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은 단순히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채워지는 것이다.
우리가 매일 벽에 걸린 달력을 넘기며 숫자를 세는 동안,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시간이 우리 영혼 위로 흐른다. 세상의 시간은 1월 1일, 차가운 겨울바람 속에서 시작해 12월 31일의 아쉬움으로 끝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의 시간, 즉 '교회력(Church Year)'은 전혀 다른 리듬으로 호흡한다.
교회력은 단순히 종교적인 행사를 기록한 메모장이 아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생애라는 거대한 드라마 안으로 우리를 초대하는 '초청장'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성육신(Incarnation)의 신비로부터 시작해, 그분의 사역, 고난, 죽음, 부활, 그리고 성령의 오심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일 년이라는 시간을 통해 그분의 삶을 내 삶에 겹쳐 놓는다. 이것은 시간을 거룩하게 구별하는 행위이며, 덧없는 세상의 시간(Chronos)을 하나님의 시간(Kairos)으로 바꾸는 기적의 여정이다.
이제 우리는 2025년의 끝자락과 2026년의 시작을 관통하며 이어지는 여섯 개의 거룩한 매듭, 그 절기들의 깊은 의미 속으로 함께 걸어 들어가 보려 한다.
1. 대림절: 어둠 속에서 새벽을 기다리는 설렘
세상의 달력이 한 해를 마무리하며 분주할 때, 교회력은 비로소 시작된다. 매년 11월 30일, 혹은 그날과 가장 가까운 주일부터 시작되는 '대림절(The Advent Season)'은 기다림의 계절이다. 2025년에는 11월 30일 주일부터 이 거룩한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대림절은 단순히 성탄절 전 4주간을 의미하는 물리적 시간이 아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기다려본 적이 있는가? 춥고 가난한 마음에 왕이신 주님이 오시기를 고대하며 빈방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우리는 이 기간, 이미 오신 주님을 감사하고, 다시 오실 주님을 간절히 사모한다. 그것은 막연한 기다림이 아니라, 약속된 사랑을 확신하는 신부의 기다림과 같다.
2. 성탄절: 유한한 인간 속으로 들어온 무한한 사랑
기다림 끝에 찾아온 '성탄절(The Christmastide)'은 단 하루의 축제가 아니다. 12월 24일 저녁 해가 뉘엿뉘엿 넘어간 순간부터, 1월 6일 주현절이 시작되기 전까지 12일간 이어지는 환희의 계절이다. 2025년 12월 25일, 우리는 아기 예수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이것은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연약한 인간의 몸을 입으셨다는, 인류 역사상 가장 충격적이고도 아름다운 사건이다. 차가운 구유에 누우신 그 사랑이 우리 마음의 가장 낮은 곳까지 찾아오셨음을 고백하며, 우리는 이 기간, 성육신의 신비를 노래한다.
3. 주현절: 세상 모든 이들을 향해 열린 빛
성탄의 기쁨은 우리끼리의 잔치로 끝나지 않는다. 세 번째 절기인 '주현절(The Epiphany Season)'은 그 빛이 온 세상으로 퍼져나감을 선포한다. '나타나심'을 뜻하는 주현절은 동방박사가 아기 예수를 경배한 날(1월 6일)로부터 사순절 전까지 이어진다. 2026년 1월 6일 화요일부터 시작된 이 기간은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유대 땅을 넘어, 온 인류의 구세주로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신 것을 기념한다. 이 절기의 의미는 실로 장엄하다. 어둠 속의 빛, 혼돈 속의 질서, 불안 속의 평안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에 나타났다. 주현절은 단순히 과거의 사건을 회상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여전히 어둠 속에 있는 이웃과 열방을 향해 "와서 보라! 여기에 참 빛이 있다!"라고 외치며 그리스도 앞으로 초청하는 선교적 사명의 기간이다. 유대인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민족과 계급을 아우르시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활짝 열린 것이다.
