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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용대 칼럼] 나는 일하며 살아 왔다

문용대

어느 스승님으로부터 “누구나 자서전을 써서 길이 남겨야 한다”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 후대에 귀감이 될 만한 삶의 발자취를 남기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 말에 마음이 흔들려 한때는 회고록을 써볼까 생각도 했지만, 정작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니 내세울 만한 업적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우연히 읽은 한 문장이 내 망설임을 더 깊게 만들었다. 이제는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책을 낼 수 있는 세상이 되었고, 그만큼 회고록도 넘쳐난다는 지적이었다. 그 속에 삶의 본보기가 될 진실과 교훈이 담겼다면 다행이겠지만, 허장성세(虛張聲勢)와 자기변명만 늘어놓은 기록들 또한 적지 않다는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백범일지》처럼 투박하되 숨김없는 기록이 세대를 넘어 울림을 준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과연 나에게 그런 진정성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이제는 어떤 말도 귀에 거슬림 없이 들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고, 책을 남기는 일이 죽음을 넘어서는 한 방식이라는 이탈리아가 낳은 세계적인 석학이자 소설가 ‘움베르토 에코’의 말도 실감하지만, 선뜻 펜을 들지 못했다. 

 

‘인생을 제대로 살지 못하면서 글만 잘 쓰려 하면 잘못이다’라는 어느 시인의 말이 마음을 찔렀고, ‘글을 쓰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죄다 드러나니 쓰지 않은 때가 좋다’던 조선 문장가 최립의 문장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달래곤 한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있다. 나는 스무 살이 되기 전부터 지금까지 쉼 없이 일하며 살아왔다. 어느덧 일흔 후반이 되었고, 그 세월을 헤아려 보니 60년이 넘는다. 그중 약 10년은 내 이름을 걸고 장사를 했고, 나머지 시간은 조직에 몸담은 직장인으로 살았다. 놀랍게도 나는 지금도 여전히 현역이다. 하루의 시작과 끝을 일의 리듬 속에서 보낸다.

 

돌이켜보면 나의 직장 생활은 시대의 바람을 온몸으로 맞아온 시간이었다. 1960~ 1970년대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밤낮없이 일했고, 1980년대에는 중간관리자로서 격렬한 노사분규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위와 아래 사이에서 책임을 떠안고 갈등을 중재해야 했던 시간은 쉽지 않았다. 

 

내 삶에서 가장 거센 파도는 IMF 외환위기 무렵이었다. 그 시절 빵을 팔았다. 제과점을 열어 성실하게 장사를 했지만, 가게 앞에 자리 잡은 리어카의 초저가 판매를 끝내 견뎌내지 못했다. 정직하게 만든 빵보다 값싼 선택이 더 빠르게 손님을 끌어당기던 시절이었다. 결국 나는 가게 문을 닫아야 했다.

 

컴퓨터 학원을 열며 다시 한 번 도전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학교와 정부를 중심으로 무료·저가 교육이 확대되고, 민간 학원들까지 급격히 늘어나면서 원생 모집은 갈수록 어려워졌다. 최선을 다했으나 결과는 폐업이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고, 누구에게 손을 벌리지도 않았다. 실패는 있었지만 변명은 없었다. 그저 주어진 자리에서 성실하게 버텨왔을 뿐이다.

 

치열했던 시간들을 지나온 지금, 나의 삶은 새로운 결을 품고 있다. 단체 몇 곳에서 작으나마 역할을 맡아왔다. 오랜 직장 생활에서 쌓아온 행정 경험과 일의 감각을 공동체를 위해 나누는 일이다. 직장에서 배운 성실함은 은퇴 이후에도 쓸모를 잃지 않았다.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지금도 건강하다는 사실이다. 요즘 색소폰을 분다. 깊고 느린 선율에 마음을 싣다 보면, 쉼 없이 달려온 세월이 비로소 한 박자 늦춰진다. 60년이 넘는 노동 끝에 만난 이 평온은,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에게 주어지는 인생의 뒷맛인지도 모르겠다.

 

자랑할 것이 없다고 느꼈던 나의 망설임은 어쩌면 완벽해야만 기록할 수 있다는 강박이었는지도 모른다. 비록 내 삶이 거창한 영웅담은 아니지만, 남에게 크게 신세 지지 않고 오랜 세월 일하며 살아온 그 시간 자체는 기록으로 남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투박하되 숨기지 않는 기록을 향한 흠모에 가깝다.

 

이 글은 내 삶을 미화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정직하게 살고자 애써온 한 사람의 시간을 증언하고 싶다. 밑천이 드러나 다소 부끄러울지라도, 그 부끄러움까지 포함해 언젠가 남기고 싶다.

 

이 기록은 종이 위에서 끝나지 않는다. 내일 아침 다시 일터로 향하는 발걸음, 이웃을 위한 작은 수고, 그리고 저녁에 울리는 색소폰 소리가 어우러져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쓰이고 있다.

 

나는 일하며 살아 왔다.

그리고 오늘도, 그렇게 살고 있다.

 

 

[문용대]

‘한국수필’ 수필문학상 수상

‘문학고을’ 소설문학상 수상

‘지필문학’ 창립10주년기념 수필부문 대상 수상

‘한국예인문학, 지필문학, 대한문학, 문학고을’ 활동

‘대한문학 부회장’, ‘지필문학’ 이사

‘브레이크뉴스’ 오피니언 필진

‘코스미안뉴스’ 오피니언 필진

수필집 ‘영원을 향한 선택’

‘날개 작은 새도 높이 날 수 있다’

이메일 : myd1800@hanmail.net

 

작성 2026.03.05 10:08 수정 2026.03.05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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