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부시게 푸른 물결, 하얀 물거품이 부서지는 해안, 그리고 신화가 숨 쉬는 수천 개의 섬들. 우리는 흔히 에게해를 낭만과 휴식의 대명사로 기억한다. 그곳은 오디세우스가 모험을 떠났던 길이며, 수많은 문명이 교차했던 평화의 통로였다. 그러나 지금, 그 낭만의 바다 밑바닥에서 아주 차갑고도 날카로운 강철의 기운이 꿈틀대고 있다. 지도 위에 그려진 푸른 바다가, 군사 전략가들의 눈에는 붉은색 경고등이 켜진 '전장'으로 변해가고 있다.
최근, 그리스의 니코스 덴디아스 국방부 장관이 던진 한마디는 마치 잔잔한 호수에 던져진 거대한 바위처럼 지정학적 파문을 일으켰다. "우리는 육지에서 미사일로 에게해를 봉쇄할 것이다." 이 짧은 문장 속에는 단순히 무기를 더 사들이겠다는 차원을 넘어선, 바다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뒤집어버리는 거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담겨 있다. 오늘 나는 이 선언이 갖는 서늘한 함의와 그것이 불러올 파장에 대해, 지도 밖의 제3자가 아닌 마치 그 바다 앞에 서 있는 한 인간의 심정으로 깊이 들여다보고자 한다.
섬이 깨어난다: 고정된 영토에서 '움직이는 요새'로
그리스의 새로운 계획은 섬뜩할 정도로 실용적이고 현대적이다. 과거에 섬은 지켜야 할 '대상'이었다. 적이 상륙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하는 수동적인 영토였다. 하지만, 덴디아스 장관의 구상 속에서 에게해의 섬들은 이제 스스로 불을 뿜는 능동적인 '공격 플랫폼'으로 변모한다.
핵심은 바로 '이동식 미사일 포대'다. 고정된 기지는 현대전에서 좋은 표적일 뿐이다. 위성으로 24시간 감시당하는 세상에서, 한 곳에 박혀 있는 포대는 전쟁 개시 5분 안에 무력화된다. 그리스는 이 점을 간파했다. 그들은 섬이라는 지형을 이용해 미사일 발사대를 끊임없이 움직이게 할 것이다. 바위 뒤에 숨었다가, 숲속으로 사라지고, 다시 해안가 절벽에 나타나 불을 뿜는 유령 같은 존재.
이것은 적에게 끔찍한 악몽을 선사한다.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미사일의 공포. 군사 용어로 이를 '반접근/지역 거부(A2/AD)' 전략이라고 부른다. 쉽게 말해, "이 구역에 들어오면 살아서 나갈 수 없다"라는 보이지 않는 가상의 벽을 바다 위에 세우는 것이다. 낭만의 섬들이, 이제는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강철의 고슴도치로 변해가고 있다.
역설의 미학: 바다를 잠가서 해군을 해방시키다
이 전략에서 가장 전율을 느껴지는 부분은 그 속에 숨겨진 교묘한 역설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육지에서 미사일로 바다를 틀어막는다는 것은 수세적인 방어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소름 끼치는 공격 본능이 숨겨져 있다.
그리스는 왜 굳이 미사일로 에게해를 잠그려 할까? 그 대답은 '해군력의 해방'에 있다. 지금까지 그리스 해군은 수많은 섬 사이사이, 즉, '좁은 바다'를 지키는 데 주력 함정들을 묶어두어야 했다. 좁은 골목길을 지키느라 정작 큰길로 나가지 못했던 셈이다. 그런데 이제, 섬들에 배치된 미사일이 그 '골목길 경비'를 대신하게 된다.
족쇄가 풀린 그리스 해군은 어디로 향할까? 그들의 시선은 이제 좁은 에게해를 넘어, 리비아와 키프로스 사이의 광활한 동지중해로 향한다. 그곳은 에너지 자원이 잠들어 있고, 튀르키예(터키)와의 해양 주권 다툼이 치열한, 진짜 승부처다. 즉, 안방 문을 미사일이라는 디지털 자물쇠로 단단히 걸어 잠그고, 주력군은 밖으로 나가 영토 확장을 노리는 형국이다. 이것은 단순한 방어가 아니라, 더 큰 야망을 위한 치밀한 포석이다.
이웃의 불안: 튀르키예가 마주한 실존적 위협
이제, 시선을 돌려 바다 건너편, 튀르키예의 입장이 되어보자. 그들에게 이번 발표는 단순한 이웃 나라의 국방 계획 변경이 아니다. 그것은 목에 겨누어진 칼날과도 같다. 에게해는 튀르키예에도 숨통과 같은 앞바다다. 그런데, 그 앞바다의 섬들이 미사일로 무장하고, 자국 함정의 움직임을 봉쇄하려 한다? 이것은 국가 안보에 대한 실존적 위협이다.
튀르키예로서 그리스의 '지역 거부' 전략은 자국 해군을 항구에 가둬버리겠다는 선전포고나 다름없다. 더구나, 국제법적으로(로잔 조약 등) 비무장 상태를 유지해야 할 섬들이 요새화된다는 것은 외교적 신의를 저버리는 행위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튀르키예는 지금 다각적이고 치명적인 대응책을 고심하고 있다. 단순히 비난 성명을 내는 수준을 넘어설 것이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적'인 이동식 미사일 포대를 찾아내기 위해, 하늘에 수많은 '눈'을 띄울 것이다. 튀르키예가 자랑하는 드론 기술과 정찰 위성, 그리고 모든 정보를 통합하는 C4ISR(지휘통제체계) 역량을 총동원해 에게해의 모든 바위 뒤를 실시간으로 감시하려 들 것이다.
또한, 튀르키예는 외교전이라는 또 다른 전쟁을 준비한다. "그리스가 평화 조약을 깨고 지역의 안정을 해치고 있다"라는 논리로 국제사회를 설득하며, 나토(NATO) 테이블 위에서 이 문제를 공론화할 것이다. 이것은 총성이 울리지 않을 뿐, 이미 시작된 전쟁이다.
바다는 벽이 되어서는 안 된다
니코스 덴디아스 장관의 "미사일로 바다를 잠그겠다"라는 말은 군사적으로는 탁월한 수일지 몰라도, 인류학적으로는 비극적인 선언이다. 바다는 본래 인간과 인간, 문명과 문명을 잇는 길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두려움과 탐욕은 그 푸른 물길 위에 보이지 않는 강철의 장막을 치고 있다.
에게해가 미사일의 사정거리가 교차하는 죽음의 체스판이 되는 것을 우리는 그저 지켜봐야만 할까. 기술이 발전할수록, 무기가 정교해질수록, 평화는 더 아슬아슬한 균형 위에 놓이게 된다. 그리스의 '창'과 튀르키예의 '방패', 혹은 그 반대의 싸움은 결국 누구에게도 진정한 안보를 가져다주지 못할지도 모른다. 서로를 겨누는 미사일의 개수가 늘어날수록, 역설적으로 두 나라 국민이 느끼는 불안의 크기도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미사일로 바다를 잠그는 기술이 아니라, 굳게 닫힌 상대방의 마음을 여는 용기다. 이동식 미사일 포대가 섬의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올리브 나무와 평화로운 어선들이 다시금 그 바다의 주인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전략가는 지도 위에 선을 긋고 무기를 배치하지만, 결국 그 땅과 바다에서 살아가는 것은 사람들이다. 2025년의 끝자락, 에게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화약 냄새 대신 짠 내 나는 생명의 향기를 품기를, 소망해 본다. 바다는 벽이 아니라, 여전히 길이여야 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