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자의 이성과 시인의 감성이 맞닿은 자리에서 태어난 채형복 시집 『파리지앵은 빗속에서도 뛰지 않는다』는 인간의 품격을 회복하는 언어의 여정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으로 이어지는 독특한 구성은 생의 순환을 상징하며, 시인은 고통과 상처, 절망과 희망의 계절을 통과해 ‘삶의 온도’를 되찾는다. 시 <도끼질>과 <기도>가 마주 선 겨울의 장에서는 분노와 연민이 공존한다. 세상을 쪼개는 도끼의 언어와 세상을 감싸는 기도의 언어가 교차하며, 인간의 존엄이 다시 세워진다. 그리고 마지막 제5부 ‘다시, 봄’에서 시인은 초심으로 돌아가 말한다. “모든 사람은 시인이다.”
이 시집 『파리지앵은 빗속에서도 뛰지 않는다』는 삶의 폭우 속에서도 서두르지 않는 법, 고통을 품고 다시 피어나는 법을 가르친다. “비가 와도 괜찮다. 뛰지 말고, 끝까지 걸어가라.” 이 시집은 그 길의 끝에서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의 봄은 지금 어디쯤 와 있나요?”
<작가소개>
시인 채형복
2012년 『늙은 아내의 마지막 기도』를 펴내며 문단 활동을 시작했으며,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있다. 『바람이 시의 목을 베고』, 『칼을 갈아도 날이 서질 않고』, 『무 한 뼘 배추 두 뼘』, 『교수님 스타일』 등 여러 권의 시집이 있다.
<이 책의 목차>
제1부. 봄
봄 (1)
봄 (2)
봄 (3)
봄 (4)
아카시아
시간
슬픔
아빠 고슴도치
나이
봄비
파리지앵은 빗속에서도 뛰지 않는다
윈 팜 드 샹브르
사크레쾨르 성당에서
응
제2부. 여름
삶 (1)
삶 (2)
삶 (3)
삶 (4)
고백
비정
죽음에 목숨 걸다
강
산촌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
귀소(歸巢)
선택
그림자 당신
효자손
제3부. 가을
가을 (1)
가을 (2)
가을 (3)
단풍
태양초
어떤 죽음
번뇌
삶 따위 아무려면 어때
미련 (1)
미련 (2)
망각
은행나무
홍시
제4부. 겨울
겨울 장미
겨울, 장미의 기도
주도
짓다
연탄
공원 벤치에서 (1)
공원 벤치에서 (2)
수탉에게
겨울밤에 (1)
겨울밤에 (2)
귀향
도끼질
침묵
윤회
기도
제5부. 다시, 봄
애달픔
올라가야 할 계단은 오십 개
점
봄의 예찬
백사(白沙) (1)
백사(白沙) (2)
Zero (1)
Zero (2)
흔들바위
마음
나는 종말을 잡았어도
푸념
태초의 소리
금빛 날개가 타기 전
결시(結詩)
어둠에 묻혀
<본문 詩 ‘그림자 당신’ 전문>
사랑하는 당신,
나를 떠나지 말아요
구름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나를 버리지 말아요
어둠이 우리를 떼어놓을 때까지
나는 당신의 몸을 따르는
영원한 빛의 그림자
그림자의 빛
그림자 없는 당신은
빛을 잃고 죽고 말 거예요
내일 아침 밝은 해가 떠오를 때까지
그림자 당신,
나와 함께 살아있기를 기도합니다
<추천사>
채형복 시인의 열 번째 시집 『파리지앵은 빗속에서도 뛰지 않는다』는 생의 사계절을 따라 인간의 품격과 마음의 온도를 복원하는 시적 여정이다. 법학자의 이성과 시인의 감성이 한 몸 안에서 부딪히며 만들어 낸 이 시집은, 현실을 도끼로 쪼개되 기도의 손으로 다시 꿰매는 언어의 의식(儀式)과도 같다. 시인은 말한다. “글은 툭툭 장작 패듯 써야 한다.” 이 한 줄은 그의 문학관이자 생의 태도다. 꾸밈없이 단단한 언어, 뜨겁지만 절제된 시선, 그것이 그의 시를 지탱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이어지는 네 계절의 작은 세계들은, 인간이 고통을 통과해 다시 태어나는 순환의 서사로 연결되어 있다. 각 부는 서로 다른 온도와 호흡으로 생의 한 국면을 노래하지만, 끝의 제5부 「다시, 봄」은 그 모든 계절을 되돌려 하나의 원으로 닫는다. 탄생과 죽음, 분노와 용서, 절망과 희망이 나선처럼 돌며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구조 속에서 시인은 ‘삶의 순환이 곧 인간의 구원’임을 보여준다.
