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화의 시작은 늘 나에게서 출발한다
상대방과 대화를 하다 보면 나 역시 모르게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부터 찾게 된다. 상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속으로는 이미 내 생각을 정리하고 있고, 언제쯤 내 이야기를 꺼낼지 타이밍을 재고 있기도 하다. 고개는 상대를 향하고 있지만 마음은 이미 내 말의 순서를 세고 있는 셈이다. 아마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듣는 시간보다 말할 준비를 하는 시간
대부분의 대화는 ‘듣는 시간’보다 ‘말할 준비를 하는 시간’이 더 길게 흘러간다. 상대가 말을 하는 동안에도 우리는 그 말에 온전히 머물지 않는다. 대신 반박할 이유, 덧붙일 경험, 꺼내고 싶은 조언을 떠올린다. 그래서인지 대화를 나누고 나서도 이상하게 채워지지 않는 느낌이 남는다. 말은 오갔지만 마음은 오가지 못한 채 끝났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자주 돌아보는 태도
나는 요즘 대화를 대하는 내 태도를 자주 돌아본다.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고,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다. 고개는 끄덕이고 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내 이야기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순간도 많다. ‘잘 듣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기다리고 있을 뿐인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으려는 이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노력을 계속해 보려 한다. 상대의 말을 온전히 듣는 이 과정이 결국 사람의 마음을 얻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음을 얻는다는 것은 상대를 설득하는 일이 아니라, 이해하려는 태도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조금씩 깨닫고 있다.
듣기 시작하면 보이는 것들
상대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면 변화가 느껴진다. 말의 논리보다 그 말에 담긴 감정이 먼저 보이기 시작한다. 표정과 말투, 잠시 멈칫하는 호흡 속에 숨겨진 마음이 느껴진다. 그때 비로소 “아, 이 사람은 지금 이런 마음이구나” 하고 이해하게 된다. 대화는 그 순간부터 깊어진다.
문득 떠오른 한 단어
그 과정 속에서 문득 떠오른 사자성어가 하나 있었다. 바로 이청득심(以聽得心)이다. 귀로 듣는 것을 통해 상대의 마음을 얻는다는 뜻이다. 말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태도가 관계를 만든다는 말이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수 있을까 싶었다.
설득보다 앞서는 것은 경청
상대를 설득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내 생각을 먼저 증명하려 들지 않아도 된다. 그저 충분히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조금씩 마음을 연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준 경험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흔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듣는 것이 어려운 이유
물론 쉽지 않다. 때로는 조언해 주고 싶고, 때로는 당장 해결책을 말해주고 싶다. 하지만 그럴 때 한 걸음만 물러서서 상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보는 연습을 해본다. 해결보다 공감이 먼저 필요한 순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자체가 이미 상대에게는 큰 존중이 된다.
관계를 바꾸는 작은 연습
나는 요즘 사람의 마음을 얻는 가장 좋은 방법은 더 잘 말하는 것이 아니라, 더 잘 듣는 것이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리고 그 ‘듣는 태도’는 기술이 아니라 자세라는 것도 함께 배워가고 있다. 상대를 향해 마음을 열고, 내 이야기를 잠시 내려놓는 자세 말이다.
함께 생각해볼 질문
나는 지금 대화에서 무엇을 더 많이 하고 있는가.
말하고 있는가, 아니면 듣고 있는가. 상대의 말을 이해하려 애쓰고 있는가, 아니면 내 말을 할 기회를 기다리고 있는가. 이 질문 하나만으로도 대화를 대하는 태도는 달라질 수 있다.
마음은 말이 아니라 귀를 통해 전해진다
이청득심. 어렵지만 그래서 더 가치 있는 방법이다. 사람의 마음은 말로 설득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들어주었을 때 자연스럽게 건네진다. 오늘도 나는 대화 앞에서 내 이야기를 잠시 내려놓고, 상대의 마음을 먼저 들어보려 한다. 그 작은 연습이 관계를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 믿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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