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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명희의 인간로드] 티베트의 위대한 왕 ‘손챈감포’

전명희

나는 천사백여 년 전 인간 ‘손챈감포’다. 만년설로 뒤덮인 높고 높은 산 히말라야 자락에서 태어났다. 나는 어둠에 둘러싸인 이 땅을 희망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스스로 어머니의 태반으로 들어가 태어났다. 나는 이 땅을 위해 신이 예비하신 존재였다. 내가 태어난 땅은 너무나 아름답고 너무나 척박한 곳이다. 하늘보다 높은 산들이 사방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 산들은 연봉을 이루며 산과 산을 이어주고 있다. 세상이 시작되는 곳이라고 우리 조상들은 그렇게 믿으며 이 땅에서 대대손손 살아왔다. 히말라야를 머리에 이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눈처럼 순수하여 욕심이란 애초에 없는 사람들이다. 삶이 곧 자연이고 자연이 곧 삶인 곳이다.

 

히말라야의 만년설이 녹아 흘러내리는 이 땅은 동물들과 인간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최소한의 물을 내려 주고 있다. 골짜기마다 이 작은 물방울들이 모여 시냇물을 이루고 시냇물들이 모여 호수를 이룬다. 호수의 물이 흘러 강을 이루며 세상의 아래로 흘러가는데 한줄기는 누강으로 흘러가고 또 한줄기는 메콩강으로 흘러가고 또 한 줄기는 장강으로 흘러가고 또 한줄기는 갠지스강으로 흘러간다. 그렇게 흐르고 흘러 마침내 바다에 닿으면 다시 하늘로 올라간다. 우리 조상들은 이것이 자연의 이치라고 했다.

 

나의 아버지 남리 송첸은 나를 엄격하게 교육했다. 야룽 왕조의 후예로서 히말라야의 기운을 받아 이 땅을 평화롭게 다스리기 위해 강인한 정신력과 강인한 체력을 가르쳐 주었다. 아버지는 용감하고 지혜로운 왕이었다. 그런 아버지를 따르는 신하들과 백성들은 아름답고 척박한 히말라야에서 지혜롭게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그러던 어느 해 아버지의 충실한 부하 충뽀 붕새주쩨가 마르몬왕의 목을 베고 2만 가구를 아버지 남리 송첸에게 바쳤다. 아버지는 보상으로 충뽀 숭새주쩨에게 남부에 있는 땅과 통치권을 주었다.

 

야룽왕조의 32대 왕인 아버지 남리 송첸은 여러 부족과 전쟁을 거듭했다. 하지만 중앙집권화에 실패하여 토번 귀족들에게 암살당하고 말았다. 그때 내 나이 불과 열세 살이었다. 629년 열세 살의 나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주위에 있는 신하들은 힘없는 나를 무시하고 정신적 학대를 했다. 그래도 나는 견뎌야 했다. 닥포, 공보, 장중, 숨파 등지에서 나를 몰아내려는 반란이 자주 일어났다. 우리 조상의 위대한 업적이 나로 인해 사라지지 않기를 열망하며 나는 인고의 시간을 견디고 또 견뎠다. 용맹한 나는 뛰어난 지략을 갖추고 힘이 생기길 기다렸다. 그렇게 시간은 내 편이 되어 어른이 되어갔다. 나의 왕국도 점차 강해지고 나도 강해져 갔다. 

 

나는 이제 신하들을 평정하고 나의 왕국을 개혁할 수 있는 시기가 왔음을 직감했다. 어린 나를 업신여기고 조롱하던 신하들을 정리하고 내부의 적을 척결했다. 그리고 아버지를 암살한 사람들을 찾아 처단하고 반란지역을 모두 우리에게 복속시켰다. 그리고 각지에 흩어져 있는 유목민들을 병합하고 시안까지 세력을 넓혀 나갔다. 그리고 남서쪽으로는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와 네팔을 침략해 티베트 대제국의 기틀을 만들었다. 나의 리더십은 야룽왕조의 어느 왕보다도 강력했고 진실했다. 그런 나를 백성들은 신뢰했고 신하들도 잘 따랐다. 히말라야는 나를 위해 더욱 강력한 기운을 내려 주었고 신의 땅으로 그 이름을 만방에 떨치게 되었다. 정치가 안정되고 경제가 발전하니 백성들도 점차 늘어갔다. 이제 주변의 호족들이 나를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강성해진 국력을 기반으로 나는 서장의 여러 지역을 통일하고 강력한 국가를 만들었다. 그리고 수도를 라싸로 옮겼다. 문자가 없이는 국가를 운영할 수 없다는 걸 직감했다. 나는 관리의 자녀 중 똑똑한 사람 16명을 뽑아 인도로 가서 문자를 배워 오게 했지만, 그들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 나는 의지가 굳고 아주 똑똑한 톤미 삼보타를 다시 인도로 보냈다. 그는 산스크리어트를 기반으로 30자의 문자를 만들었다. 나는 이후 6개의 법률, 6개의 회의원칙, 6개의 관직, 6개의 포상원칙, 6개의 표식, 6개의 훈장 등 36가지의 제도를 완성해 국가를 통치하는 기반을 만들어 히말라야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로 발돋움했다. 

 

나는 히말라야 주변국들과 잘 지내고자 친교 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당나라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래서 서쪽 사막으로 이어진 실크로드와 서역 지방을 공격해 당나라와 서촉의 직접적인 교류를 방해하고 압박했다. 이후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황실의 공주를 왕비로 맞이하겠다는 통혼을 요청했다. 하지만 당나라는 나의 통혼을 묵살하고 말았다. 나는 즉시 대군을 파병해서 당나라의 속국이었던 토욕혼을 함락시켰다. 그리고 당나라의 국경지대인 송주를 공격하고 다시 통혼을 통보했다. 그러자 마지못해 당태종은 문성공주를 나의 아내로 보냈다.

 

문성공주가 나에게 시집을 오면서 결혼예물로 금칠한 석가모니 불상과 불경, 천문학, 풍수리지, 의학, 신학 등 18종의 과학 서적도 같이 가져왔다. 그리고 네팔의 츠존공주를 두 번째 아내로 맞이했는데 츠존공주는 아축불과 미륵불상을 가져왔다. 나는 문성왕비와 츠존왕비를 위해 라사에 대소사(大昭寺)와 소소사(小昭寺) 두 개의 절을 지어 주었다. 두 왕비가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달래고 티베트의 발전을 위해 불심으로 백성의 모범이 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문성왕비는 당나라에서 유행하던 풍수지리 사상을 바탕으로 대규모 사찰을 짓고 암벽에 경문과 불상을 암각했다. 그리고 대형 탑과 불상을 수없이 조성하여 불교미술을 전파하고 확산시켰다.

 

나는 티비트 전 지역을 돌며 10가지 선을 행하는 십선법十善法을 백성들에게 펼치며 백성들이 편안하고 안락하게 살 수 있도록 모든 기반을 만들었다. 이후 문성왕비는 푸른 타라보살이 되었고 츠존왕비는 흰 타라보살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관음보살이 되었다. 내 나이 서른네 살이었다. 나는 티베트의 개국 군주 손챈감포다.

 

 

[전명희]

서울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다 그만두고

‘밖철학연구소’를 설립해 연구에 몰두했지만

철학 없는 철학이 진정한 철학임을 깨달아

자유로운 떠돌이 여행자가 된 무소유이스트

이메일 jmh1016@yahoo.com

 

작성 2026.03.16 10:37 수정 2026.03.16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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