제1부 「봄」에서 시인은 “폼 잡고 죽기 딱 좋은 시절”이라 말하며 생과 사의 경계를 동시에 노래한다. 봄은 단순한 시작이 아니라, 겨울의 고통을 견딘 끝에 피어난 존재의 증거다. “겨울이 날 선 가시를 세워야 봄꽃이 핀다”는 구절은 고통이야말로 생을 살아있게 하는 조건임을 일깨운다.
제2부 「여름」은 현실과 인간에 대한 성찰의 계절이다. “삶은 아니다로 채워진 지독한 긍정문”이라는 문장은 이 시집의 중심축이다. 부정 속의 긍정, 고통 속의 구원을 길어 올리는 그의 언어는 도덕적 명제보다 깊은 체험의 리듬을 지닌다. 시 <강>의 “아무리 아프고 슬퍼도 강은 말없이 흐른다”는 구절은 체념이 아니라 품격의 은유다. 아파도 멈추지 않는 흐름, 그것이 시인이 말하는 인간의 윤리다.
제3부 「가을」에서는 사랑과 소멸의 미학이 자리한다. “사랑은 위험한 것, 목숨을 걸어야 해”라는 문장은 시인의 생의 철학이자 인간학이다. 그는 열정이 식어가는 계절 속에서 오히려 삶의 본질을 본다. 시 <망각>에서 다람쥐가 묻은 도토리의 흔적처럼, 잊는다는 행위조차 생의 일부임을 인정한다. 망각은 상실이 아니라 회복의 전조다.
제4부 「겨울」은 이 시집의 가장 강렬한 중심이다. <도끼질>과 <기도>라는 두 시가 마주 보며 배치되어 있다. 하나는 세상을 가르는 도끼의 언어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을 감싸는 기도의 언어다. 현실의 불의와 냉소를 향해 날을 세우면서도, 인간의 연약함 앞에서는 무릎을 꿇는 그의 태도는 시인의 윤리이자 인간의 품격이다. “지옥에 남은 마지막 사람이 나이기를”이라는 구절에는, 스스로를 희생하여 세상을 감싸려는 절정의 사랑이 깃들어 있다.
그리고 마지막 제5부 「다시, 봄」은 이 시집의 독특한 결이다. 시인은 자신의 청춘 시절 습작들을 덧붙이며, 시의 원점으로 회귀한다. 그 초심의 언어들은 거칠지만 맑고, 순수하지만 단단하다. “모든 사람은 시인이다”라는 그의 믿음은 여기서 완성된다. 인간의 삶이 고통과 반복 속을 돌고 돌아 결국 다시 ‘봄’으로 귀착된다는 순환적 구도는, 이 시집의 미학적 구조이자 철학적 완결이다.
『파리지앵은 빗속에서도 뛰지 않는다』는 시집의 형식을 빌린 ‘삶을 걷는 방식’에 대한 선언문이다. 파리의 비 내리는 거리에서 시인은 묻는다. “나는 왜 가랑비만 내려도 겁에 질린 노루새끼마냥 앞만 보고 냅다 치달렸을까.” 그 질문은 독자 모두에게 향한다. 세상이 아무리 서두르게 해도, 그는 말한다. “비가 와도 괜찮다. 뛰지 말고, 끝까지 걸어가라.” 이 시집은 속도를 잃은 시대에 던지는 품격의 선언이자, 고통의 시간을 지나 다시 봄으로 돌아가는 순환의 교향곡이다. 채형복의 시는 도끼처럼 단단하고, 기도처럼 따뜻하다. 그 균형 속에서 우리는 ‘걷는 인간’의 존엄을 본다. 이 책은 결국, 뛰지 않아도 도착할 수 있다는 믿음을 다시 일깨우는 시집이다.
(전자책 / 채형복 지음 / 보민출판사 펴냄 / 172쪽 / 변형판형(135*210mm) / 값 9,0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