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기후 기록으로 고대 동아시아 강역의 재구성:
삼국사 기상 데이터의 통계적 분석과 역사적 함의
기후와 인류 문명의 유기적 상관관계 및 생물학적 정체성
인류의 역사는 거대한 기후의 흐름 속에서 형성되어 왔으며,
인간의 삶은 자신이 발을 딛고 서 있는 땅의 기온과 습도,
그리고 하늘의 움직임에 의해 근본적으로 규정된다.
과거 대구 지역에서 생산된 사과가 최고의 품질로 인정받았던 사례는
특정 작물의 재배 적지가 기후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는
지리결정론적 관점의 단편적인 예시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후의 영향력은 단순한 농업 생산성을 넘어
인류의 생물학적 진화와 문화적 정체성 형성이라는
보다 거시적인 영역에까지 깊숙이 침투해 있다.
현대 기후학자들은 급격한 인구 증가와 무절제한 에너지 소비로 인한
지구 온난화가 인류 생존의 임계점인 '1.5도 상승'이라는
특이점에 도달하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기후 변화에 민감한 식량 생산 체계의 붕괴는
이미 전 지구적인 위기로 부상하고 있으며,
이는 인간 사회를 지탱하는 모든 문화적 토대와
정체성을 흔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기후는 인간의 외모조차 생각보다 짧은 시간 내에 변형시켰으며,
이는 역사적으로 인종차별의 결정적인 바탕이 되기도 하였다.
최근 유전학의 비약적인 발전은 인류의 근원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제시한다.
아프리카 외부로 진출한 인류 사이의 유전적 차이는 예상보다 극히 미미하며,
오히려 아프리카 대륙 내부의 부족 간 유전적 다양성이 훨씬 크다는
'창시자 효과'가 입증되었다.
또한, 멜라닌 감소로 인한 백색 피부로 돌연변이가 8천 년 전,
푸른 눈의 돌연변이가 6천 년 전(1만 년이라는 연구도 있음) 발생했다는 사실과,
강렬한 햇빛에 적응하기 위해 남인도인과 호주원주민이
유사한 피부색을 갖게 되는 '수렴 효과'는
기후가 인간의 생물학적 형질에까지 미치는 강력한 지배력을 방증한다.
삼국사의 기상 기록의 특이성과 영토 비정의 재검토
김부식의 ‘삼국사’ 본기에 기록된 기상 현상들은
현대 압두남(압록강 두만강 이남)의 기후 상식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들을 포함하고 있다.
우리는 이 기후현상을 분석하므로 삼국의 영토에 대한 통찰을 얻고자 하였다.
즉 국가별로 나타나는 기상현상이 유사하지 않아
각 국가가 서로 다른 기후대에 위치했음을 시사하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신라는, 곧 500년을 전후하여 월별로 확연하게 다른 기상현상이 나타나,
달라진 원인분석이 필요함을 느꼈다.
신라의 기록에서 의문이 생겼으므로 처음 목록을 작성하고,
비교하기 위하여 백제 목록도 만들었다.
이 표를 처음 만든 연구자는 삼국의 주된 영토가 대륙이었음을 40여년 전에 처음 주장한 오재성선생이다.
신라 | |||||||
| 34년|유리11 6월 | 큰물 | 198년|내해3 5월 | 홍수 | 435년|눌지19 1월 | 대풍 | 683년|신문3 4월 | 눈 |
| 56년|유리33 4월 | 폭우 | 212년|내해17 5월 | 큰비 | 438년|눌지22 4월 | 대풍 | 698년|효소7 2, 7월 | 대풍 비 |
| 80년|탈해24 4월 | 대풍 | 214년|내해19 3월 | 폭풍 | 457년|눌지41 2월 | 대풍 | 703년|성덕2 7월 | 큰물 |
| 96년|파사17 7월 | 폭풍 | 233년|조분4 4월 | 태풍 | 465년|자비8 4월 | 큰물 | 711년|성덕10 3월 | 큰눈 |
| 100년|파사21 7월 | 우박 | 260년|첨해14 7월 전 | 큰비 | 469년|자비12 4월 | 큰물 | 715년|성덕14 6월 | 비 |
| 108년|파사29 5월 | 큰물 | 278년|미추17 4월 | 폭풍 | 482년|소지4년 2, 4월 | 대풍 장마 | 720년|성덕19 4월 | 큰비 |
| 114년|지마3 4월 | 큰물 | 290년|유례7 5월 | 큰비 | 483년|소지5년 4, 7월 | 큰물 | 749년|경덕8 3월 | 대풍 |
