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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12월, 소멸보다 더 오래 걸리는 사랑" : 속도의 시대를 거스르는 따뜻한 저항

-열역학 법칙을 거스르는 팥죽 한 그릇의 비밀: 왜 사랑은 세상보다 늦게 식는가?

-당신의 12월이 너무 빠르다고 느껴질 때: 할머니가 장독대 눈을 치우지 않은 이유.

-늙어감이 슬픔이 아닌 축복이 되는 순간: 소멸을 이기는 가장 느린 저항에 대하여.

▲ AI 이미지 (제공: 중동디스커버리신문)

12월이다. 달력을 넘기는 손길이 다급해지는 계절이다. 우리는 무엇엔가 쫓기듯 한 해를 마감하고, 성과를 정산하며, '더 빨리' 다가올 내년을 준비한다. 숨 가쁜 디지털 시계의 초침 소리가 심장을 두드리는 이 시점에, 투박한 질그릇 같은 시 한 편이 발걸음을 멈춰 세운다. "12월, 소멸보다 더 오래 걸리는 사랑." 제목에서부터 묘한 역설이 읽힌다. 사라짐(소멸)보다 더 느린 사랑이라니, 이토록 비효율적인 낭만이 또 있을까.

 

이 시는 단순한 서정시가 아니다. 이것은 '속도'를 숭배하는 현대 문명을 향한 조용한 시위이며, 늙어감과 사라짐을 두려워하는 이 시대의 불안을 잠재우는 따뜻한 복음이다.

 

얼어붙음, 그것은 멈춤이 아니라 '숙성'이다

 

시의 화자는 장독대 위 눈 덮인 풍경으로 독자를 초대한다. 할머니는 그 차가운 눈을 치우지 않고 그대로 두셨다. "얼어붙은 시간 속에서 깊은 맛이 배어난다"는 구절은 충격적이다. 우리는 차가움을 시련이나 고통, 혹은 정체(停滞)라고 여긴다. 하지만 시 속의 할머니, 즉 삶의 지혜자는 안다. 맹물 같은 인생이 깊은 맛을 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얼어붙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는 기독교적 영성과 깊이 맞닿아 있다. 광야의 추위와 침묵은 하나님이 부재한 시간이 아니라, 영혼의 깊은 맛이 배어드는 숙성의 시간이다. 빠름이 미덕인 세상에서 "언 손을 호호 불며" 기다리는 태도야말로 우리가 잃어버린 거룩한 인내다. 기다림은 수동적인 포기가 아니라, 가장 치열한 사랑의 행위임을 이 시는 웅변한다.

 

늙어감, 슬픔이 아니라 서로를 입혀주는 '옷'

 

거울 속 희끗한 머리카락을 보며 한숨짓지 않는 중년이 어디 있겠는가? 안티에이징(Anti-aging)이 거대 산업이 된 시대에, 시인은 늙어감을 "서로를 따뜻이 품는 두꺼운 옷"이라고 정의한다. 아버지의 얼굴을 닮아가는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 늙음은 소멸을 향한 카운트다운이 아니라 세대와 세대를 잇는 언약의 증표가 된다.

 

나는 이 대목에서 깊은 전율을 느꼈다. 성경은 백발을 영화의 면류관이라 했다. 늙음이 추함이 아니라, 나의 연약함으로 타인의 연약함을 덮어주는 '두꺼운 옷'이 된다는 통찰은 깊은 묵상 없이는 나올 수 없는 고백이다. 우리가 서로의 낡아감을 끌어안을 때, 그곳에 진정한 공동체가 탄생한다.

 

열역학 법칙을 거스르는 '팥죽 한 그릇'의 사랑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3연이다. 문틈으로 황소바람이 들어와도 "나눔의 식탁 위 사랑은 바깥세상보다 한참 더디게 식는다." 물리적으로 팥죽은 식게 마련이다. 그러나 시인은 영적인 열역학 법칙을 이야기한다. 사랑이 담긴 음식, 나눔이 있는 식탁의 온도는 세상의 냉기보다 질기다.

 

오늘날 우리는 얼마나 빨리 뜨거워지고 또 얼마나 빨리 식어버리는가. '냄비 근성'이라 자조하는 우리의 가벼운 사랑에 대해, 시인은 팥죽 한 그릇을 내밀며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사랑은 세상의 바람을 이길 만큼 끈적하고 진한가? 붉은 팥죽은 마치 우리를 위해 흘리신 그리스도의 보혈처럼, 죄와 추위로 얼어붙은 문틈을 막아내는 생명의 온기처럼 느껴진다.

 

빈자리, 봄을 부르는 가장 확실한 초대장

 

마지막 연의 "빈 가지 끝 홍시 하나"는 화룡점정이다. 까치밥으로 남겨둔 그 붉은 점 하나. 다 따 먹지 않고 남겨두는 여유, 약한 생명들을 위해 무심히 비워둔 그 자리가 바로 '봄이 배어 돌아오는' 통로가 된다. 꽉 채우려 발버둥 치는 욕망의 도시에서는 봄이 와도 봄을 느낄 수 없다. 비워야 채워지고, 죽어야 다시 사는 부활의 원리가 저 앙상한 나뭇가지 끝에 매달려 있다.

 

결국 이 시가 말하는 "소멸보다 더 오래 걸리는 사랑"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았다. 세상은 모든 것이 소멸한다고 말하지만, 그 소멸의 속도를 늦추고, 끝내 생명으로 바꾸어내는 힘은 오직 희생과 나눔, 그리고 기다림이라는 '느린 사랑'에 있다.

 

12월, 당신의 장독대는 비어 있는가? 혹은 너무 꽉 차서 봄이 들어올 틈이 없는가. 이 시는 우리에게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식어가는 팥죽 그릇을 사이에 두고, 사랑하는 이의 주름진 손을 잡아보라고 권한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사랑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며, 소유가 아니라 여백임을.

 

당신의 영혼을 깨우는 한 줄의 질문

 

"당신의 삶은 세상이 시키는 대로 빠르게 식어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늦게 식기로 작정한 팥죽 한 그릇입니까?"

 

작성 2025.12.01 21:04 수정 2025.12.01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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