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제작: AI 이미지 생성)
- 1. 양성평등주간, 이벤트를 넘어 변화의 촉매제로
1995년 제정된 「여성발전기본법」은 2014년 전면 개정을 거쳐 「양성평등기본법」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이에 따라 기존의 '여성주간'은 '양성평등주간'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2015년부터 시행됐다. 기간은 매년 7월 1일부터 7일까지였으나, 2020년부터는 9월 1~7일로 조정됐다.
양성평등주간의 목적은 명확하다. 남성과 여성의 조화로운 발전을 통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서 일과 가정의 균형을 실현하고, 실질적인 평등의 이념을 구현하는 것이다. 양성평등주간을 보내면서 우리는 어떤 약속을 하고 어떤 실천을 해야 하는가.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차별받는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오히려 역차별이 문제"라고 답하는 남성도 있고, "여전히 여성이라는 이유로 기회가 줄어든다"고 말하는 여성도 있다. 서로 다른 인식 속에서 양성평등은 종종 '누구의 편을 들어야 하는가'의 문제로 변질되곤 한다. 성별이 기회를 제한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려면 언어와 생활 속에 숨어 있는 차별적 요소를 찾아내고 바로잡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2. 형식적 행사를 넘어서야
매년 9월 초, 지자체와 여러 단체가 양성평등주간 기념행사를 개최한다. 강연, 축하공연, 시상식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지만, 해마다 반복되는 '이벤트성' 행사로 흐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문제는 매년 9월이 되면 반복되는 행사의 틀이다. 어느 지자체든 비슷한 순서로 진행되는 기념식, 여성 리더들의 성공담 중심 강연, 예측 가능한 수상자 선정과 축사가 이어진다. 지난해와 올해, 그리고 내년의 행사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판에 박힌 프로그램이 대부분이다.
이런 행사가 진정 양성평등을 위한 자리인가, 아니면 보여주기식 절차인가? 이 자리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우고, 어떤 변화를 약속해야 하는가? 오늘의 기념식이 내일의 실천으로 이어지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그리고 미래 세대에게 어떤 사회를 물려주고 싶은가? 양성평등 기념식은 단지 '치르는 행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벤트성 행사로 끝나면 양성평등은 '기억'이 아니라 '소모품'이 된다. 이제는 양성평등주간을 '하루의 전시회'가 아니라 '변화의 촉매제'로 바라봐야 한다. 행사 기획 단계에서부터 후속 실천 계획과 성과 공유 방안을 함께 담아야 한다.
3. 작은 변화부터 기록하고 나누기
행사의 진정한 가치는 화려한 무대가 아니라 그 자리에서 오간 진솔한 대화와 다짐에 있다. 적어도 그날의 나눔을 제대로 기록해서 내년에 무엇이 나아졌는지 찾아보는 것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참석자들이 행사에서 느낀 점, 일상에서 실천하고 싶은 작은 변화들을 모아두고, 1년 후 그 약속들이 어떻게 지켜졌는지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진전이다. 거창한 디지털 저장소보다는 진심어린 기록과 성찰이 더 중요하다.
변화는 거대한 시스템 구축이 아니라 작은 약속을 지켜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올해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이 내년에 "작년보다 조금이라도 더 평등한 하루를 보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양성평등주간은 성공이다.
4. 평등을 생활화하는 사회로 가는 길
양성평등은 법률 조항이나 정책 보고서 속에만 존재해선 안 된다. 언어, 직장 문화, 교육, 가정 속 일상에 스며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학교와 직장, 지역사회에서 양성평등 교육과 실천 프로그램을 연중 운영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루의 구호보다 매일의 작은 변화가 더 큰 힘을 발휘한다. 궁극적으로 양성평등주간은 '기념일'이 아니라 '문화 습관'을 만드는 촉발점이 되어야 한다.
양성평등주간이 의미 있는 시간을 넘어 실질적인 변화의 기폭제가 되려면, 우리는 기념 이후의 시간을 어떻게 설계할지부터 고민해야 한다. 7일간의 선언이 365일의 실천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이 주간은 진정한 의미를 갖게 된다. 평등은 매일같이 지켜내야 하는 생활 속의 약속이다. 올해 양성평등주간이 끝나면, 내년에는 "작년보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더 평등해졌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때 우리가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다면, 다음 세대는 더 평등하고 자유로운 사회를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