4. 사순절: 광야의 먼지를 뒤집어쓰고 걷는 길
화려한 빛의 축제가 지나면, 우리는 잿빛 참회의 옷을 입는다. '사순절(The Lenten Season)'은 부활절 전까지 주일을 제외한 40일간의 여정이다. 2026년에는 2월 18일, 머리에 재를 뿌리며 인생의 유한함을 고백하는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에 시작하여 4월 2일 목요일에 마친다. AD 325년, 현재의 튀르키예 ‘이즈닉(Iznik)’ 지역인 니케아에서 열린 공의회에서 확정된 이 절기는,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겪으신 40일간의 금식과 시험을 우리 삶에 체화하는 시간이다. 우리는 이 기간, 십자가의 길을 묵상하며, 나의 죄와 욕망을 내려놓는다. 마치 광야의 거친 모래바람을 맞으며 걷듯, 우리는 고난을 통해 영혼의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오직 십자가만을 바라보게 된다.
5. 부활절: 죽음을 삼킨 생명의 승리
사순절의 긴 터널을 지나면, 마침내 눈부신 생명의 아침이 밝아온다. 다섯 번째 절기인 '부활절(The Easter Season)'은 기독교 신앙의 정점이자 심장이다. 2026년 4월 5일, 우리는 빈 무덤 앞에서 "주님이 부활하셨다!"라고 외친다. 부활절은 단 하루의 이벤트가 아니다. 성령강림절까지 이어지는 50일간의 대축제이다. 죽음이 끝이 아님을, 절망이 소망을 이길 수 없음을 온몸으로 확인하는 시간이다. 우리는 이 기간,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며, 죽어가는 세상 속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는다. 가장 소중하고 찬란한 이 기쁨의 절기는 우리의 믿음이 헛되지 않음을 증명한다.
6. 성령강림절: 일상에서 타오르는 불꽃
교회력의 대장정은 '성령강림절(The Pentecost Season)'로 완성된다. 부활 후 50일째 되는 날, 2026년 5월 24일 주일부터 다시 2026년 대림절 전까지 약 27주간 이어지는 이 긴 기간은 교회의 탄생을 알리는 절기다. 오순절 다락방에 임하셨던 성령의 불길은 이제 우리의 평범한 일상 속으로 옮겨붙는다. 이 기간은 기적과 같은 특별한 사건보다는, 매일의 삶 속에서 성령님과 동행하며 성화되어 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가장 긴 이 절기 동안 우리는 세상 한복판에서 '작은 예수'로 살아내야 한다. 성령강림절은 교회가 세상 속에서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삶의 절기'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기억한다
왜 우리는 매년 반복되는 이 절기들을 지키는 것일까? 습관처럼 굳어진 종교적 의례 때문일까? 절대 아니다. 생각해 보라. 우리가 사랑하는 가족의 생일을 달력에 동그라미 치고 기다리는 이유가 무엇인가. 의무감 때문인가? 아니다. 그 존재가 나에게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이다. 생일을 기억하고 축하한다는 것은 "당신이 태어나줘서 고맙습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존재의 고백이다.
교회력을 지키는 것도 이와 같다. 우리는 절기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기억하고, 그분을 향한 사랑을 고백한다. 특별히, 주현절의 의미를 되새겨보자. 어둠 속에 있던 우리에게 빛으로 찾아오신 주님, 그분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혼돈과 두려움 속에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절기를 지킨다는 것은, 1년 365일이라는 시간의 빈 그릇에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채워 넣는 일이다. 대림의 설렘으로, 성탄의 기쁨으로, 주현의 빛으로, 사순의 회개로, 부활의 감격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의 시간을 물들이는 것이다.
이 거룩한 리듬에 발을 맞출 때,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된다. 우리의 인생이 우연히 던져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치밀하고도 사랑 가득한 계획 속에 있음을. 그렇기에 교회력은 낡은 전통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건네는 하나님의 가장 로맨틱한 프러포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