| 122년|지마11 4월 | 폭풍 | 344년|흘해35 4월 | 폭풍 | 494년|소지16 4월 | 큰물 | 763년|경덕22 7월 | 대풍 |
| 131년|지마20 5월 | 큰비 | 350년|흘해41 4월 | 큰비 | 496년|소지18 5월 | 큰비 | 770년|혜공6 3월 | 흙비 |
| 160년|아달라7 4월 | 큰비 | 366년|내물11 4월 | 홍수 | 500년|소지22 4월 | 폭풍 | 780년|혜공16 2월 | 흙비 |
| 174년|아달라21 1월 | 흙비 | 373년|내물18 5월 | 비 | 589년|진평11 7월 | 홍수 | 793년|원성9 8월 | 대풍 |
| 192년|벌휴9 5월 | 큰물 | 389년|내물34 2월 | 흙비 | 627년|진평49 3월 | 태풍 | 800년|소성2 2월 | 대풍 |
백제 | |||||||
| 13|온조31 4월 | 우박 | 221년|구수8 5월 | 큰물 | 379년|근구수5 3월 | 악풍 | 521년|무녕21 5월 | 큰물 |
| 19|온조37 3월 | 우박 | 222년|구수9 6월 | 고기 비 | 379년|근구수5 4월 | 흙비 | 606년|무왕7 3월 | 흙비 |
| 19년|온조37 6월 | 비 | 227년|구수14 3월 | 우박 | 382년|근구수8 6월 | 늦비 | 612년|무왕13 5월 | 큰물 |
| 99년|기루23 10월 | 우박 | 231년|구수18 4월 | 우박 | 491년|동성13 6월 | 웅천 넘침 | 660년|의자20 2월 | 우물 적조 |
| 106년|기루14 6월 | 대풍 | 239년|고이6 5월 | 늦비 | 429년|동성14 3월 | 눈 | 5월 | 폭풍우 |
| 106년|기루40 6월 | 큰비 십일 | 316년|비류13 4월 | 우물 넘침 | 429년|동성14 4월 | 대풍 | ||
| 209년|초고44 10월 | 대풍 | 331년|비류28 7월 | 비 | 497년|동성19 6월 | 큰물 | ||
고구리 | |||||||
| 31|대무신14 11월 | 無雪 | 77|태조25 11월 서울 | 눈 석자 | 300|봉상9 2~7월 | 不雨 | 535|안원5 5월 국도 남 | 큰물 |
| 37|대무신24 3월 | 우박 | 118|태조66 7월 | 우박 | 334|고국원4 12월 | 무설 | 542|안원12 3월 | 대풍 |
| 7월 | 서리 | 149|차대4 12월 | 無氷 | 335|고국원5 7월 | 서리 | 4월 | 우박 |
| 45|민중2 5월 국동 | 큰물 | 190|고국천12 9월 | 눈여섯자 | 377|소수림7 10월 | 무설 | 546|양원2 4월 | 우박 |
| 46|민중3 12월 서울 | 무설 | 194|고국천16 7월 | 서리 | 388|고국양5 4월 | 가뭄 | 561|평원3 6월 | 큰물 |
| 48|모본1 8월 | 큰물 | 272|서천3 4월 | 서리 | 426|장수7 5월 국동 | 큰물 | 563|평원5 여름 | 가뭄 |
| 59|태조7 7월 서울 | 큰물 | 6월 | 가뭄 | 423|장수12 9월 | 대풍 | 581|평원23 7월 | 서리 우박 |
| 72|태조20 4월 서울 | 가뭄 | 298|봉상7 9월 | 서리우박 | 523|안장5 봄 | 가뭄 | ||
신라의 기록에서는 4~5월에 집중된 홍수와 폭우는
오늘날의 대만이나 홍콩 등 아열대 지역의 기상도와 일치한다.
더욱이 우리 땅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흙비가 여러 차례 보이고 있어 눈길을 끈다.
백제 또한 현재 우리 땅에서는 거의 경험할 수 없는
우물 넘침, 적조현상 등이 보이고 있다.
또 지나대륙의 주먹만큼 큰 우박 소식도 우리를 놀라게 하지만,
흙비 기록은 하북평원과 하남성 및 안휘성의 중국 내륙 황사 이동 경로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준다.
고구리는 위도가 높은 북방 지역의 전형적인 한랭 기후를 나타내므로
비로소 우리가 배웠던 영토의 기후라고 인지된다.
그럼에도 4, 7월의 서리, 겨울철의 무설이나 무빙,
3, 4월의 우박은 매우 불안정하여
어떤 지형에서 발생할 수 있는지 추정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러한 데이터의 상이함은
삼국이 압두남이라는 협소한 지역이 아닌,
동아시아 대륙 전체를 무대로
각기 다른 기후 환경에 처해 있었음을 보여주는 실증적 증거이다.
