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민족의 땅, 끝나지 않은 이야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기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현대의 비극이 아니다. 그것은 같은 땅을 ‘약속’이라 믿었던 두 민족의 운명이 엇갈리기 시작한 아주 오래전 이야기로부터 흘러나온, 길고도 슬픈 강물과 같다.
모든 것의 시작은 역사의 새벽녘, 기원전 13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이라 불리는 땅에 들어선 그 무렵, 공교롭게도 ‘바다의 사람들’이라 불리던 팔레스타인 민족 역시 해안가에 터를 잡았다.
한 땅에 운명처럼 함께 도착한 두 민족의 만남은, 그렇게 기록된 영토 분쟁의 첫 페이지를 장식한다. 다윗 왕이 통일왕국을 세우며 잠시 평화를 구가했지만, 그 영광은 찰나에 가까웠다. 분열된 왕국은 결국 거대한 로마 제국의 말발굽 아래 스러졌고, 서기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불타오르며 유대 민족은 세계사에서 가장 길고 아픈 유랑, ‘디아스포라’의 길을 떠나야만 했다.
주인이 떠난 땅은 새로운 주인을 맞이했다. 아랍인들이 그 땅에 뿌리내렸고, 이슬람의 깃발 아래 예루살렘은 중요한 성지가 되었다. 수 세기 동안 그 땅은 아랍-이슬람의 세계였다. 흩어진 유대인들에게 그곳은 돌아가야 할 정신적 고향이었지만, 그곳에 남은 아랍인들에게는 삶의 터전 그 자체였다. 잠들어 있는 듯 보였던 갈등의 씨앗은 그렇게 땅속 깊은 곳에서, 그리고 민족의 기억 속에서 조용히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씨앗을 깨운 것은 19세기 유럽에 불어닥친 차가운 바람이었다. 대륙을 휩쓴 반유대주의의 광풍 속에서 유대인들은 절박하게 깨달았다. 우리 민족만의 안전한 울타리가 없다면 이 유랑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그 절박함은 ‘시온주의’라는 이름의 거대한 열망으로 타올랐고, 1897년 스위스 바젤에 모인 그들은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 국가를 건설하자는 구체적인 청사진, ‘바젤 계획’을 내놓았다. 그것은 단순한 꿈이 아니라, 전 세계의 유대인을 조직하고, 민족의식을 고취하며, 강대국의 지지를 얻어내려는 치밀한 전략이었다.
이 민족적 귀환의 열망이 현실 정치의 무대로 뛰어든 것은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였다. 중동의 맹주 오스만제국을 무너뜨려야 했던 영국은 전쟁에서의 승리를 위해 아랍과 유대 양쪽 모두에게 달콤하고도 위험한 약속을 건네는 이중주를 연주했다.
아랍 지도자 후세인에게는 오스만제국에 맞서 싸워준다면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독립 국가를 보장하겠다고 속삭였고, 동시에 미국 내 유대인들의 지지와 자금이 필요했던 그들은 유대계 재력가 로스차일드에게 팔레스타인 내 유대 민족 국가 건설을 지지한다는 ‘밸푸어 선언’을 보냈다.
영국의 약속을 믿은 아랍인들은 영웅적으로 싸웠다.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신화처럼 그들은 연합국 승리에 결정적 기여를 하며 독립의 꿈에 부풀었다. 하지만 전쟁의 포성이 멎었을 때, 그들을 기다린 것은 차가운 배신이었다. 영국은 두 개의 약속을 모두 저버린 채, 1920년 산레모 회의에서 팔레스타인을 자국의 위임통치령으로 편입시켜 버렸다.
영국의 통치 아래 팔레스타인은 압력솥 같았다. 나치의 박해를 피해 유럽에서 밀려든 유대인 이주민들로 인구 지형은 급격히 변했고, 유대인들의 토지 소유가 늘어날수록 수 세기 동안 그 땅에 살아온 아랍인들의 생존권은 위협받았다.
저항은 조직화되었고, 아랍의 민족주의와 유대의 시온주의는 ‘이르군’, ‘하가나’와 같은 무장 단체의 총구로 서로를 겨누기 시작했다. 스스로 불을 붙이고 감당할 수 없게 된 영국은 결국, 타오르는 불씨를 신생 국제기구 유엔의 손에 떠넘기며 무책임하게 퇴장했다.
공은 유엔으로 넘어갔고, 그들은 오랜 고심 끝에 하나의 해결책을 내놓았다. 바로 팔레스타인을 아랍인 구역과 유대인 구역으로 나누는 ‘분할안’이었다. 국가를 가질 수 있다는 희망에 유대인들은 그 안을 기꺼이 받아들였지만, 자신의 땅을 조각내어 뺏길 수 없었던 아랍인들은 결코 수용할 수 없다며 격렬히 저항했다.
하지만, 역사의 수레바퀴는 멈추지 않았다. 1948년 5월 14일, 다비드 벤구리온은 마침내 이스라엘 국가 수립을 선포했다. 수천 년의 유랑 끝에 이룬 귀환의 꿈이 실현되는 순간이었지만, 그것은 분쟁의 끝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곧바로 이어질 중동 전쟁의 서막이자, 오늘날까지 피 흘리며 계속되는 또 다른 형태의 분쟁이 시작되는 새로운 전환점이었다.
기원전 13세기, 한 땅에서 마주친 두 민족의 이야기는 그렇게 하나의 매듭을 맺는 동시에, 더 풀기 어려운 매듭을 만들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땅의 이야기는, 이제 새롭게 시작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