면의 계산을 읽고 있다.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의 정신은 정치가 어디에 중심을 두어야 하는지를 분명히 한다. 국민을 중심에 두면 절제는 품격이 되고, 타협은 책임이 된다. 그러나 권력을 중심에 두면 절제는 위선으로 비치고, 타협은 변절로 받아들여진다. 정치가 국민의 삶을 설계하는 공적 영역이라면, 그 태도 또한 국민의 눈높이에 맞아야 한다.
지금 정치에 필요한 것은 더 자극적인 언어나 일시적인 연합이 아니다. 검소하지만 당당하고, 화려하지만 절제된 정치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는 정치 현실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원칙과 설명 책임이 있을 때, 비로소 정치는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오래된 가르침이 오늘 다시 소환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정치가 다시 품격을 회복하라는 시대의 요구다.
전승환
서서울생활과학고등학교 정년퇴임
학교법인 동광학원 감사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 조정위원
한국정책방송 전문위원
(사)한국청소년동아리연맹 자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