이들을 종합하여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구분 | 신라 | 백제 | 고구리 |
| 기후대 분류 | 태풍권 기후 | 내륙 건조 기후 | 북방 한랭 기후 |
| 주요 기상 현상 | 폭우, 홍수, 폭풍, 1월의 비 | 우박, 흙비, 물 넘침 | 고드름, 서리, 대설, 우박 |
| 기록 데이터 비중 | 태풍/폭우 63%, 홍수 25%, 기타 12% | 대풍/비 44%, 우박/비 28%, 기타 28% | 가믐/무설 36%, 홍수/대풍 26%, 서리 19%, 우박/대설 19% |
| 지리적 비정 | 아열대 태풍권 (대만, 홍콩 위도) | 중국 내륙 건조지대 (하북평원, 하남성) | 북방 고위도 대륙 (하북성 북부, 몽골, 만주) |
| 특이 사항 | 음력 4~5월 조기 태풍 기록 뚜렷 | 황사 경로와 일치하는 흙비 빈도 | 극심한 한랭화 및 온도 변화 기록 |

신라의 기후 자료의 시계열적 변천은 영역 변화와 일치
아쉽게도 신라의 500년대 기록은 2건뿐이어서 상대적으로 적다.
그럼에도 신라의 기록을 면밀하게 관찰하면
서기 500년을 기점으로 기상 기록이 극적으로 변화한다는 사실이 감지된다.
즉 500년까지 이상기후 36건 가운데 6~8월의 기상이변은 6회여서 17%이고,
500년 이후는 16회 가운데 6회라 38%이다.
경우의 수가 적고 시대적 간격이 넓어, 통계적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더라도,
17%와 38%는 현저한 차이다. 다음의 표로 그 변화는 명징하게 드러난다.
| 월|세기 | 1세기 | 2세기 | 3세기 | 4세기 | 5세기 | 6세기 | 7세기 | 8세기 | 9세기 | 소계 | |
1월 |
| 1 |
|
| 1 |
|
|
|
| 2 | 총 40회 |
2월 |
|
|
| 1 | 2 |
| 1 | 1 |
| 5 | |
3월 |
|
| 1 |
|
|
| 1 | 3 |
| 5 | |
4월 | 2 | 3 | 2 | 3 | 6 | 1 | 1 | 1 | 1 | 20 | |
5월 |
| 4 | 2 | 1 | 1 |
|
|
|
| 8 | |
6월 | 1 |
| 1 |
| 1 |
|
| 1 |
| 4 | 총 12회 |
7월 | 1 | 1 |
|
| 1 | 1 | 1 | 2 |
| 7 | |
8월 |
|
|
|
|
|
|
| 1 |
| 1 | |
소계 | 4 | 9 | 6 | 5 | 12 | 2 | 4 | 9 | 1 | 52 | |
비고 | 500년 이전 총 36회 | 500년 이후 16회 | |||||||||
이러한 기후변화에는 기시감이 있다.
지난번 4월 16일자 글인 “우리 역사상 국명과 연속성”에서
신라의 국호 변경이 이 땅의 영역 확보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을 수 있음을 언급한 바 있다.
따라서 이상기후 기록도 대륙의 영역만이 아닌,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이 땅(압두남)의 기후가 반영되어 있음을 의심하지 않을 수 있다.
박창범 교수의 천문 관측 연구와 삼국사의 신뢰성
박창범 교수는 ‘삼국사’에 기록된 일식 현상을
천문학 전문지식으로 역추적하여 당시의 정치 중심지를 추정하였다.
3월 24일자로 올렸던 글인 “우리 고대 국가의 위치는 어디일까?”
뒷부분에 소개하였던 박창범교수의 ‘천문관측 지역’에서,
고구리와 백제의 천문관측 지역은 고정되어 있음에 비하여
신라는 후대, 즉 700년대 이후의 천문관측 지역이
이 땅(압두남)의 남쪽 지방으로 나타난다는 사실도
이 이상기후 기록의 변화와 역시 부합한다.
참고로 박창범 교수의 연구내용의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국가별 관측지:
고구리는 만주 및 몽골 접경 지역,
백제는 하북평원
신라는 관측지 이동: 상대 신라(서기 201년 이전)는 중국 장강 중류 지역이나
하대 신라(787년 이후)는 압두남의 남부 지방
기록의 정확성:
삼국사 일식 기록의 실현율은 89%로, 중국(78%)이나 일본(36%)보다 월등히 높다.
이러한 과학적 실증은 ‘삼국사’ 초기 기록이 조작되거나
중국을 표절한 것이 아니라,
각 국가가 고정된 장소에서 독자적으로 관측한 실제 기록임을 증명한다.
과학적 데이터를 통한 역사학의 지평 확대
기후와 천문 기록은 인간의 의지가 개입될 수 없는 자연의 실측치이다.
‘삼국사’의 기상 자료와 일식 관측지의 지리적 이동은
고대 한국사의 무대가 압두남을 넘어
동아시아 대륙 전체를 아우르고 있었음을 웅변한다.
나아가 삼국사라는 역사서가 스스로 교차검증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부정적이면서 상식을 벗어나는 듯한 기록이
곳곳에 숨어있음에도 삼국사의 신뢰성을 빛나게 한다.
우리는 이러한 과학적 지표를 통해
6백 년 이전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를 복원하고,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재정립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