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동의 메마른 광야와 모래바람 속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곳에서 나는 잿빛 먼지 아래 숨 쉬는 또 다른 세상의 심장박동을 들었다. 서구의 잣대로는 결코 측정할 수 없는, 깊고 오랜 전통에 뿌리를 둔 아랍인들의 삶이었다.
그들의 문화를 피상적으로 관찰하는 것은 사막의 신기루를 좇는 것과 같다. 가까이 다가가 그들의 천막 안으로 들어가 함께 차를 마시고,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기 전까지는 그 영혼의 진짜 결을 만질 수 없다.
아랍인들의 삶을 관통하는 첫 번째 코드는 공동체와 사회적 질서이다.
10대가 지나면 엄격해지는 남녀의 유별함, 남자 승객은 운전사 옆에, 여자 승객은 뒷자리에 앉는 불문율, 줄을 설 때조차 나뉘는 모습은 외부인에게 낯설고 답답한 굴레처럼 보일 수 있다. 돼지고기와 술을 금하고, 왼손으로 악수하거나 식사하는 것을 꺼리며, 앉았을 때 신발 밑창을 보이지 않으려는 세세한 관습까지 이 질서의 일부다.
이러한 규칙들은 단순히 개인을 억압하는 장치가 아니라, 수천 년간 척박한 환경 속에서 공동체의 생존과 화합을 위해 다져진 사회적 약속이다. 개인의 자유보다 공동의 명예와 조화를 중시하는 이 문화 속에서 그들의 강한 자존심과 정체성이 형성된다. 어렵다고 무조건 구호물자를 내미는 것보다 그들의 자존심을 지켜주며 마음을 전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두 번째로, 아랍 문화의 핵심에는 지극한 환대와 관계 중심적 소통이 자리한다.
낯선 이에게조차 서툰 영어로 길을 알려주려 애쓰는 순수함, 한번 손님으로 맞으면 온 집안의 것을 내어주어도 아깝지 않게 여기는 융숭함은 과거 사막을 오가던 유목민(베두인)의 생존 방식에서 유래된 깊은 지혜이다. 광야에서 나그네는 잠재적 위협이 아닌, 새로운 소식과 도움을 줄 수 있는 귀한 존재였고, 그를 대접하는 것은 곧 공동체의 생존과 직결되는 미덕이었다.
이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그들은 사소한 주제로도 밤새 이야기꽃을 피우고, 대화할 때는 상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깊은 유대를 형성한다. 모든 것을 효율과 속도로 평가하는 현대 사회가 잃어버린 인간관계의 원형을 그들에게서 발견하곤 한다.
하지만, 이 관계의 이면에는 서구적 합리성과는 다른 논리가 존재한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도 방금 식사를 했다고 말하는 작은 거짓말, 잘 모르면서도 친절하게 답을 해주는 모습 등은 문자 그대로의 '사실'보다 관계의 조화와 상대방의 기분을 우선시하는 그들의 성향을 보여준다.
이는 진실과 거짓의 이분법으로 쉽게 재단할 수 없는 문화적 토양이다. 그들의 소통 방식은 딱딱한 사실 전달이 아닌, 부드러운 관계 유지를 위한 윤활유에 가깝다.

마지막으로, 그들의 삶과 언어 모든 곳에 스며든 독특한 세계관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는 아랍어의 흐름이 악수와 입장의 순서까지 결정하듯, 그들의 삶은 운명에 대한 깊은 인식을 바탕으로 흘러간다. 어떤 계획 앞에서도 "인샬라(신의 뜻이라면)"라고 말하고, 좋은 일을 볼 때면 "마샬라(신의 뜻대로)"라며 겸허함을 보인다. 이는 단순히 종교적 표현을 넘어, 인간의 계획이 거대한 섭리 앞에서 얼마나 작은 것인지를 인정하는 문화적 태도이다.
이로 인해 약속이 미뤄지거나 계획이 틀어져도 조급해하기보다 상황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 집보다 자동차를 중시하는 문화는 이동을 숙명으로 여겼던 유목민의 DNA가, 제조업보다 상업을 선호하는 것은 고대부터 실크로드를 누비던 상인의 기질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보여준다.
오랜 기간 그들과 부대끼며 깨달은 것은, 아랍 문화는 옳고 그름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와 존중의 대상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의 질서 관념, 환대 문화, 독특한 세계관은 수천 년의 역사와 지리가 빚어낸 삶의 방식이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우리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오만함을 버리고, 그들의 삶의 논리를 있는 그대로 배우고 존중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분석과 이해를 넘어, 진심으로 그들의 삶에 들어가 친구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들의 문화를 겉핥기식으로 소비하는 이방인으로 남을 것인가, 그 삶의 논리를 존중하는 진정한 이웃이 될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