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페인의 공영방송사인 Rtve에 따르면, 스페인 하원에서 공공장소 내 부르카 및 니캅 착용 금지 법안이 부결되었다. 우익 정당인 복스(Vox)가 주도한 이 제안은 찬성 170표 대 반대 177표로 통과되지 못했으며, 이 과정에서 각 정당은 여성 인권 보호와 종교적 자유, 그리고 이슬람 혐오 방지라는 명분을 내세워 치열한 설전을 벌였다. 특히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독립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우파 성향의 분리주의 정당인 ‘카탈루냐를 위해 함께(Junts per Catalunya: JUNTS)’는 복스의 안건은 거부하면서도, 공공의 안전과 평등을 근거로 하는 별도의 자체 금지 법안을 제출하며 독자적인 노선을 취했다. 반면, 집권 사회노동당과 좌파 연합은 해당 법안이 특정 집단에 대한 증오와 차별을 조장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이번 사안은 스페인 내에서 국가 안보, 문화적 통합, 그리고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둘러싼 복잡한 정치적 갈등을 여실히 보여준 셈이다.
단 7표 차이로 부결된 ‘금지법’… 인권과 증오, 그리고 권력 투쟁이 뒤엉킨 씁쓸한 풍경
얼굴을 온전히 가린다는 것,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신을 향한 가장 지고한 순종의 고백이지만, 다른 이에게는 숨조차 마음대로 쉴 수 없는 ‘천으로 만든 감옥’이다. 최근 스페인 마드리드의 하원 의회 광장은 이 얇은 천 조각 하나를 두고 거대한 가치관의 전쟁터로 변했다. 2026년 2월, 유럽 사회를 다시 한번 뜨겁게 달군 ‘공공장소 부르카와 니캅 착용 금지법’이 단 7표 차이라는 간발의 차이로 부결된 것이다. 그러나 이 숫자가 말해주지 않는 진실은 훨씬 더 복잡하고 시리다. 정당들은 여성의 얼굴을 논하면서 정작 그 이면의 정치적 이득과 권력의 셈법을 계산하기에 바빴다.
신념의 충돌인가, 오염된 명분의 회피인가
이번 사태의 발단은 이슬람 여성의 복장을 ‘공공의 안전’과 ‘평등’이라는 잣대로 규제하려는 시도에서 시작되었다. 표면적인 결과는 찬성 170표, 반대 177표. 법안은 멈춰 섰지만, 과정은 기묘했다. 특히 카탈루냐 분리주의 정당인 ‘함께(Junts)’의 행보는 정치적 결벽 주의의 극치를 보여준다. 그들은 평소 부르카 금지에 긍정적 입장을 취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극우 정당 ‘복스(Vox)’가 발의했다는 이유만으로 반대표를 던졌다. 내가 원하는 목표라 할지라도 ‘싫어하는 사람’이 제안했다면 거부하겠다는, 이른바, ‘브랜드 오염’ 회피 전략이다. 대신 그들은 보건과 안전을 핑계로 한 자신들만의 독자 법안을 따로 제출했다. 여성이 겪는 구속의 고통보다 내 정당의 ‘깨끗한 이미지’가 우선시된 이 서글픈 광경은, 정치가 어떻게 본질을 비껴가는지를 적나라하게 증명한다.
‘천으로 만든 감옥’과 ‘혐오의 가면’ 사이
보수 진영인 국민당(PP)은 이번 논쟁을 ‘여성 해방’이라는 보편적 가치로 끌어올렸다. 그들은 부르카를 단순히 종교적 의복이 아니라, 여성의 사회적 관계를 단절시키는 도구로 정의하며 좌파 진영의 방관을 강하게 질타했다. “부르카는 여성을 공공 영역에서 지워버리는 보이지 않는 벽”이라는 그들의 주장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반면, 집권 사회노동당(PSOE)과 좌파 연합은 이 법안이 ‘이슬람포비아(이슬람 혐오)’의 가면을 쓴 증오의 도구라고 반격했다. 안전이라는 명분이 소수자 집단을 낙인찍고 배제하는 칼날이 될 수 있다는 우려이다. 한쪽은 ‘해방’을 말하고 다른 한쪽은 ‘통합’을 외치지만, 정작 부르카 속에 갇힌 여성들의 목소리는 의회 회의장의 거친 고함 속에 묻혀버렸다. 우리가 정말 보호하려는 것이 여성의 삶인지, 아니면 우리 정당의 이념적 선명성인지 자문하게 되는 대목이다.
지방 자치권이라는 이름의 숨겨진 욕망
회의장의 열기가 식기도 전에 드러난 ‘함께(Junts)’ 정당의 독자 법안 속내는 더욱 충격적이다. 그들이 제출한 법안에는 부르카 금지 조항 뒤로, 보안 및 신원 확인 권한을 스페인 중앙 정부에서 카탈루냐 지방 정부로 이양하라는 내용이 슬며시 포함되어 있었다. 여성 인권과 공공 안전이라는 거창한 담론이 실상은 중앙 정부의 통제권을 빼앗아 오기 위한 ‘정치적 거래’의 카드로 활용된 것이다. 마드리드 중앙 의회에서 시작된 이 논쟁이 결국 지역의 권력 투쟁으로 변질되는 과정을 보며, 인간의 영혼을 논해야 할 정치가 얼마나 세속적인 이득에 집착하는지를 목격한다. 부르카라는 투명성의 이슈가 역설적으로 정치권의 ‘밀실 행정’을 가리는 도구가 된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