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독교 신앙의 심장부에는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는 죄 사함'이라는 장엄하고도 영원한 법칙이 자리하고 있다. 이것은 인류 역사의 어느 한 시점에서 고안된 긴급 처방이 아니라, 창세 이전, 시간과 공간이 존재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친히 결정하신 경륜이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1장과 3장을 통해, 이전의 선지자들이 부분적으로 감지했을지는 모르나 그 실체적 깊이를 온전히 알지는 못했던 이 '감추인 비밀'을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로 깨달아 우리에게 전수해 주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가장 고뇌하셨을 부분은 다름 아닌 '자유의지'의 부여였을 것이다. 전지하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이 고귀한 선물을 주셨을 때, 그들이 그 자유를 오용하여 잘못된 선택을 하고 죄를 범할 것을 미리 아셨다.
이 지점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딜레마가 발생한다. 절대적으로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죄를 간과하실 수 없으며, 동시에 절대적으로 사랑이신 하나님은 죄지은 인간을 포기하실 수 없었다.
이 신적(神的) 딜레마의 유일한 해답이 바로 '영원한 법칙', 곧 성자(聖子)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이다.
바울이 깨달은 것은, 하나님께서 죄를 범할 인간을 구원하시는 유일한 방법으로, 그분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시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게 하심으로 인류의 모든 죄값을 치르게 하셨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피의 공로, 곧 메시아의 대속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마다, 하나님께서는 그 죄를 영원히 기억하지 않으시겠다는 '영원한 언약'을 세우셨다.
기독교 구원론의 핵심
이것이 바로 기독교 구원론의 핵심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에(롬 6:23), 누군가는 그 값을 치러야 했다. 그러나, 유한한 인간은 자신의 죄조차 감당할 수 없기에, 무한하시고 흠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친히 그 제물이 되신 것이다.
더 나아가, 이 법칙은 단순히 '죄의 용서'에서 그치지 않는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이 죄 사함을 받은 자에게 '은혜의 선물'로 하나님의 신령한 축복, 곧, '성령'을 구원의 보증(인치심)으로 주신다는 놀라운 비밀을 깨달았다(엡 1:13-14). 성령의 내주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확증하는 보증수표이며, 이 땅에서 천국의 삶을 미리 살아갈 수 있게 하는 능력의 근원이다.
그리스도인이란 바로, 이 사도 바울의 위대한 깨달음에 동참하는 자들이다. 우리는 우리의 노력이나 선행이 아니라, 오직 십자가에서 완성된 그리스도의 피 공로와 그 은혜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전 세계 18억 무슬림은 아직 이 하나님의 영원한 은혜의 법칙을 알지 못한다. 기독교인 한 사람으로서 지난 짧지 않은 기간을 그들의 경전인 꾸란과 신학을 연구하며, 무슬림 형제자매들과 대화해 본 결과, 기독교와 이슬람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바로 이 '죄와 구원의 법칙'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된다.
이슬람에서 ‘죄’
이슬람에서의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키는 '본성적 상태'라기보다는, 인간의 나약함이나 망각에서 비롯된 '불순종 행위'로 간주된다. 물론 가장 큰 죄는 유일신 알라 외에 다른 신을 두는 '쉬르크'(Shirk)이지만, 일반적인 죄들은 알라의 자비(라흐마)와 인간의 '타우바'(Tawbah, 회개) 및 선행을 통해 용서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들에게 구원의 길은 '행위'와 '순종'이다. 다섯 가지 기둥(신앙고백, 기도, 금식, 자선, 성지순례)을 충실히 이행하고 선행을 쌓으면, 최후의 심판 날 '미잔'(Mizan, 저울) 위에서 그 행위가 무거워져 천국에 갈 수 있으리라 '희망'한다. 알라는 자비롭기에 용서할 수 있지만, 그 용서는 알라의 주권적 '의지'에 달려있을 뿐, 기독교처럼 십자가의 피로 확증된 '보증'이 아니다.
결정적으로, 이슬람은 십자가의 대속 교리 자체를 정면으로 부정한다. 꾸란 4장 157절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지도, 죽지도 않았으며, 단지 그렇게 보였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에게 전능한 알라가 자신의 위대한 선지자(이슬람에서 예수는 무함마드 이전의 위대한 선지자 '이사'임)가 그토록 무력하게 죽도록 방치했다는 것은 알라의 능력에 대한 모독이다. 또한, '한 사람의 죄를 다른 사람이 대신 질 수 없다'(꾸란 6:164)는 교리에 따라 대속의 개념 자체를 거부한다.
이것이 바로 두 신앙의 근본적인 분기점이다. 이슬람은 '인간의 행위와 알라의 자비'를 통한 구원의 '가능성'을 말하지만, 기독교는 '그리스도의 피와 하나님의 은혜'를 통한 구원의 '확실성'과 '보증'(성령)을 선포한다.
이 차이는 단순한 신학적 논쟁이 아니다. 이것은 인간의 이성, 즉 '크로노스'(Chronos)의 세계관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영적 법칙, 곧, '카이로스'(Kairos) 세계의 법칙이다.
사도 바울이 고백했듯이, 십자가의 도는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다(고전 1:18). 육신에 속한 사람은, 설령 그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기적을 체험한다 할지라도, 이성만으로는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아들일 수 없다. 이는 영적으로라야 분별되기 때문이다(고전 2:14).
우리가 무슬림에게 전해야 할 복음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것은 율법적 순종을 요구하는 또 하나의 종교가 아니라, 이미 창세 전에 마련된 하나님의 영원한 은혜의 법칙, 곧,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는 완전한 죄 사함과 성령의 보증이다. 이 영원한 법칙을 깨닫는 것은 오직 성령으로 거듭날 때만 가능한 신비이며,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맡겨진 가장 시급하고도 영광스러운 사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