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의 사상가 왕양명은 그의 시 「노회(老檜)」에서 옛 역참 옆에 홀로 선 늙은 회나무 한 그루를 응시했다. 사람들이 말 고삐를 매어두고 잠시 쉬어가는 곳, 나무가 온전히 뿌리를 내리고 자라기엔 척박하고 소란스러운 그 자리를 보며 시인은 읊조린다.
“뿌리를 내려야 할 곳이 아니기에, 나는 도리어 너를 가엾게 여긴다(託根非所還憐汝).”
최근 전쟁의 참화 속에서 들려온 가자지구 의대 졸업식 소식은 왕양명이 보았던 그 늙은 회나무를 우리 곁으로 불러낸다. 알자지라 방송의 보도는 그들이 서 있는 땅이 얼마나 가혹한 역참이었는지를 생생히 증명한다. 그곳엔 강의실도, 실험실도, 변변한 교재도 없었다. 대신 의약품과 전기가 태부족한 병동이 그들의 터전이었다.

방송은 전한다. “응급실이 강의실이었고, 실려 오는 부상자가 시험이었다”고. 피란민이 되고 가족을 잃는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학생들은 매일 병원에서 숱한 환자를 돌보며 의업을 익혔다. 나무가 자랄 자리라기보다 나그네가 잠시 머물다 가는 소란스러운 역참 같은 곳에서, 그들은 오로지 생명을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뿌리를 내린 것이다.
의사는 생명을 살리는 존재다. 그러나 그들이 서 있는 곳은 역설적이게도 생명이 가장 무력하게 스러지는 전쟁의 최전선이다. 당장 내일 환자를 구하러 나선 본인이 환자가 될지도 모르는 현실. 왕양명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들은 '뿌리를 내릴 곳이 아닌 곳'에 서 있는 나무들이다. 시인은 이런 나무를 보며 연민을 느꼈지만, 동시에 그 줄기의 강인함에 경의를 표했다.
“줄기가 곧아 꺾이지 않으니 끝내 범상한 나무가 아니다(直幹不撓終異常).”
비바람과 포탄의 연기 속에서도 굽히지 않은 그들의 의지는 바로 이 '곧은 줄기(直幹)'와 닮아 있다. 평화로운 시절의 의술이 학문의 성취라면, 포화 속에서의 의술은 존재를 건 투쟁이다. 가혹한 땅이기에 그들의 선택은 더욱 또렷하고 눈부신 의미를 획득한다. 그렇게 폐허 위에서 '새 세대의 의사'가 탄생했다.
왕양명의 시는 기원과 희망으로 마무리된다.
“언젠가 산속에 옮겨 심겨, 푸른 하늘을 스치며 자라게 될 날이 올까(何當移植山林下 偃蹇從渠拂漢蒼).”
가자지구의 젊은 의사들에게도 그런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사람을 살리는 일이 더 이상 초인적인 용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 날, 흰 가운이 피가 아닌 일상의 땀방울로 젖는 날 말이다. 지금 이 폐허의 바람을 견디며 곧게 서 있는 저 젊은 나무들이 언젠가 평화의 숲에서 세상을 떠받치는 거대한 재목으로 우뚝 서기를, 늙은 회나무의 절개를 빌려 기도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