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느헤미야 시대, 회복의 불씨가 된 ‘율법의 말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예루살렘은 여전히 상처투성이였다. 무너진 성벽은 세워졌으나, 백성의 마음은 여전히 황폐했다. 그때 성문 앞 광장에 모인 수많은 백성들 앞에서 에스라가 율법책을 들고 섰다.
“그 날, 새벽부터 정오까지 말씀을 읽었더라.”
들리는 것은 에스라의 목소리였지만, 울려 퍼진 것은 하나님의 음성이었다. 이스라엘은 다시 말씀을 들었다. 말씀이 다시 그들의 중심을 차지했다.
느헤미야의 사명은 성벽을 세우는 것이었지만, 하나님이 세우고자 한 것은 말씀 위에 선 공동체였다.
성벽이 완성된 후 가장 먼저 이루어진 일은 군사 점검도, 경제 회복도 아닌 율법 낭독 집회였다.
백성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수문 앞 광장에 모였고, 에스라는 높은 단 위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낭독했다.
그들은 성벽 안에 들어온 백성이었지만, 여전히 마음은 포로의 상태였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을 다시 ‘자유인’으로 세웠다.
무너진 도시보다 더 무너진 것은 영혼이었고, 그 영혼을 다시 세우는 것은 말씀뿐이었다.
에스라가 율법을 읽자, 백성들은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울었다.
오랜 세월 말씀을 잃어버린 채 살았던 그들의 심령은 찢어졌다.
그러나 느헤미야와 레위인들은 말했다.
“오늘은 슬퍼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한 기쁨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슬픔에서 기쁨으로 이끄는 능력이다.
회개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다.
그들은 울음을 거두고 먹고 마시며 서로에게 음식을 나눴다.
율법의 날이 축제의 날로 변한 것이다.
이것이 ‘말씀으로 인한 부흥’의 본질이었다.
느헤미야 8장의 감동은 개인적 경건에 머물지 않았다.
백성 전체가 말씀을 깨닫고, 그 말씀대로 살겠다는 결단을 내렸다.
그들은 초막절을 다시 지켰다.
잃어버린 절기가 다시 살아났고, 공동체의 기억 속에 하나님이 되살아났다.
“온 회중이 초막을 짓고 그 안에 거하니, 그 때 이후로 이런 기쁨이 없었더라.”
한 사람의 부흥이 아닌, 공동체 전체의 회복이었다.
말씀이 읽히고, 깨달아지고, 실천될 때, 부흥은 현실이 된다.
느헤미야 8장은 고대 예루살렘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 우리 교회의 이야기다.
무너진 신앙, 잃어버린 예배, 습관이 된 말씀 생활 속에서 우리는 다시 수문 앞 광장으로 초대받는다.
‘성벽’보다 중요한 것은 ‘말씀의 토대’다.
부흥은 회의나 행사에서 오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이 회복될 때, 공동체의 영혼이 살아난다.
오늘도 하나님은 묻는다.
“너희는 내 말씀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느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