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폐 진단은 부모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이 된다. 그러나 '포기'와 '체념' 대신 '시도'와 '기회'를 택한 가족이 있었다. 해오름한방병원 심리발달센터 치료실에서 만난 네 살 아이는 처음엔 말이 없었고 눈을 마주치지도 않았다. 하지만 9개월이 흐른 지금, 그는 이제 엄마를 부르고 감정을 표현하며 타인과 상호작용을 시도하는 아이로 달라졌다. 이 변화의 핵심은 자연주의적 발달학적 행동주의 접근, 즉 NDBI 기반의 ESDM 치료에 있다. 치료는 아이의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발달을 유도하며, 행동 변화와 정서적 반응을 함께 이끌어냈다. 자폐 아동 치료는 더 이상 반복훈련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이 기사는 그 변화의 과정을 따라가며, 자폐 진단 이후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부모들에게 현실적인 희망을 전하고자 한다.
조기중재와 NDBI, 아이의 미래를 바꾸는 치료법
조기중재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 아동의 발달을 돕기 위해 가능한 이른 시기에 개입하는 치료를 말한다. 특히 생후 36개월 전후는 뇌 발달의 결정적 시기로, 이 시기에 적절한 자극과 상호작용이 제공되면 인지, 언어, 사회성 전반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NDBI(Naturalistic Developmental Behavioral Interventions)는 최근 주목받는 치료 접근으로, 발달심리학과 응용행동분석(ABA)의 이론을 기반으로 하되 아동의 자발성과 일상 환경을 적극 활용한다는 점에서 기존 치료와 구별된다. NDBI는 단순 훈련이 아니라 '놀이 속 상호작용'을 통해 아이가 스스로 사회적 행동을 익히도록 돕는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인 ESDM(Early Start Denver Model)은 이러한 철학을 반영한 대표적 모델로, 만 1세부터 5세까지의 자폐 아동에게 효과적인 치료법으로 입증되고 있다.
9개월간의 기록, 치료실에서 일어난 변화
2024년 5월부터 2025년 2월까지, 인천에 위치한 해오름한방병원 심리발달센터의 치료실에서는 매주 정기적인 ESDM 치료 세션이 진행되었다. 대상은 자폐 스펙트럼 진단을 받은 4세 남아로, 치료 전에는 눈맞춤과 언어표현이 거의 없고 감각적 자극에 과민반응을 보이는 상태였다. 치료는 이희정 센터장을 중심으로 언어치료사, 감통치료사 등 전문가들이 팀을 이뤄 진행되었으며, 매 세션마다 자연주의적 발달 접근법인 NDBI 원리에 따라 아이의 자발적 행동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었다. 치료는 병원 치료실 내에서 이뤄졌으며, 놀이 상황 중심의 구조화된 환경과 부모상담 병행을 통해 집에서도 일관된 반응과 훈련이 가능하도록 했다. 9개월의 치료 기간 동안 주 2회 이상 회기가 유지되었으며, 초기 진단평가와 중간 점검, 최종 행동관찰을 통해 치료 효과가 지속적으로 평가되었다.
치료 전, 말도 눈빛도 닿지 않던 시간
처음 해오름한방병원 심리발달센터를 찾았을 때, 이 아이는 세상과 단절된 듯 보였다. 말을 하지 않았고, 부모와 눈을 마주치는 일조차 거의 없었다. 장난감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소리에 과하게 반응하거나 반복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부모는 "혹시 말을 늦게 트는 것뿐일까"라는 희망과 "혹시 자폐는 아닐까"라는 두려움 사이에서 수개월을 방황했다. 그러나 결국 자폐 스펙트럼 장애 진단을 받았고, 더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는 절박감에 치료를 결심하게 되었다.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눈을 마주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부모는 치료실의 문을 열었고, 이희정 센터장을 포함한 치료팀은 그 절박한 마음을 함께 품고 맞이했다. 치료는 아이뿐 아니라 부모 모두를 위한 과정이기도 했다.
눈을 마주치고, 엄마를 부른 날
치료가 시작된 지 세 달이 지났을 무렵, 변화를 가장 먼저 감지한 것은 아이의 어머니였다. “눈을 마주치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몇 초였지만, 점점 그 시간이 길어졌어요.” 그 작은 변화는 치료의 전환점이 되었다. 이후 아이는 언어치료사와의 놀이 중 의성어를 따라 하더니, 어느 날은 뜻을 담은 단어를 처음으로 발화했다. "까까", "더 줘" 같은 단어들은 아이가 세상과 연결되고 있다는 증거였다. 감통치료 중에는 몸을 부딪히는 신체 자극 대신, 포옹과 손잡기를 통해 정서적 반응을 유도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변화는 부모상담을 통한 일상 연계였다. 치료사들은 부모에게 상황별 대화 방식, 반응 기법, 놀이법을 교육했고, 이는 가정 내에서도 연속적인 치료 환경을 만들었다. 아이의 변화는 단지 치료실 안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일상 곳곳에서, 부모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조용한 기적이 자라나고 있었다.
조기중재가 바꾼 성장 궤적
자폐 아동에게 있어 조기중재는 단순한 ‘빠른 시작’이 아니다. 그것은 뇌 발달의 결정적 시기에 올바른 자극을 주어 발달 궤적 자체를 바꾸는 핵심 전략이다. 이번 사례처럼 4세 이전에 NDBI 기반의 치료를 시작하면 언어, 사회성, 정서 조절 등 주요 발달 영역에서 뚜렷한 진전을 기대할 수 있다. 특히 ESDM은 아동의 자발적 반응을 유도하는 구조화된 놀이 상황을 통해, 자폐 아동에게 부족한 사회적 상호작용 능력을 자연스럽게 끌어낸다. 이 과정은 단기적인 언어 습득에만 머물지 않는다. 감정 표현, 또래 관계, 나아가 학습과 사회적 자립까지 영향을 미친다. 해오름한방병원의 이희정 센터장은 “자폐 치료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강조한다. 조기중재를 통해 아이는 이제 시작선에 섰고, 그 다음은 부모와 환경이 함께 만들어갈 수 있다. 치료를 시작한 이 가족처럼, 또 다른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
희망은 진단 이후에 시작된다
4세 아이가 눈을 마주치고, 이름을 부르고, “엄마”라고 부르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9개월이었다. 그 짧지만 깊은 시간 동안 아이는 세상과의 연결고리를 하나씩 만들어갔다. 이 변화는 기적이 아니다. 적절한 시기, 과학적 접근, 헌신적인 치료,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를 포기하지 않은 부모의 용기에서 비롯되었다. 자폐라는 진단이 모든 것을 멈추게 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것은 치료를 시작해야 할 가장 강력한 이유가 된다.
이번 치료를 이끈 해오름한방병원 심리발달센터의 이희정 센터장은 자폐 조기중재 분야에서 다년간의 임상 경험을 가진 전문가로, 언어치료사·감통치료사와의 협력 체계를 바탕으로 통합적 접근을 실현해왔다. 이들이 함께 만든 이 사례는 수많은 부모에게 “당신의 아이도 달라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진단은 끝이 아니다. 치료가 시작되면, 그다음은 희망이 기다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