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 한 장의 무게 - 미국·이란 14개 항목 협상의 진실
2026년 2월 28일, 세계는 숨을 멈췄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향해 합동 공습을 단행한 그날, 중동의 하늘은 불꽃과 연기로 뒤덮였고, 이란의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가 그 공습 속에 사망했다. '서사시적 분노 작전(Operation Epic Fury)'이라 명명된 이 군사 행동은 수십 년간 켜켜이 쌓여온 미국과 이란 사이의 불신이 마침내 임계점을 넘은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70여 일이 지난 지금, 세계는 다시 한번 숨을 죽이고 있다. 이번엔 전쟁의 포성이 아니라, 전쟁을 끝내려는 조심스러운 손짓을 바라보며.
미국 매체 악시오스(Axios)가 2026년 5월 6일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백악관은 이란과 함께 단 한 장짜리 14개 항목의 양해각서(MOU) 체결에 근접해 있다. 이 협상을 이끄는 인물은 트럼프 대통령의 특사 스티브 위트코프와 재러드 쿠슈너이며, 파키스탄이 두 적대 세력 사이를 오가는 중재자 역할을 맡고 있다. 이란 외무부 대변인 이스마일 바카이는 미국의 제안이 현재 검토 중이며, 파키스탄을 통해 이란 측의 입장을 전달할 것이라고 확인했다. 파키스탄 외무장관 역시 자국이 이 휴전을 항구적 평화로 전환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양해각서에 담긴 내용은 절대 단순하지 않다. 이란이 핵농축 활동을 잠정 중단하는 대신, 미국은 이란에 부과된 제재를 단계적으로 해제하고 전 세계에 동결된 이란 자산 수십억 달러를 순차적으로 돌려준다는 것이 핵심 교환 조건이다. 여기에 더해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자유 통행 회복도 포함된다.
악시오스의 보도에 따르면 핵농축 중단 기간에 대해 미국 측 협상단 내에서도 최소 12년에서 15년 사이라는 엇갈린 입장이 나오고 있으며, 이 기간은 협상 진행 중인 핵심 쟁점 중 하나다. 또한 이란이 지하 핵시설 운영을 금지하는 조항과 유엔 사찰단의 불시 사찰을 포함한 강화된 검증 체계도 논의 테이블에 올라 있다. 더 나아가 이란이 이미 보유한 고농축 우라늄을 국외로 반출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으며, 일부 소식통은 그 목적지로 미국이 거론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란 측의 입장은 결이 다르다. 이란은 미국의 제안과 별개로, 자신들만의 14개 항목 제안을, 파키스탄을 통해 미국에 전달했다. 이란의 구도는 명확하다. 먼저 전쟁을 공식 종료하고 미국의 해상 봉쇄를 해제한 뒤, 핵 문제는 분리하여 이후 별도의 단계에서 논의하자는 것이다. 이란 측은 자국의 이 제안이 핵 문제를 나중으로 미루는 방식으로 협상의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중대한 양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란혁명수비대(IRGC) 계열 매체 타스님 통신이 이란 제안 내용을 유출하면서 핵 관련 조항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은, 이란 내 강경파의 시각을 가감 없이 드러낸 것으로 분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제안을 검토한 뒤 애초에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으나, 며칠 후 협상 개념에 대해 보고받았으며 정확한 문안을 기다리고 있다는 입장으로 후퇴했다.
호르무즈 해협 문제는 이 협상 전체의 지렛대다. 전 세계 원유와 액화천연가스 공급량의 약 20퍼센트가 이 좁은 물길 하나를 통과한다. 이란은 지난 2월 말부터 자국 선박을 제외한 거의 모든 선박의 통행을 실질적으로 차단해 왔고, 미국은 4월부터 이란 항구를 대상으로 자체 해상 봉쇄로 맞대응했다. 그 여파로 국제 에너지 시장은 요동쳤으며, 미국 내 유가까지 급등했다. 합의 가능성이 언급되는 것만으로도 국제 유가가 즉각 내림세를 보인 것은, 이 해협이 지닌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를 방증한다.
마르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이번 작전이 목표를 달성하고 공식 종료되었다고 선언했다. 미국이 방어 태세로 전환한 만큼 이란도 이 현실을 수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4시간 동안 이란과 매우 좋은 협상이 이루어졌다면서도, 이란이 최종 합의를 거부한다면 이전보다 훨씬 높은 강도로 폭격이 재개될 것이라는 경고도 함께 내놓았다.
또한 호르무즈 해협에 발이 묶인 선박들을 구출하기 위해 추진 중이던 자유 프로젝트(Project Freedom)는 협상 진전을 이유로 잠정 중단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이란 문제에서 트럼프와 완전한 공조 상태임을 확인하면서, 이란이 보유한 모든 농축 핵물질의 완전한 반출과 핵농축 능력 자체의 완전 해체를 최우선 목표로 거듭 천명했다.
협상은 지금 이 시간에도 파키스탄이라는 외교 다리 위에서 진행 중이다. 이란혁명수비대 정보부는 트럼프에게 봉쇄 종료 시한을 제시하며 불가능한 전쟁이냐, 불리한 합의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압박했다. 아직 최종 합의된 것은 단 한 항목도 없다. 그러나 이 전쟁이 시작된 이래 두 나라가 이렇게까지 합의에 근접한 적은 없었다고, 이 협상을 직접 들여다본 소식통들은 입을 모은다.
14개 항목, 30일의 유예 기간, 12년 혹은 15년의 약속, 전 세계 에너지의 20퍼센트. 어딘가에 있는 협상 테이블 위에 놓인 종이 한 장이 세계의 향방을 가를 수도 있다는 사실이, 오늘따라 무겁고도 엄숙하게 다가온다. 전쟁은 언제나 이유를 가지고 시작되지만, 평화는 늘 지쳐서야 온다.
호르무즈 해협의 좁은 물길을 막으면 세계가 흔들린다는 것은, 우리가 서로에게 얼마나 깊이 얽혀 있는지를 잔인하게 증명한다. 그 얽힘이 때론 공멸의 연쇄가 되지만, 어쩌면 바로 그 얽힘 때문에 인간은 끝내 협상 테이블로 돌아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기도한다. 종이 위에 쓰이는 그 14개의 문장이, 더 많은 사람이 지치기 전에 힘을 발휘하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