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계약이 해제되었습니다. 잔금을 납부하지 못했거나, 중도금 납부가 지연되어 결국 시행사로부터 해제 통보를 받으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얼마 후 시행사로부터 또 다른 청구서가 날아옵니다. "입주지정기간 이후 해제일까지의 관리비를 납부하라"는 것입니다. 이미 계약은 해제되었는데, 단 하루도 입주하지 않은 건물의 관리비를 수분양자가 정말 내야 하는 걸까요?
왜 시행사는 관리비까지 청구하는가
분양계약서를 자세히 살펴보면, 많은 계약서에 다음과 같은 조항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수분양자가 입주지정기간이 경과하도록 중도금·잔금을 납부하지 않을 경우, 그 기간 동안 발생하는 관리비는 수분양자가 부담한다."
시행사 입장에서는 분양계약이 해제되더라도 이 약정을 근거로, 입주지정기간 개시일부터 해제일까지의 관리비를 별도로 청구합니다. 이미 위약금(통상 분양대금의 10%)까지 수령해 두고서도 말입니다.
수원지방법원 2020나85528 판결이 바로 이 상황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시행자인 원고(시행사)가 수분양자인 피고를 상대로 미납 중도금·잔금에 대한 연체이자와 함께 입주지정기간 이후의 관리비를 추가 청구한 사건입니다.

법원의 판단 — 관리비 청구는 인정되지 않는다
이 판결의 결론은 명확합니다.
분양계약이 해제된 이상, 관리비 부담 약정도 함께 소멸한다.
법원은 이렇게 판단하였습니다. 관리비 부담 조항은 분양계약이 유효하게 존속하는 것을 전제로 수분양자에게 부과된 의무입니다. 분양계약이 해제되면 계약은 소급하여 처음부터 없었던 것과 같이 되고(민법상 해제의 소급효), 이에 따라 관리비 부담 약정 역시 그 효력을 상실합니다.
나아가 법원은 수분양자의 중도금·잔금 미납으로 인한 손해는 계약서에서 미리 정한 위약금 조항, 즉 손해배상액의 예정(민법 제398조)으로 이미 포괄된다고 보았습니다. 위약금이란 채무불이행으로 발생하는 손해를 미리 합산·확정해 둔 것인데, 거기서 관리비만 별도로 뽑아내어 추가 청구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취지입니다.
한마디로, 위약금으로 손해를 정산하기로 했다면, 관리비는 이미 그 안에 포함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같은 취지의 하급심 판결은 이 사건 외에도 다수 존재합니다(수원지방법원 2022가단522853, 인천지방법원 2015가단212403 등).
예외는 없는가 — 수원지방법원 2022나109206 판결
물론 예외적인 판단도 있습니다. 수원지방법원 2022나109206(2024. 2. 14. 선고) 판결은 관리비 부담 약정을 분양계약과 독립된 "별도 약정"으로 평가하여, 계약 해제 이후에도 해제일까지 발생한 관리비 지급의무를 인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일반적인 시행사의 선택적 계약해제와 구조가 다릅니다. 채무자회생법에 따른 관리인(법원이 선임한 법정 관리인)의 법률상 해제라는 매우 특수한 경위가 개입되어 있어, 이를 일반적인 분양계약 해제 상황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통상적인 구조, 즉 수분양자가 중도금·잔금을 미납하여 시행사가 계약을 해제하고 위약금을 몰취하는 전형적인 경우에는 앞서 살펴본 수원지방법원 2020나85528 판결의 법리가 상대적으로 우세하게 적용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Q&A — 실무에서 가장 많이 묻는 질문
Q. 계약서에 관리비 부담 조항이 명시되어 있으면 무조건 내야 하지 않나요?
A.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약정이 존재하더라도 그 약정이 분양계약의 존속을 전제로 한 부수적 의무라면, 계약 해제와 함께 그 효력도 소멸합니다. 특히 계약서에 "위약금과 별도로 청구 가능하다"는 명시적 문언이 없다면, 관리비를 이중으로 청구하는 것은 인정되기 어렵다는 것이 법원의 일관된 흐름입니다.
Q. 시행사가 위약금을 몰취하면서 관리비까지 청구하는데, 둘 다 내야 하나요?
A. 위약금과 관리비를 동시에 청구받은 경우, 관리비 부분은 충분히 다툴 여지가 있습니다. 위약금이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기능하고 있는 이상, 그 범위에 관리비 상당의 손해도 포함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계약서의 구체적인 문언과 해제 경위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반드시 개별 사안별로 검토가 필요합니다.
Q. 이미 관리비를 납부했다면 돌려받을 수 있나요?
A. 계약 해제의 소급효에 따라 관리비 부담 약정의 효력이 소멸한다면, 이미 납부한 관리비는 법률상 원인 없이 지급된 것이 되어 부당이득 반환 청구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납부 이후 상당한 시간이 경과한 경우에는 소멸시효 문제도 함께 검토해야 합니다.
수분양자가 지금 당장 확인해야 할 것들
시행사로부터 관리비 청구서를 받으셨다면, 다음 사항을 우선적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① 계약서의 위약금 조항 문언 "위약금과 별도로 청구 가능하다"는 문구가 없다면, 관리비를 별도 청구하는 것은 다툴 여지가 상당합니다.
② 해제의 원인 시행사 귀책(공사 지연, 건축물분양법 위반 등)으로 계약이 해제된 경우라면, 관리비 문제 이전에 기납 분양대금 전액 반환 청구와 손해배상 문제가 선행합니다.
③ 서면 이의 제기 관리비 청구에 이의가 있다면 내용증명 등 서면으로 즉시 이의를 제기하십시오. 아무런 이의 없이 시간이 경과하면 묵시적 승인으로 불리하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④ 이미 납부한 관리비가 있는 경우 부당이득 반환 청구 가능 여부를 소멸시효와 함께 확인하십시오.
마치며
분양계약이 해제된 이후 시행사가 청구하는 관리비는, 상당수의 경우 수분양자가 그대로 응해야 할 의무가 아닙니다. 위약금으로 손해를 정산하고도 관리비를 추가로 요구하는 것은 이중 부담에 해당할 수 있고, 법원 역시 이를 인정하지 않는 방향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다만 계약서마다 문언이 상이하고, 해제의 원인과 경위에 따라 결론은 충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지금 받으신 청구서가 조금이라도 납득하기 어렵게 느껴지신다면, 그 '납득하기 어려움'이 바로 법률 검토가 필요하다는 신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