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튼 하나가 ‘장벽’이 되는 시대
“탈퇴하려면 어디를 눌러야 하나요?”
서울의 한 복지관에서 열린 디지털 교육 시간, 70대 할머니가 스마트폰을 들고 묻는다. 화면에는 쿠팡 앱이 켜져 있다. 화면 아래에는 ‘마이쿠팡’, ‘주문목록’, ‘찜’ 등 다양한 메뉴가 보이지만, ‘탈퇴’라는 단어는 어디에도 없다. 결국 옆자리 청년이 대신 눌러주자 “아이고, 이걸 혼자서는 못하겠네”라는 말이 나온다.
이것은 단순한 에피소드가 아니다. 최근 SNS와 커뮤니티에는 ‘쿠팡 탈퇴 방법’을 검색하는 노년층의 질문이 급증하고 있다. 검색을 해도 ‘고객센터 → 1:1문의 → 탈퇴요청’이라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설명이 이어진다. 젊은 세대에게는 몇 번의 클릭에 불과하지만, 노년층에게는 미로 같은 여정이다.
디지털 플랫폼은 편리함을 약속하지만, 그 문턱은 생각보다 높다. 특히 탈퇴, 개인정보 삭제, 동의 철회와 같은 ‘이용자의 권리’를 행사하는 과정은 의도적으로 어렵게 설계된 경우가 많다. 그 결과, 고령자들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서비스에 계속 묶여 있는 상태가 된다.
디지털 소외, 단순한 불편을 넘어선 구조적 차별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되는 사회다. 하지만 디지털 환경은 여전히 젊은 세대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스마트폰 보급률은 높아졌지만, 실제 활용 능력은 세대별로 큰 격차를 보인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의 2024년 조사에 따르면, 60대 이상 디지털 정보화 수준은 20대의 58% 수준에 머무른다.
문제는 이런 격차가 단순히 ‘앱을 잘 못 쓰는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금융, 의료, 공공서비스, 쇼핑 등 거의 모든 사회 시스템이 온라인 중심으로 전환되면서, 디지털 비문해층은 사회적 권리의 주변으로 밀려난다.
특히 플랫폼 탈퇴 과정은 ‘고객 유지율’이라는 비즈니스 논리 아래 의도적으로 복잡하게 설계되는 경우가 많다. 탈퇴 버튼은 숨겨지고, 문의 절차는 길어지며, 심지어 PC에서만 가능하도록 제한되기도 한다. 이런 구조는 젊은 세대에게도 불편하지만, 고령층에게는 사실상 ‘권리 제한’이다.
개인정보, 떠나도 남아 있는 그림자
문제는 탈퇴의 어려움만이 아니다. 어렵게 탈퇴를 완료해도 개인정보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디지털 플랫폼은 ‘법적 보관 의무’를 이유로 거래 기록, 주소, 결제 정보 등을 일정 기간 보관한다. 그러나 이런 과정이 고령자들에게는 불투명하게 느껴진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의 자료에 따르면, 65세 이상 이용자 중 46%가 “개인정보 삭제 요청 방법을 모른다”고 응답했다. 탈퇴가 곧 정보 삭제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또한 문자 피싱이나 광고 전화 피해 사례의 상당수가 탈퇴 후에도 남은 개인정보 유출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이 현상을 ‘디지털 취약계층의 정보주권 상실’로 본다. 정보 비대칭 구조 속에서, 플랫폼은 이용자의 데이터를 끊임없이 수집하고, 고령자들은 자신이 어디서 어떤 정보가 이용되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이 불균형은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윤리적 문제이자 인권의 문제다.
기술의 속도에 맞는 ‘배려의 기술’이 필요하다
이제 필요한 것은 ‘빠른 기술’이 아니라 ‘배려의 기술’이다.
플랫폼 기업들이 고령층의 사용성을 고려해 UI를 단순화하고, 음성 안내나 대체 텍스트, 탈퇴 버튼의 가시성을 높이는 것은 단순한 편의 제공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의 문제다.
예를 들어, 영국과 캐나다는 ‘디지털 포용 설계(Digital Inclusion Design)’를 의무화해, 공공기관은 물론 민간 서비스도 접근성을 고려한 사용자 경험(UX)을 제공해야 한다. 반면 한국은 ‘고령자·장애인 정보접근성 보장법’이 있지만, 쇼핑 앱·플랫폼에는 법적 의무가 미치지 않는다.
결국 고령층은 ‘배려의 공백’ 속에서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는 현실에 놓인다.
한편 정부는 ‘디지털배움터’ 사업을 통해 전국 1만여 곳에서 무료 교육을 진행하고 있지만, 실제 참여자의 70%는 “앱 탈퇴나 개인정보 삭제 방법은 배우지 못했다”고 답했다. 즉, 단순한 스마트폰 사용법을 넘어서, ‘디지털 권리행사 교육’이 필요하다.

기술은 진화했지만, 배려는 멈췄다
쿠팡 탈퇴는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하지만 그 안에는 디지털 시대의 불평등과 인간 중심 기술 설계의 부재라는 거대한 문제가 숨어 있다.
우리가 ‘편리함’을 추구하는 사이, 누군가는 버튼 하나 때문에 자신의 권리를 잃고 있다.
기술이 진짜로 발전했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그 기술이 가장 느린 사람의 속도에도 맞춰줄 수 있어야 한다.
디지털 사회의 정의는 속도가 아니라 접근의 평등에서 완성된다.
지금이야말로 플랫폼 기업과 정부가 함께 “배려의 UX”를 설계해야 할 때다.
















